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nny Apr 06. 2020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죽음을 준비하며

삶을 신중하게 살아야 하는 이유

전 세계적으로 COVID-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수만 명에 달하고 있다. 떠나는 이들도 보내는 이들도 미처 준비하지 못했던 죽음이기에 더욱 슬픔이 크다. 더 애통하게 하는 것은 장례식에 조차 “사회적 거리두기”를 적용해야만 하는 현실이다. 감염 예방 차원에서 장례식을 치르지 못하거나 최소한의 인원만 장례식에 참가하다 보니, 떠나는 그들도 외로이 가고 보내는 이들도 마음이 더 아프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한적한 장례식장

COVID-19가 확산되기 직전, 지인의 도움 요청으로 함께 그분의 장모님을 모시고 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연로하고 병약하신 어르신을 함께 부축하기 위해 그 댁에 들렀을 때, 어르신은 온몸이 너무 아프다며 계속 고통을 호소하셨다. 그런데 병원에 도착한 이후 몇 시간 동안을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다. 병원에 입원하길 극구 거부하시던 어르신께선, 병원에서조차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면, 가족과 떨어져서 입원하게 될 것 같아서, 그 엄청난 고통을 참고 계신 것이라고 지인에게 전해 들었다.


병원에서 필요한 처방을 받으신 후론 그분께서 더 이상 고통을 호소하지 않으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후 한 달 남짓 되었을까? 그분의 부고를 듣게 되었다. 하지만 상주의 정중한 사양과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으로 직접 조문은 하지 않았다. (이 글을 쓰던 중 그분의 남편께서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물론 이번에도 상주는 문상을 정중히 사양했다. 60여 년을 함께 하셨던 아내가 얼마나 그리우셨으면 달포도 안 지나서 그 먼길을 따라가셨을까? 짝 없이 날 수 없는 비익조처럼.) 그 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뵈었던 어르신의 고통 속에서도 고왔던 그 얼굴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엄청난 육체의 고통을 신앙의 힘으로 이기고 계셨기 때문이었을까? Rest in Peace!


그리스도인들은 천국과 부활의 소망이 있다. 따라서 장례식에서 부르는 대부분의 찬송가에는 천국에서 고인과 다시 만날 기약을 담고 있다. 그런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사랑하는 가족, 친구, 지인을 떠나보낼 때는 오열하기 십상이다. COVID-19로 지병이 악화되어 갑자기 세상을 떠날 경우, 그 유가족의 슬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오랜 기간 병상에 누워있어서 본인과 가족들 모두가 매우 힘들었던 분들이 소천하셨을 때 조차도, 그 유족들은 이생에서 고인을 떠나보내야만 하는 상황이 애통하여 한없이 눈물을 흘린다.


과연 죽음이란 무엇일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세상에서 분리되야만 하는 슬픔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서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쁨인가?

죽음이 어떤 사람에겐 사랑했던 모든 것들과의 이별의 슬픔이다. 다른 어떤 사람에겐 몸과 마음의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죽음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나는 것이다.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람은 죽음의 시기를 알 수 없다. 어느 날 갑자기 죽기도 하고, 의사에게 시한부 선고를 받고 그 보다 훨씬 더 살다가 죽기도 한다. 언제일지 알 수 없는 죽음을 준비하는 자세는 어떤 것일까?


그것은 하루하루의 삶을 신중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나 맞게 되지만 언제일지 전혀 알 수 없는, 죽음을 준비하는 올바른 태도는 오늘 하루를 신중하게 사는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내 삶에 가져다준 유익도 있다. 외부 활동이 줄면서 책을 읽거나 예전에 쓴 독서노트를 들쳐 보는 시간이 늘었다. 몸의 근육량은 다소 줄었겠지만, 두뇌 활동은 더 활발해지고 사색의 깊이도 더해졌다. 코로나 블루를 극복하기 위한 나 스스로의 생존법이라고나 할까? [죽음이란 무엇인가]도 독서노트와 함께 다시 펼쳐 본 책들 중의 하나다.
셸리 케이건의 [죽음이란 무엇인가] 책과 작가의 독서노트

예일대 철학 교수 Shelly Kagan이 자신의 철학 강좌를 토대로 쓴 [Death]의 번역본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종교적 관점이 아닌, 이성과 논리로 죽음과 삶의 의미를 해석한 책이다. Shelly Kagan은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중 한 사람이다.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우리는 죽는다. 따라서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라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에 답한다.

죽음이란 무엇인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영혼은 존재하는가? 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 나는 왜 내가 될 수 없는가?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죽음은 나쁜 것인가?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자살은 죽음의 선택인가 삶의 포기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 각자 해보시라! 만약 다른 이의 생각이 궁금하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에서 Shelly Kagan이 뭐라고 답했는지 읽어보시라! 삶을 신중하게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한 Shelly Kagan의 글과 함께 오늘의 작업을 마무리한다.

"우리가 삶을 신중하게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죽을 운명이기 때문은 아니다. 객관적 차원에서 짧은 시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추구할 만한 가치 있는 목표가 매우 많이 있고, 그런 목표들을 달성하는 게 힘들고 어렵다는 사실에 비해 우리의 수명이 너무 짧다는 사실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즉 가치 있는 모든 목표들을 추구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우리는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 결정해야 하는 추가적인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뒤돌아 봤을 때 비로소 잘못된 목표를 세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위험으로부터 우리는 결코 자유롭지 않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인간은 모두 죽는다는 사실에 직면해 삶을 신중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전 05화 편견에 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