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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r 28. 2020

프레임(frame)의 차이

나는 오사마 빈 라덴을, 그는 조지 W. 부시를 악마라 불렀다.

해외에서 BBC 뉴스로 본 911 테러의 현장은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불타오르는 순간을 이슬라마바드에서 BBC 방송으로 처음 보았다. UNMOGIP 본부에서 함께 TV를 시청하던 외국인 동료들과 "이게 무슨 일인가,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 벌어졌네?" 하며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며칠 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였다. 미군들이 이슬라마바드 공항을 경유해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이동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이 사실임을 증명하듯이 이슬라마바드 국제공항은 폐쇄되었다. 귀국을 준비하던 가족들의 비행기 티켓을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UNMOGIP: United Nations Military Observer Group in India and Pakistan


납치 항공기 자살 테러 직후 불타오르는 뉴욕의 쌍둥이빌딩(국제무역센터)


 9월 11일 이후 10월 귀국일까지는 심리적 공황이 연속된 나날이었다.

미국의 아프간 침공 소식에 분노한 현지 무슬림들이 이슬라마바드의 미국 대사관에 방화를 하였다는 뉴스를 들었다. 외국인에게 테러를 가할 것이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현지인 친구들에게서 안부를 묻는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왔다. 그들은 가능하면 외출을 삼가고 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안전할 것 같다는 조언을 하였다. 아파트 내 엘리베이터에서 만났던 낯선 현지인이 "유엔에 근무하냐? 911 테러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했을 때, "No comment!"라고 짧게 대답하고 서둘러 자리를 피했던 생각도 난다. 그의 눈빛에서 살기(殺氣)를 느껴 오싹했기 때문이다. UNMOGIP 본부에서는 추후 연락이 있을 때까지 출근한 인원은 사무실 내에, 출근하지 않은 인원은 숙소 안에 머물라는 연락이 왔다. 국내에서도 국방부와 합참의 관련 요원들이 매일 전화를 해서 그 날의 안부를 확인하기도 했었다.




911 테러를 바라보는 그와 나의 프레임은 이렇게 달랐다. 나는 빈 라덴을 그는 부시를 악마라 불렀다.

당시 이슬라마바드 현지인 집주인과 아파트 렌트비 정산을 하면서 911 테러에 대한 대화를 잠깐 나눈 적이 있다. 납치 항공기 자살 테러로 무고한 탑승객들과 뉴욕 시민들을 살해한 테러집단의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은 악마라고 생각한다는 나의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그는 그런 이유에서는 오사마 빈 라덴보다 조지 W. 부시가 훨씬 더 악마라고 주장했다. 미국의 해외 군사작전으로 무고한 민간인들이 더 많이 사망했고, 이슬람 청정지역이었던 아시아 국가의 주요 도시들이 미군 주둔 이후 향락과 퇴폐의 온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조지 W. 부시와 오사마 빈 라덴


프레임은 인간이 생각을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생각의 처리방식을 공식화한 것이다.

프레임(frame)은 "상징 조작자가 상례적으로 언어적 또는 담화를 조직하는 근거로 삼는 인식, 해석, 제시, 선별, 강조, 배제 등의 지속적인 유형"이라고 토드 기틀린(Todd Gitlin)이 정의하였다.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는 "프레임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다. 프레임은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행동이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라고 했다.
즉, 프레임은 현대인들이 정치 사회적 의제를 인식하는 과정에서 본질과 의미, 사건과 사실 사이의 관계를 정하는 직관적 틀을 의미한다.




한번 자리 잡은 프레임은 웬만해선 내쫓기 힘들다.

파키스탄 현지 집주인과 유엔 직원이었던 나의 프레임의 차이가 빈 라덴과 부시를 각각 악마라고 지칭할 정도로 극명한 견해차를 보였다. 그는 이슬람교라는 프레임, 나는 기독교라는 프레임을 갖고 사건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어떤 프레임에 한번 사로 잡히면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모든 생각과 행동의 차이, 그로 인한 대립과 갈등은 프레임의 차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 대립, 영남과 호남의 지역 갈등, 위안부에 대한 한일 간 견해차, 인종 차별, 기타 등등 이러한 모든 생각과 행동의 차이와 그로 인한 갈등은 프레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개인과 개인, 단체와 단체, 국가와 국가 간의 견해와 행동의 차이, 그로 인한 갈등과 분쟁은 프레임의 차이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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