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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 시티에서는 왜 아이템이 랜덤 스폰될까?

** 이 글은 유튜브에서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GGG5bAmdDE


안녕하세요. 게임하는 심리학자 허용회입니다. 오늘 게임은 배틀 시티입니다. 일명 탱크 게임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요, 독수리(사령부)를 지키면서 모든 적 탱크들을 파괴하면 이기는 그런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은 역시 독수리의 존재일 겁니다. 독수리가 파괴되면 그 즉시 게임오버가 되므로 잘 지키며 플레이를 해야 하는데요, 바로 이 독수리라는 독특한 시스템 덕분에 유저가 게임 화면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독수리의 존재로 인해 유저 입장에서는 매 판마다 양자택일의 순간에 놓이게 됩니다. 후방에서 독수리를 지키며 방어적으로 맞설지, 아니면 최전방에 나서서 공격적으로 나설지 고민하게 되는 것이죠. 만약 2인 플레이라면 선택지는 더 늘어납니다. 같이 방어적으로 하거나 공격적으로 할 수도 있지만 ‘분담’이라는 옵션이 추가로 생기죠. 한 명은 후방에 남아 독수리를 지키고, 다른 한 명은 전방에 나가 적 탱크들의 화력을 분산하며, 열심히 격파하는 겁니다.



매 판마다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후방에서 독수리를 사수하느냐, 전방에서 적을 깨느냐



근데 가끔 이 게임은 사람을 쉽게 믿지 말라...는 인간관계에 관한 훌륭한 교훈을 주기도 합니다. 기껏 후방에 동료를 남기고 나는 전방에 왔더니, 동료가 독수리를 파괴시켜서 게임을 망칠 수도 있거든요.


게임을 하다보면 붉은색으로 반짝거리는 적 탱크를 만날 때가 있습니다. 이 탱크를 한 대 맞추면 목숨, 기지강화, 탱크강화, 수류탄(적 폭사), 모자(일정시간 무적), 시계(일정시간 적 멈춤) 등의 아이템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게임에서 특별히 주목한 것도 바로 이 아이템이었습니다. 아이템의 효과 말고, 아이템이 스폰되는 방식이 흥미로웠습니다.


게임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아이템은 맵 전체 아무 곳에나 랜덤으로 스폰되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운이 좋다면 가까이에 스폰되어 금방 먹을 수 있지만, 운이 나쁘면 먼 거리를 한참을 이동해야 겨우 먹을 수 있죠.


문제는 이 아이템의 랜덤 스폰 특성 때문에 유저들은 자신의 전략을 매순간 조정해야 하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는 겁니다. 특히 이 아이템이 아주 먼 곳에 스폰되었을 때, 유저들은 다시한 번 양자택일의 딜레마에 처하게 되죠. 기껏 구축해 둔, 익숙한 전장을 버리고 보급을 위해 과감히 약진할 것이냐, 아니면 보급을 포기하고 자신의 위치를 사수할 것이냐,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죠.



맨 앞에 나와있는데 아이템이 맨 뒤에 나왔다? 유저는 전선이냐, 보급이냐 선택을 해야 합니다



이를 심리학적으로 굳이 풀어보면 심리학자 히긴스Higgins가 제안한 조절초점이론regulatory focus Theory와의 연관성을 언급해보고 싶습니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크게 두 가지 동기를 갖게 되는데요, 향상초점promotion focus과 예방초점prevention focus이 바로 그것입니다. 향상초점이란 리스크를 감내하더라도 좀 더 과감하게 움직여서 성취를 노리는 태도를 말하며 예방초점은 반대로 보상 획득보다는 리스크를 최소한으로 줄이는, 안전지향적인 태도를 말하죠. 향상초점은 이른바 ‘접근동기’, 예방초점은 ‘회피동기’라는 표현으로 설명되기도 하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만약 전방에서 적극적으로 적을 때리고 있다가 아이템이 후방에 스폰되었다고 해보죠. 이 때 향상초점을 가진 유저라면 그 즉시 전선에서 이탈하여, 과감히 아이템을 먹으러 후방으로 내려올 수 있습니다. 아이템을 먹으러 가는 사이에 적들이 계속 쌓이고, 전선을 아래로 밀고 내려오는 문제, 그리고 예기치 못한 포탄이 날아온다는 문제가 있지만 어떻게든 아이템만 먹는다면 그 힘을 토대로 일발역전이 가능하다는 것이 그들의 계산입니다.


한편, 반대의 상황도 생각해볼 수 있겠죠. 후방에 남아 독수리를 지키며 방어적으로 플레이하다가 아이템이 최전방에 나타났다? 향상초점을 가진 유저는 독수리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약진하고자 할 겁니다. 후방이 비어서, 장갑차 같은 적의 빠른 탱크가 치고 들어올 수 있다는 문제는 있지만 일단 아이템을 먹어 보급을 강화하겠다는 것이 그들의 계산입니다.


반면 예방초점을 가진 유저라면 아이템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으려 마인드 컨트롤을 할 겁니다. 먹으러 가는 길에 죽을 수도 있고, 후방이 털릴 수도 있으니 제 자리를 사수하며 가까이 뜨는 아이템이나 챙기겠다는 전략인거죠.



독수리와 아이템의 랜덤 스폰, 두 가지가 맵을 보는 시야를 넓게 한다



결론적으로 아이템의 출현 방식을 저는 이 게임의 흥행, 생명연장에 크게 기여한 신의 한수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아이템의 랜덤 스폰 덕분에 동일한 스테이지를 여러 번 플레이하더라도 매번 다른 게임 양상이 만들어질 수가 있는 거거든요. 전방에서 시작하느냐, 후방에서 시작하느냐, 유저들은 이 고민과 더불어 매번 랜덤하게 뜨는 아이템을 먹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만의 전략전술을 완성시켜 가는겁니다. 따라서 아이템의 랜덤 스폰은, 앞서 설명드렸던 독수리와 마찬가지로 맵을 가급적 넓게 활용하며 다양한 전투 양상을 이끌어내는 데 기여하는 훌륭한 장치로서 기능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자, 이번 분석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런 느낌의 분석, 접근이 마음에 드신다면 구독과 좋아요, 공유 꼭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해당 작품에 관한 여러분의 흥미로운 의견들도 매우 환영합니다! 지금까지 게임하는 심리학자 허용회였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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