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은 다음날 가뿐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따위를 개념치 않기로 했다. 지난밤 시준에게 폭탄처럼 투하했던 수많은 메시지들이 미영의 마음을 가뿐하게 하는데 도움이 됐다. 사람들은 뒤에서는 수군 거려도 미영의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았다. 그렇다면 굳이 나서서 불편해할 필요는 없었다. 사무실에 특별히 자리가 정해져 있지는 않았다. 사무실에서 해야 할 일이라는 게 그다지 있지 않았기에 미영도 불편함은 없었다. 미영은 사람들이 오가는 통로에 위치한 미영의 옆자리에 앉았다.
"오! 미영 씨 좋은 아침!"
미래는 오늘따라 더 밝은 목소리로 미영을 반겼다. 미영도 미래의 목소리에서 어제의 일을 의식하고 있음을 느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언니, 말해 뭐 해 너무 좋은 아침이지."
"커피 한잔 하러 갈까?"
"방금 출근했는데?"
"우리가 뭐 앉아서 할 일이 얼마나 있겠니? 밖에 나가서 사람들 만나려면 워밍업이 필요하지 않겠어?"
"말은 청상유수야 정말"
"가자!"
미래는 앞장서 나섰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건물 1층에 위치한 카페에 들어섰다.
"아메리카노?"
"응! 샷추가등뿍해서! 고마워 언니!"
미래는 주문을 하기 위해 키오스크로 향했고, 미영은 자리를 잡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구석진 창가 쪽 자리가 비어있었고, 미영은 누가 채갈세라 서둘러 자리를 잡았다. 미영은 자리를 잡고 앉아 창밖을 구경했다. 출근하는 사람들 중에서 제법 마음에 드는 남자를 골라 시선을 따라갔다. 앞 건물인가? 병원에서 일하나? 의사인가? 의사는 얼마나 벌지? 저런 사람들은 다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고 그러겠지?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답을 정해갈 때 미래가 커피 두 잔을 손에 쥔 채 나타났다.
"뭘 그렇게 두리번거려?"
"응? 아냐 아무것도."
"그나저나 어제는 무슨 일이라니?"
미래는 앉자마자 바로 자신이 궁금했던 질문을 던 졌다. 미래는 항상 모든 면에서 단도직입 적이었다. 군더 더리 없는 미영은 그런 성격이 모른 척하며 뒤에 가서 말을 지어내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영은 미래를 잘 따랐다.
"무슨 일은 뭐 사소한 오해였고, 사소한 해프닝이었고, 사소한 이별이었지."
미영은 대수로울 게 없다는 듯 가볍게 말을 뱉었다.
"헤어진 거야?"
"응.. 뭐 그랬지. 됐어. 좀 찌질해서 헤어질까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라."
"잘했어. 남자가 뭐 하나라니 돈 벌자! 돈 왕창 벌어서 더 좋은 놈 만나면 되지"
"그러자! 근데 머 기분이 좋지 않거나 한 건 아니야. 오히려 어제 보다 기분이 나아졌달까?"
"왜 그렇게 엉망이었어? 괜찮다고 했잖아."
"내가 사람을 잘못 봤지. 시시한 새끼야 아주. 주제도 모르고 남에 일이 참견하고, 어디서 주워들은 거 가지고 사람 판단하고 그런 사람이더라고. 편견, 아집, 경솔, 성급 이딴 걸 어쩜 그렇게 빠짐없이 갖추고 있는지. 자기가 오해를 해놓고 끝까지 들어보지도 않고, 결론을 내리고 말이지. 그래놓고 집에 가서는 다단계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을 실컷 찾아봤나 봐 그걸 또 나한테 보내는데. 아, 말하니까 또 열받네 으이씨."
"너한테 다단계에서 빠져나오라고?"
"응 자기가 돕겠다나 어쨌다나. 누가 도와 달랬냐고 진짜. "
"그래서?"
"그래서는 뭐. 그냥 냅다 욕이나 박아줬지. 그렇게 살지 말라고. 네 걱정이나 하라고."
"그거 가지고 되겠어? 내가 한번 전화해줄까? 아주 호되게 이 사회의 쓴 맛을 알려줘?"
"됐어. 내가 오죽 잘했을라고."
"그건 또 그래, 우리 똑순이가 오죽 잘했을라고. 그래서 정리는 다 된 거야? "
"그럼 이번에는 아주 말끔해. 오히려 어제 그 문자 덕분에 오만 정이 다 떨어져서 완벽히 정리 됐달까. 그리고 늘 그렇지만 세상에 널린 게 남자 아니겠냐고."
"역시 우리 쿨녀, 내가 괜한 걱정을 했다 정말. 그럼 들어갈까? 나 오전에 연락할 데가 몇 군데 있어서."
"나 때문에 이렇게 아침부터 시간 뺀 거야? 내 걱정에?"
"일종의 고객 관리지 뭐. 필요하시다면 언제든지 말만 해주세요."
미영은 미래가 자신 때문에 일부러 시간을 내주었다는 생각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미영은 미래의 권유로 이 일을 시작했다. 미래는 이 일을 시작하고부터 지금까지 힘들 일이 있을 때마다 미영을 응원해 줬다. 그랬기에 미래는 언젠가부터 마음을 놓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미래는 사무실로 돌아오자마자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미영은 그런 미래를 한동안 바라봤다. 미래의 캘린더는 늘 가득 차 있었고, 다이어리는 얼마나 열고 닫았는지 등 부분이 쭈글쭈글 주름져 있었다. 늘 성격이 급하지만 챙길 건 빠짐없이 챙겨야 했고, 말을 따뜻하게 하지는 않지만 행동이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영업성과도 늘 좋았고, 수익도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미영은 그런 미래를 따랐다. 자신도 미래처럼 되길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