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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커스 찰리에 대한 심리학적 고찰

** 이 글은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jnnw2B4zRA0?si=ac0dkpHRS5ieAUUZ


안녕하세요. 게임하는 심리학자 허용회입니다. 오늘 게임은 서커스 찰리입니다. 저는 패미컴 마니아였으니 이번에도 패미컴판입니다. 거의 다 해보셨을 테니 하는 법은 생략하겠습니다.

     

서커스 찰리는 생각보다 단순한 게임성을 갖고 있습니다. 초창기 소닉처럼 원버튼, 즉 점프 하나면 다 해결되게 만들어 놨죠. 하지만 이 단순한 게임에도, 우리가 눈여겨볼만한 심리학적 원리가 숨어있습니다. 일단 각 스테이지의 배경을 보시면 공통적으로 관객석이 보입니다. 저 조그만한 점같은 것들이, 처음에는 뭐 벽 타일 무늬인가 싶긴 했지만 스테이지 클리어 시 환호, 박수소리가 나오는 걸 보면 관객들이 맞는 것 같더군요.

 

즉, 서커스 주인공인 우리들은 저 수두룩 빽빽 들어찬 관객들 앞에서 쇼를 선보이고 있는 상황인 겁니다. 비록 가짜 관객이지만 의도적으로 이 관객석을 스테이지 배경에 큰 비중으로 설치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게 되는데요. 물론 실제 서커스 쇼를 본딴 단순 고증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작자가 의도했든 아니든, 이 관객석의 존재는 유저의 심리에 무시못할 영향을 미치고 있죠.



그래픽이 더 쩔었다면, 누가 보는 느낌이 더 생생했을 겁니다



심리학에는 사회적 촉진social facilitation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아주 쉽게 말해 다른 사람의 존재가 우리의 과제 수행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게임하는데, 누가 옆에서 보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분명 혼자 할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를걸요?


서커스 찰리 속 관객석은 사회적 촉진을 유발합니다. 게임을 켠 그 순간부터 끝낼 때까지 유저는 관객들의 시야로부터 조금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마 주인공과 함께, 이 게임 출연횟수 1위일걸요?

 

사회심리학자 자이언스zajonc는 타인의 존재 지각이 사람들의 우세 반응을 이끌어낸다고 설명했어요. 쉽게 말해, 뭔가를 잘하는 사람은 더 잘하게 되고, 못하는 사람은 더 못하게 된다고 말입니다. 비록 검증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저 관객석의 존재로 인해 원래 감각보다 더 잘되는 사람도, 더 안되는 사람도 생기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심리학자 자이언스zajonc


다음으로 제가 주목한 것은 미터 표지입니다. 어떤 스테이지든 하단을 보면 80M, 70M, 60M ... 이런 식으로 골인 지점에 가까워짐을 가리키는 표지가 등장합니다. 사실 골인까지의 거리를 보여준다는 개념은 뭐, 아주 새롭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레이싱 게임도 아닌 주제에 남은 미터를 큼지막하게 보여준다니, 저는 여기에서 왠지 제작자의 의도를 읽은 기분이었습니다.


서커스 찰리는 매우 단순한 스테이지 구성을 갖고 있습니다. 슈퍼마리오의 경우 스테이지에 각종 오브젝트도 독특한 모양으로 진열되어 있고, 유저들은 그에 맞춰 다양한 액션을 조작해야 하죠. 하지만 서커스 찰리는 스테이지 시작부터 끝까지, 오로지 똑같은 조작만 하면 됩니다. 불고리 넘기, 불고리 넘기, 불고리 넘기, 원숭이 넘기, 원숭이 넘기, 원숭이 넘기, 공 넘기, 공 넘기, 공 넘기, 발판 넘기 발판 넘기 발판 넘기 그네 넘기 그네 넘기 그네 넘기 이렇게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보면 클리어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 구성이 너무 지겹다는 점입니다. 자꾸 닌텐도 게임과 비교를 하게 되는데 리듬세상을 보면, 마찬가지로 단조롭지만 대신 우리가 흥겹게 리듬을 탈 수 있잖아요? 스테이지도 엄청나게 많고요. 하지만 서커스 찰리는 옛날 게임이라 그런지 스테이지 수도 적고, 그나마 스테이지 안에서 할 거라곤 뭘 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그러니 유저 입장에서는 금방 질릴 수밖에 없죠.


그래서 유독 이 게임에서는 미터 표지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른 게임에서는 그냥 이정표에 불과할 수 있지만, 서커스 찰리에서는 아닙니다. 첫째, 방향타 역할을 합니다. 만약 미터 표지가 없었으면 유저들은 자신이 얼마만큼 와 있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을 겁니다. 둘째, 결정적인 순간에 동기부여 역할을 합니다. 만약 10M 남은 걸 알고 죽었다면? 아까워서 바로 재도전을 하겠죠. 하지만 미터 표지가 없었다? 이 게임 특성상 골이 코앞인지, 아닌지 알수 없으니 흥미를 잃고 재도전을 포기하게 되죠.



같은 동작만 반복하니까, 지루합니다. 목표까지 거리가 제시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터 표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단순 점프 노가다가 덜 지겹게 느껴집니다. 화면 상으로는 똑같은 배경에, 똑같은 작업만 하는 것 같지만 이 미터 표지 덕분에 점점 줄어가는 거리를 눈으로 직접 확인하면서 ‘내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내가 원했던 골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으며 계속 게임에 집중할 수 있는거죠. 마치 지하철 전광판 같은 거 아닐까요? 어디가 끝인지, 언제 오는지는 사실 이미 정해져 있지만 그런 눈요기 거리라도 있어야 우리가 덜 지루하게 그 시간을 인내할 수 있는 거니까요.




자, 이번 분석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런 느낌의 분석, 접근이 마음에 드신다면 구독과 좋아요, 공유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해당 작품에 관한 여러분의 흥미로운 의견들도 매우 환영합니다! 지금까지 게임하는 심리학자 허용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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