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하 [무기획득 의사결정 : 원칙, 문제 그리고 대안]
도서출판 ‘책이 된 나무’에서 2000년도 1월 초판 발간한 『무기획득 의사결정』은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위해 저술한 책이다. 첫째, 어떤 이유로 무기획득 정책이 국가이익에 부합하지 못하고 비합리적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많은가? 둘째, 무기획득 의사결정 과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문제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재발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저자 김종하는 1964년도의 부산 태생이다. 1991-1993년까지 경희대학교 평화복지대학원 국제 및 공공정책학과에서 A Study on the Formulation and Implementation of South Korea's Northern Economic Policy: A Statist Approach라는 제목의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정책 산출'연구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1994-1997년까지 영국의 School for Policy Studies, University of Bristol에서 국방․군사정책, 과학기술정책, 무기획득 의사결정 사례분석 등의 연구 산물로써 The Policy Process in Korea: Defense Policy and the Selection Process of the Korean Fighter Programme라는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그는 1997년 7월 귀국 이후 이 책자를 저술할 당시까지 한국군의 무기획득 의사결정과 선택을 둘러싸고 파생된 다양한 정책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를 하였다. 이 책은 상기와 같은 그의 연구 성향을 토대로 쓴 것이다.
김종하는 이 책을 쓸 때 이론적 부분은 외국 서적을 주로 참고 했다. 사례 분석을 위해서는 국방부의 ‘국외 국방위원회 국정감사 요구자료,’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록,’ ‘국정감사 국방위원회 회의록,’ 방위 산업체인 삼성항공산업과 대우중공업의 ‘업무현황 보고’와 같은 1차 자료를 활용했다. 자료 보완을 위해서는 국내외 각종 일간지와 저널의 보도 자료를 폭넓게 인용하였다.
이 책에서 제시된 6개의 사례 중 “KFP 주계약업체 선정과정”을 제외한 나머지 사례는 저자가 집필할 당시 소요군인 해군과 공군에서 진행 중인 사업들이다. 따라서 책을 발간한 이후 시점에서는 해당 군의 정책에 변화가 있었을 수도 있고, 사업이 완료된 후 구체적인 결과가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기에, 사례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군의 무기획득 의사결정과 선택을 둘러싸고 누가, 무엇을 하였으며, 어떠한 일이 발생하였는가에 대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당시 상황에 몰입되어 생동감을 느끼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 책을 출간하였다고 한다.
이런 제한사항에도 불구하고, 김종하의『무기획득 의사결정』은 무기의 획득업무와 그것을 위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실무자와 정책 결정자들에게 교훈을 준다. 개인의 단기적 이해가 집단의 장기적 이해와 상충될 때, 자신의 단기적 이해에만 집착하면 집단에 해를 가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자신에게도 장기적 손실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요 논지는 새롭게 설정되어야 하는 무기획득정책의 두 가지 원칙에 관한 것이다. 첫째, 무기획득을 둘러싸고 파생되는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분석․평가하여 해결을 위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높은 전문성과 책임성을 구비한 인사들로 구성된 합리적인 무기획득 의사결정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해․공군의 적극적인 전력증강을 통해 3군 간의 전력 균형을 회복하고 각 군의 상호보완 관계 확대를 도모함으로써 통합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무기획득이 이루어져야 한다. 육군에 비해 해․공군의 상대적 낙후성이 지나친 만큼 그 낙후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해․공군에 대한 자원배분을 크게 확대할 수밖에 없다. 무기획득을 단순히 수량 증가라는 성장률 중심의 숫자적인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해․육․공군 간의 형평성에 기초한 자원배분이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총 6개의 장(章)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 서론에 이어 제2장에서는 무기획득 의사결정의 원칙을 이론적으로 설명하였다. 제3장에서는 6개의 무기획득 사례를 분석하였고 제4장에서 이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 제5장은 보론으로서 국방․군사정책과 국방예산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정책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제6장은 국방획득 개혁을 위한 대통령의 의지에 대해서 언급하였다. 부록으로 관련 전문용어 해설, 각 국가별 잠수함 현황, 무기체계 획득 관련 회의와 위원회 및 관련 기관 및 부서에 대해서 간략히 소개하였다.
제1장은 한국군의 무기획득 의사결정을 합리적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4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썼다. 첫째, 냉전기간 동안 한국은 안보, 국방, 군사정책을 거의 동일 개념으로 사용하여 왔다. 군대의 무기획득은 국가안보와 방위에 직결되어 있다는 ‘성역’과 같은 인식, 군사기밀보호법으로 인해 납세자인 국민들은 무기획득에 투자되는 엄청난 예산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는지, 예산의 운용 및 집행과정에서 부정이나 부당한 이권이 개입되었는지 등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기 어려웠다. 둘째,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는 군의 무기획득정책에 대하여 철저한 감사를 할 만한 전문적 지식과 능력을 보유하지 못했다. 셋째, 언론들도 무기획득에 관련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는 전문성이 크게 부족하므로 군의 무기획득에 대해 분석 및 평가 또는 비판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넷째, 학자들도 이와 같이 폐쇄적인 무기획득 의사결정 과정을 전문화된 학문적 연구의 초점으로 삼으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것들이다(pp.23-24).
무기획득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의문점들도 제기하고 있다. 첫째, 왜 무기획득정책이 국가이익에 부합되지 못하고 비합리적으로 왜곡되는 경우가 발생하는가? 둘째, 무기획득 의사결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비합리적인 문제들을 수십 년간에 걸쳐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pp.26-27). 저자는 이에 대한 답으로서, 무기체계의 선택이 군사전략적→기술적→경제적 판단의 하향식 의사결정 원칙에 따른 고려가 아닌, 정치적 차원의 고려에 의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무기체계 선택을 둘러싼 군사 및 정치 지도자들의 지나친 권력과 영향력 행사로 무기획득 의사결정 과정이 비합리적으로 왜곡된다. 무기획득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다양한 정책상의 문제들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근본 이유 중의 하나는 문제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다. 이는 문제를 해결해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바로 문제를 발생시키는 주된 원인이었기 때문이다(pp.27-28).
제2장은 무기획득 의사결정의 원칙에 대한 이론적 고찰 부분이다. 저자는, 무기획득은 원칙에 근거한 의사결정과 선택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한다. 원칙이란 무기획득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정책행위자들이 그 타당성을 인정하는 선택의 기준-효율성과 책임성-을 의미한다. 그들이 준수해야 할 원칙은 3가지다. 제1원칙은 현재 및 미래의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군사전략이다. 제2원칙은 군사전략적 목표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기술적 대안을 찾는 것이다. 제3원칙은 이러한 대안들 중에서 비용․효과 면에서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즉, 군사전략적-기술적-경제적 판단의 하향식 순서로 의사결정과 선택이 이루어져야만 무기획득 정책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필수적인 효율성과 책임성을 향상할 수 있다(pp.35-36).
제3장에서는 공군의 FX 도입, 해군의 차기 잠수함 도입, 방위산업 구조조정 정책, 러시아 KILO 잠수함 도입, 공군의 중형 수송기 CN-235M 후속 도입, KFP 주계약업체 선정과정 등 6개의 무기획득 사례를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무기체계 획득을 위한 기준이 되는 책임성과 효율성에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고 있다. 그 원인은 한국의 군사 및 정치 지도자들이 특별한 무기체계의 선택을 이끌어 가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군사전략적-기술적-경제적 판단의 하향식 의사결정 원칙을 준수하지 않고, 권력을 행사하여 이러한 원칙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고, 기술적 또는 경제적 분야 등 특정의 판단만을 강조하는 의사결정 및 선택 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다. 저자는, 상술한 바와 같이 원칙이 아닌 특정 판단만을 강조하게 된 것은, 국내외 방위산업체들과 같은 이익집단들과의 특별한 이해관계의 작용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개연성을 강조했다.
[사례 1] 공군 FX사업이다. 군사 및 정치지도자들은 공군의 합리적 대안인 F-15E급 이상의 전투기 도입이라는 대안을 무시했다. 방위산업체와 정부 경제 부처의 기술․경제적 판단만을 적극 수용하는 대안을 고려하여 KF-16 20대를 추가 생산한다고 결정함으로써 책임성과 효율성의 문제를 드러냈다(pp.58-87). [사례 2] 해군의 차기 잠수함 사업이다. 하향식 의사결정 원칙에 의거 3,000톤 급 重잠수함 소요가 결정되어 추진되어 왔다. 1995년 신임 참모총장의 부임 이후, 원칙을 무시하고 기술적 판단을 강조하여 이 계획을 취소하였다. 잠수함 건조 기술 축적이라는 명분 하에 209 개량형 잠수함 사업으로 추진함으로써 책임성과 효율성의 문제를 동시에 드러냈다(pp.88-109). [사례 3] 방위산업 구조조정 정책이다. 209 개량형 잠수함 사업의 주계약업체로 대우중공업을 선정하기 위해 국방부와 해군의 수뇌부들이 방위산업 구조조정이라는 명분 하에 경쟁업체인 현대중공업을 완전히 배제했다. 대우중공업만을 국내 잠수함 건조업체로 선정하여 209 개량형 잠수함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을 발표함으로써 구조조정 그 자체에 커다란 의구심을 갖게 만들었다(pp.110-126). [사례 4] 러시아 KILO 잠수함 도입 사업이다. 러시아 잠수함 도입 시 초래될 수 있는 군사전략적․기술적․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해군의 합리적 지적이 있었다. 하지만 외교통상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은 러시아와 소원해진 외교관계 복원과 정보교류 회복이라는 근시안적 시각에서 러시아 KILO급(2,500-3,000톤) 잠수함 3척의 도입을 결정함으로써 책임성과 효율성의 문제를 발생시켰다(pp.127-146). [사례 5] 공군의 중형수송기 CN-235M 후속 도입 사업이다. 이는 무기획득 의사결정 원칙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대통령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짐으로써 책임성과 효율성의 문제를 초래하였다(pp.147-177). [사례 6] KFP 주계약업체 선정과정이다. 항공산업육성위원회가 대우중공업을 주계약업체로 선정하였으나, 대통령의 권력행사로 삼성항공이 선정됨으로써 책임성에 대한 논란을 제기시켰다(pp.178-193).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국가안보정책 도구인 무기획득이 한국의 군사 및 정치 지도자들의 개인 이익 추구를 위한 도구로 이용되었고, 이는 한국군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과정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군사 및 정치 지도자들이 국가안보에 대한 건전한 판단력을 기초로 한 높은 전문성과 책임성, 전쟁수행 철학에 대한 사명과 비전, 원칙에 따르는 무기획득에 의해서만이 자주국방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다.
제4장 결론에서는 새롭게 설정되어야 하는 무기획득 정책의 두 가지 원칙에 대해서 제시하였다. 첫째, 무기획득을 둘러싸고 파생되는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분석 및 평가하여 해결을 위한 적절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높은 전문성과 책임성을 구비한 중립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합리적인 무기획득 의사결정체계가 마련되어야 한다. 둘째, 해군과 공군의 적극적 전력 증강을 통해 3군 간의 전력 균형을 회복하고, 각 군 간의 보완관계의 확대를 도모함으로써 통합 전력을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무기획득이 이루어져야 한다.
제5장 보론에서는 상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군의 개혁을 위한 씨앗을 뿌릴 수 있는 악역을 담당할 강력한 군사 및 정치 지도자의 출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였다. 개혁이 실패할 경우, 국방 및 군사정책과 이용 가능한 국방예산 사이의 만성적 불일치를 초래하면서 21세기 안보적 위협에 대처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 국방 및 군사정책, 군 구조, 현대화, 준비태세, 하부구조와 국방예산 사이의 균형을 지속적으로 유지토록 해야 한가. 또 전략 환경, 무기체계, 전략 및 전술, 조직 변화에 대한 끊임없는 분석과 평가에 기초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제6장 국방획득 개혁 부분에서는,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확실하고 공정한 원칙-효율성, 효과성, 책임성-과 기준에 따라서 처리하는 것이 획득체계 개혁의 핵심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원칙을 준수하는 것이 ‘더욱 싸게, 더욱 빨리, 더욱 좋은’ 무기 및 장비를 획득하는 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교훈과 그것을 현실적으로 적용시켜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무기획득 의사결정은 군사전략적-기술적-경제적 판단의 하향식 순서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무기획득 의사결정 원칙인 효율성과 책임성이 준수되기 위해서는 전문성 있는 중립 인사들에 의한 의사결정체계가 구성되어야 하며, 이를 통해서 3군의 전력 균형 회복 및 보완관계가 확대되어야 한다. 셋째, 획득체계 개혁을 위해서는 최고 통수권자의 강력한 개혁 의지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 무기체계의 획득을 담당하는 실무자로부터 각 군의 수뇌부, 그리고 최고 정치지도자에 이르기까지, 개인 또는 집단의 이기주의적 사고를 탈피하여, 대승적 차원에서 국가안보에 기여할 수 있는 대안이 채택될 수 있도록 통합적인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상승효과를 노려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우리 한국군이 ‘더욱 싸게, 더욱 빨리, 더욱 좋은’ 무기 및 장비를 획득함으로써 자주적인 국방력을 갖출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은 20년 전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김종하가 제기했던 무기획득 절차의 문제점이 지금은 대부분 개선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거울에 현재를 비추어 교훈을 얻는다는 어느 역사가의 말 처럼,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2003년에 작성한 서평을 다시 띄워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