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 저 미영이에요. 시간 괜찮으면 언제 술이나 한 잔 할래요?]
미영은 용기 내어 미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술김에 연락처를 받긴 했지만 소현의 청첩장 모임에서 거의 처음 보다시피 한 선배에게 연락을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안부를 물어야 하나 아니면 사소한 질문을 던져야 하나, 밥이나 먹자고 할까, 소현의 결혼식을 핑계로 연락을 해볼까 수많은 시나리오를 쓰고 시뮬레이션을 돌려봤지만 역시 정공법 만한 것은 없었다.
미영은 미래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여자, 그것도 거의 남에 가까운 선배를 왜 알고 싶어 하는지 이유를 생각해 봤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만나면 생각이 나겠지라는 결론을 내렸고, 일단 메시지를 보내보기로 했다. 아니면 말지라는 생각으로.
[오~ 미영쓰! 오늘 저녁 어때?]
미래는 역시 미래였다. 어물쩍 둘러대며 나중을 기약하지 않는 성격이 미영의 마음에 들었다.
[오늘 좋아요. 직장이 어느 쪽 이세요?]
[7시 역삼역 3번 출구, 감자탕에 소주 콜?]
[네, 좋아요! 7시까지 찾아뵙겠습니다.]
미영이 역삼역 3번 출구를 다 올라왔을 때 미래는 출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미영쓰! 여기!"
날씨가 춥다며 식당에서 기다리라고 몇 번을 말해도 미래는 고집을 부렸다. 멀리서 오는 동생을 어떻게 식당에 맞을 수 있냐며 너스레를 떠는 통에 미영의 발검음은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언니! 안녕하세요. 잘 지냈어요? 추운데, 들어가 있으라니까."
"넌 안 춥냐? 으이그 가자!"
미래는 따라오라는 듯 손짓을 하곤 앞장섰다. 가는 동안 미래는 지금 가는 집이 이 동네 제일가는 맛집이라며, 검색해도 찾을 수가 없다며, 자신이 소개해 준 사람이 100명을 넘을 거라며, 그중에서 평점이 5점 만점에 7점은 될 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미래는 어색함 때문에 평소보다 많은 말을 했다. 미영은 그걸 반가움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작은 오해였지만 둘 다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었다.
미래는 식당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많이 먹을 수 있냐는 질문에 미영은 고개를 끄덕였고, 미래는 감자탕 대자에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대자면 여자 둘이 먹기에 너무 많다며 사장님은 만류했고, 다 못 먹으면 이고 지고 갈 테니 걱정 말라며 눙쳤다.이고 지고 갈 거라면 양 많이 줄 테니 중자를 먹으라 했고, 내 돈 주고 내가 먹겠다는데 대자를 달라고 실랑이를 벌였다. 결국 사장님이 소주 1병을 서비스로 주는 선에서 둘의 실랑이는 마무리되었다. 미영은 이런 미래의 또 다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연락하는데 너무 오래 걸린 거 아니야? 소현이 결혼식 때나 볼 줄 알았는데."
"미리 하려고 했는데 정신이 없었네요. 언니, 또 바쁘실까 조심스럽기도 하고."
"이렇게 봤으면 됐지 머."
형식적인 인사들로 어색함을 채워갔고, 어색한 인사들이 바닥을 드러냈을 즈음 타이밍 좋게 주문한 감자탕이 나왔다. 소주 몇 잔을 나눠마신 둘은 살짝 오르는 취기에 올라타 10년은 알고 지낸 언니와 동생처럼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갔다. 그동안 어찌 살아왔는지, 지난여름휴가는 어디를 다녀왔는지, 감자탕의 감자가 돼지의 어느 부위인지는 아는지, 회사는 어떤지, 어렸을 때는 뭘 하고 싶었는지, 만나는 사람은 있는지 등등 다음날이면 대부분 기억나지 않을 대화들을 꽤나 진지한 채 이어나갔다.
" 미영쓰! 2차가자!"
이고 지고 가겠다던 감자탕에 밥까지 볶고 바닥에 늘러 붙은 누룽지를 벅벅 긁고 있던 미영에게 미래는 2차를 외쳤다.
"내일 출근해야죠. 언니!"
라고 말했지만 미영도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먼저 갔으면 했지만 다음날 미래가 출근하는데 무리일까 싶어 걱정이 되어 제안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싫어?"
"살살 마시자는 거죠."
"좋아, 2차는 우리 집으로 가자!"
"언니 집으로요?"
"응, 여기서 가까워"
미영은 미래의 제안에 당황했지만 싫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하루 만에 거의 처음 만나는 사람과 이렇게 가까워질 수 있는지, 보통의 경우라면 경계심이 먼저 들었을 텐데. 하지만 미래의 제안을 거부하고 싶지는 않았다. 미래라면 왠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