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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r 26. 2020

글을 잘 쓴다는 것

내 경험과 내 생각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것이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무엇인가?


내 인생에서 수십 쪽이 넘는 긴 글을 처음 쓴 것은 '90년대 중반 석사학위 취득을 위한 논문 작성이었다.

논문 심사 과정에서 당시 심사위원장으로부터 좋은 논문을 썼다는 칭찬을 들었다.

수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서 연구하면서 논문을 작성했고 고득점으로 심사를 통과했기 때문에 스스로 글을 잘 썼다고 생각했다.


하드커버 인쇄본을 받은 날, 어머니께 자랑스럽게 보여드렸다.

"제가 쓴 석사 논문이에요."

첫 장을 펼쳐 본 어머니께서 하신 말씀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너무 어려워서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구나!”

논문은 나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쓴 글인데, 독자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면 잘 쓴 글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 논문은 이렇게 시작된다.


冷戰時代에 미국은 共産主義 擴散 防止, 民主主義 守護 등의 名分하에 세계 각 지역에서의 紛爭 또는 戰爭에 介入하여 왔다. 그러나 공산주의 종주국 蘇聯이 崩壞되고 東유럽 국가들이 共産主義體制를 抛棄함으로써, 민주주의 체제의 우월성이 입증된 탈냉전시대에도, (미국은) 자국 이익 보호를 위해 지속적으로 해외 군사개입을 하고 있다.


글을 잘 쓴다는 것은 글쓴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읽는 이가 알 수 있도록 글을 쓰는 것이다.


어머니는 내가 전공한 학문 분야에 문외한이셨고 공부를 많이 한 분은 아니셨다.

하지만 그 논문의 첫 문단은 지금 다시 보더라고 잘 쓴 글이 아니다.

분쟁(紛爭)이라는 용어는 영어의 conflict를 우리말로 옮겨 놓은 것인데 비전공자가 이해하기 쉬운 용어가 아니다. 두산백과사전에는 분쟁이란 "여러 사회 단위 사이에 성립되고 있는 균형관계를 동요, 혼란시키는 행동"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즉, 분쟁은 언어, 종교, 경제, 정치 등을 공유하는 사회 단위 사이에 다툼이 있는 상황을 말한다는 것이다. 분쟁은 백과사전의 설명 그 자체도 이해하기 어려운 국제정치학 용어다.

개입(介入)은 영어의 intervention을 우리말로 옮긴 단어인데, 이것도 분쟁만큼이나 어려운 의미를 갖고 있으므로 그 설명은 생략한다.

포기(抛棄)라는 한자는 글의 앞뒤 내용이 없이 그 단어만 한문으로 적어 놓았을 경우에는 읽기조차 어려운 글자다.

두 번째 문장은 "미국이 ~하고 있다"는 말인데, 미국이라는 주어가 없다. 서론의 첫 문단부터 이렇게 시작하는 논문이 무슨 말을 하려고 쓴 것인지 잘 모르겠다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것은 당연지사였던 것이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난 지금은 나의 글쓰기 실력이 조금 더 좋아졌을까? 금년 초에 학술저널에 게재했던 소논문의 첫 문단을 소개해 본다. 알기 쉽게 글을 쓰려고 내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문장이 너무 길다.


“Our nation honors her sons and daughters who answered the call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전혀 알지 못했던 나라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국민을 지키라는 부름에 응했던 우리나라의 아들과 딸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는 의미의 이 문구는 미국 워싱턴의 한국전 참전 기념비에 새겨져 있다. 6·25 전쟁 기간 중 미국의 아들과 딸들은 그들이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던-일본의 식민 통치에서 갓 해방된 태평양 건너편의 조그만 약소국인-대한민국과 그 국민을 지키라는 국가의 부름에 따랐고 36,574명이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바쳤다. 6·25 전쟁 3년간 발생한 미군 전사자의 숫자는, 베트남 전쟁 12년간 발생한 전사자 58,193명과 비교해 보면, 6·25 전쟁의 참상을 대변할 만큼 많은 미군 희생자의 숫자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8년 동안 대통령의 말과 글을 쓰고 다듬은 강원국은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책을 썼다. 강원국은 대통령의 연설문을 작성하면서, (그의 표현에 의하면) '말과 글의 소통 능력을 갖춘' 두 명의 대통령으로부터 글쓰기를 배웠다고 한다. 강원국은 글쓰기, 그리고 글을 잘 쓴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 글쓰기는 자질과 능력도 필요하지만, 준비와 연습이 더 중요하다.

- 남의 글을 따라 쓰는 것이 글쓰기 연습에 많은 도움이 된다. 단, 표절은 안된다. 또 남의 글(자료)은 풍성할수록 좋다. 알맞은 재료여야 한다. 출처가 분명하고 믿을 만한 것이어야 한다. 싱싱할수록 좋다. 색다른 것이면 더 좋다.

- 글쓰기란 결국 얼개 짜기다. 골조를 세우고, 구조를 짜고, 스킴(scheme)을 잡고, 아우트라인(outline)을 그린다. 이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글을 쓸 때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 간의 분량 안배를 위해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누락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앞에 나온 얘기가 뒤에 또 나오는 중복을 피하기 위해서, 그리고 전체적인 통일성과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 한 문장 혹은 한 단락 안에서는 한 가지 개념, 한 가지 사실만을 언급하는 게 좋다. 글을 서술할 때는, 모든 문장에서 없어도 되는 말은 없는지 찾아본다. 단락 안에서도 필요 없는 문장은 없는지 살펴본다. 그 말이 없어도 이해가 되면 불필요한 말이다. 수식어도 지나치면 군더더기다. 접속사를 가급적 쓰지 않는 버릇을 들이자. 논리는 명확하고 비약은 없어야 한다.

- 모든 초고는 걸레다. 헤밍웨이의 말이다. 그는 <노인과 바다>를 400여 차례 고쳐 썼다. 고수일수록 퇴고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실제로 쓰는 시간보다 고치는 시간이 더 길었다. 퇴고할 때는, 주제의 적절성 여부, 주제가 명확하게 전달되고 있는가, 글의 전개에 무리는 없는가, 내용상의 보완, 표현상의 문제, 오류 찾기, 독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 유의하면서 글을 고쳐야 한다.

- 지우고(반복 삭제), 줄이고(늘어진 것 조이기), 바꾸라(어색한 것 고치기).

- 간략하되 뼈가 드러나지 않아야 하고, 상세하되 살찌지 않아야 한다.

- 글을 쓸 때는 더 넣을 것이 없나를 고민하기보다는 더 뺄 것이 없는지를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 상대방이 내 말을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 선택된 소수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글을 쓰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에 일조하는 길이다.

- 요점을 한 줄로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는 게 좋은 글이다. 필자의 생각과 독자의 생각이 같아야 좋은 글이다. 열이면 열 사람 모두 같은 내용으로 요점 정리를 한다면 만점이다.

- 진실한 모든 말과 글은 훌륭하다. 진정성이다. 말과 글의 감동은 진정성에서 나온다.

- 글 잘 쓰기는 잘 듣기로부터 시작하는 게 맞다. 스스로 중심만 잡을 수 있으면 많이 들을수록 좋다. 잘 들어야 말을 잘할 수 있고, 말을 잘해야 잘 쓸 수 있다.

- 글쓰기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다.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 이것이 콘텐츠다.

- 글을 잘 쓰려고 하기보다는 자기만의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사람이 글을 잘 쓸 수는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스타일과 콘텐츠로 쓰면 되고,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는 성공적인 글쓰기를 할 수 있다.

 

결국, 글을 잘 쓴다는 것은 내 경험과 내 생각을 누구나 알 수 있게 쓰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 연습을 하려고, 아니 글을 잘 쓰려고 브런치를 선택했다. 강원국의 <대통령의 글쓰기>를 읽어 보면, 나의 브런치 선택은 잘 한 일이다. 다른 브런치 작가들이 쓴 글을 읽고, 그들이 어떤 경험과 생각을 나누려 하는지 그들은 글을 어떻게 쓰는지 듣고 보고  배우고, 나의 경험과 생각을 글로 쓰다보면 어느 순간 글쓰기가 많이 늘었다고 느껴질 때가 올 것이다.


중국 장가계 보봉호, 관광안내원의 설명에 의하면 당나라의 시선인 이태백이 쓴 산중문답에 나오는 무릉도원이 여기였다고 한다. 귀국 후에 검색해 보니 보봉호가 인공호수라는데...

"그대는 어이하여 이런 산중에 혼자 사느뇨 물으니 빙그레 웃으며 대답이 없으니 마음이 스스로 한가롭구려. 복사꽃잎은 물에 흘러 아득히 멀리 떠내려가는데 인간세계가 아닌 별천지가 바로 여기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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