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영이 미래를 따르기로 한 건 1년 전 겨울이었다. 대학 선 후배 사이였던 둘은 미영의 대학 동기 청첩장 모임 자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당시 미영은 미래와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학교를 다닐 때도 같은 수업을 들은 적도 없었고, 여기저기 나서기 좋아하며 외향적인 활동을 해왔던 미래와는 달리 미영은 그저 친한 친구들과만 관계를 가지는 게 편했기에 둘은 오며 가며 인사만 하던 사이였다. 사실 모임에 나오기 전만 해도 미영은 미래가 이 자리에 나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아니 아예 생각지 못했다는 편이 맞는 얘기였다.
미래는 오랜만에 만난 미영을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모임의 주인공인 소현이 자신의 친구라는 것을 말했을 때 '아, 예쁘장한 애'라며 기억이 나는 척을 했다. 그 나이 때 여자애들은 대부분 자신을 '예쁘장한 애'로 기억하기에 이런 식의 알은 채는 틀리 법이 거의 없었다. 미영은 미래의 '예쁘장한 애 '라는 말에 기분이 좋아졌고, 미래에 대한 마음이 살짝 열렸다. 미래의 사교성이 다시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미래는 모임의 주인공 소현과 그 신랑 옆에 앉았고, 미영은 반대쪽에 친구들과 함께 앉았다. 모임 내내 미래는 자리의 대화를 주도했다. 신랑에게 짓궂은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칭찬을 하며 기분을 풀어주기도 하며 쉬지 않고 대화를 이끌어 갔다. 분위기는 무르익어 갔고, 미래의 주도가 필요 없어질 즈음 미래는 자연스럽게 대화에서 빠졌다. 나서야 할 때와 나서지 않아도 될 때를 알고 행동하는 모습조차 미영에게는 좋게 보였다. 미래가 화장실을 가겠다며 잠깐 일어난 사이 미영은 미래를 따라나섰다.
미래는 화장실이 아닌 밖으로 나갔다. 건물 입구 옆 좁은 골목 사이, 살짝 벽에 기대어 담배를 하나 꺼내 물고는 깊게 빨아들이고 무언가를 한참 생각하는 듯 숨을 멈췄다가 내뱉었다. 미래가 내뱉은 희뿌연 연기가 겨울 밤하늘을 조금 운치 있게 만들었다. 미영은 미래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갔다.
"언니, 불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미영은 라이터를 가지고 있었지만 미래에게 말을 걸기 위해 불을 빌려달라고 했다. 미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미영의 담배에 불을 붙여 줬다.
"재미없지?"
미영은 살짝 미래의 말에 살짝 놀랬다. 미래야 말로 지금 이 자리를 누구보다 즐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래조차도 이 자리가 그렇게 재밌지는 않았을까 싶었다. 아니면 자신이 너무 티를 냈던 건가.
"네... 아뇨, 조금 피곤해서요."
"재미없는 거 너무 티 나던데. 뭐 피고 해서 그럴 수도 있고. "
미영은 자신의 생각을 들킨 것만 같아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사실 미영은 소현과 친했지만 결혼한다고 했을 때 그리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자신도 이제 결혼을 해야 할 때가 되었는데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힘들었고, 막막했다. 사실 미영이 가장 결혼을 하고 싶어 했다. 모이기만 하면 결혼 노래를 불렀고, 어떻게 하면 할 수 있을지를 늘 고민하던 미영이었다. 하지만 평소 결혼에 관심도 없어하던 소현이 갑자기 결혼을 한다는 소식에 상심이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자신은 결혼을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 같은데. 소현은 부모님이 가뿐하게 도움을 주시는 것도 미영의 상심에 한 몫했다.
"맞아요. 솔직히 기분이 좋지는 않은 거 같아요."
미영은 미래가 자신이 속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몇 마디 말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럴 땐 그냥 이실직고하는 게 속이 편했다. 그리고 미래가 소현에게 가서 말을 전할 사라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럴 수 있지. 친구가 미운 건 아닌데. 결혼하는 게 부럽긴 하고. 나도 그랬어."
"언니도요?"
"응, 왜? 나이 먹으면 안 그럴 거 같았어?"
"아니 그건 아닌데, 그런 거 치고는 너무 잘 어울리셨던 거 아니에요?"
"그래도 축하는 해줘야지. 인생에 한번 주인공이 되는 시기인데. 누구보다 관심받고 싶어 하는 순간이잖아?"
"아, 그렇겠다."
미영은 미래의 한 마디에 소현에게 미안해졌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다른 사람이 가졌다고 그 사람을 미워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렇다고 자책할 필요는 없지. 원래 감정이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
"그렇죠."
"에휴 근데 나도 더 있기는 힘들고 일 있다고 하고 집에 가야겠다. "
"아 언니, 저 연락처 줄 수 있어요?"
"물론이지"
미래는 미영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 들어 자신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두 번의 신호가 간 다음에 통화를 종료한 다음 미영에게 폰을 돌려줬다.
"언제든 연락해,라고 말해도 잘 안 하더라고."
"전 해보도록 할게요."
"그래, 불편하면 안 해도 되고. 춥다, 들어가자."
미래는 그렇게 말하고 모임장소로 다시 들어갔다. 미영도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고는 미래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미래는 일이 있다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래는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다음을 기약하느라 자리를 뜨는 데만도 한참이 걸렸다. 미래가 돌아가자 자리는 정리하는 분위기가 되었고, 서로 형식적인 어색한 인사를 남기며 소현의 결혼식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며 흩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