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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15. 2020

억제(Deterrence) 전략이란 무엇인가?

최종성 억제와 대량 보복 전략, 신뢰성 억제와 유연 반응 전략

프롤로그  


고대 로마 베제티우스의 “만약 그대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civis pacem, para bellum)”와 손자병법의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라는 不戰勝 思想은 억제 전략에 관한 것이다. 전쟁에 대비하는 그 자체로 전쟁을 억제한다는 전제나 희망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억제는 상대방이 취할지도 모르는 행동으로 인한 대가와 위험 부담이 그 행동으로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 줘서 그런 행동을 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즉, 억제란 위협의 행사가 아니라 위협의 활용이다.

 

억제 개념이 전략의 핵심이 된 것은 핵무기의 등장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양극체제 때문이다. 핵무기의 엄청난 위력과 긴 사정거리는 어떻게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가 보다 어떻게 적의 승리를 예방할 것인가의 문제를 부각한 것이다. 만일 적이 공격할 경우, 적으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보복이나 응징을 받게 될 것이라는 위협을 느끼게 함으로써, 적의 공격 행위를 억제하고 전쟁을 예방하는 것이다.


억제 전략의 개념은 위협 정도에 따라 두 가지로 구분한다. 억제하기 위해서는 위협이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최종성 억제’와 위협에는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는 ‘신뢰성 억제’다. 하지만 위협의 난폭함, 즉 위협의 최종성이 합리적 한계를 넘어서 과도해질수록 위협의 신뢰성은 감소하게 되므로 이 두 가지 개념은 이율 배반성을 띤다. 이율배반적 억제의 개념을 구분해서 생각해 본 다음, 최종성 억제에서 신뢰성 억제의 개념으로 변천한 미국의 핵 전략 개념을 통해 이 두 가지 개념과 다양한 정치적 조건과의 관계를 살펴보자.  



최종성 억제와 대량 보복 전략     


최종성 억제

억제를 하기 위한 위협은 강한 인상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최종성 억제 개념이다. 스탠스를 정한 다음, 상대 국가에게 만일 먼저 공격한다면, 가혹한 보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통보하면 억제는 성취될 것이다. 상대 국가는 내 위협의 신뢰성에 의문을 가질 수 있으나, 그럴지라도 상대 국가는 나의 위협 실행 여부에 대해 계속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 전쟁의 부차적 공포, 불확실성을 통한 억제, 기회주의 위협 등은 상대국의 무모함을 견제한다. 또 보복의 크기가 너무 커서 상대국은 내 위협의 실행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해도 먼저 공격하는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다.


가혹한 보복을 전제로 하는 억제 최종성 억제는 신뢰성이 적을지라도 적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것이다. 위협하는 국가가 광범위한 보복을 결심하고 관련 정책을 수립할 경우엔 억제가 달성되어 위협을 실행할 필요가 없다. 위협을 실행해야 하는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위협국을 자극할 필요도 없다.


최종성 억제는 신뢰성의 문제를 고려하고 있지만, 그것은 위협국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만약 위협국이 확고한 결의에 차있다면, 그 위협은 신뢰성이 있으며 절대적인 억제가 가능할 것이다. 위협국은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항복보다는 죽음을 택할 것이라는 결기를 통보하면 된다. 이런 위협이 상대 국가에게 충분한 공포심을 준다면 상대국가는 결코 위협을 실행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개념은 억제를 심리전의 한 도구로 보며 억제의 성공에 대해 낙관적이다.

     

대량 보복 전략

미국의 초기 핵전략으로 최종성 억제에 기초를 둔 대량 보복 전략은 적의 사소한 도발행위에 대해서도 강력한 전략핵무기로 보복하겠다는 전략이다. 즉, 최소의 도발에 대해서도 최대의 응징 보복을 단행하겠다는 전략이다.


대량 보복 전략은 1954년 1월 12일 미국의 국무장관 존 덜레스에 의해 처음으로 제창되었다. 이 전략은 침략을 억제하기 위해 내가 선택한 장소와 시간에 내가 선택한 수단으로 강력히 보복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보여 주는 전략이다. 이 전략은 침략을 억제하기 위해서 국지전 또는 제한적인 도발일지라도 그 종주국에 대해 직접적인 대량의 핵 보복을 가하겠다는 일방적 만병통치약식 예방책이었다. 이는 가상적국에 대해 다음과 같은 사실을 확인시키려는 것이다.


첫째, 침략자는 기만적 간접적 행동으로 자신을 숨길 수 없고, 보복을 당하거나 직접적 대항행동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둘째, 이익이나 편의를 얻기 위한 침략 행위는 그 행위의 크거나 작은 규모에 상관없이, 내가 선택한 장소와 시간에 내가 선택한 수단으로 보복을 받을 것이다.
셋째, 만일 침략자가 미국을 직접 공격할 경우, 그 나라는 대량 핵무기 보복을 감수해야 한다. 


이 전략의 기저에는 광범위한 대량 보복, 즉 위협을 실제로 실행하지 않고 침략을 억제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 또 복잡한 해결이 필요한 모든 도발 행위에 대해 한 가지 방책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현실 세계의 복합적이고 어려운 문제를 하나의 공통분모로 통분하여 해결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신뢰성에 의문을 가진 과학자들이 침략의 모든 경우를 조사한 결과, 핵 대량 보복은 습격, 침투, 유격전, 미국의 중요하지 않은 지역에서의 소규모 전쟁 같은 제한적 또는 간접 침략의 경우엔 신뢰성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와 같은 보복은 핵전쟁을 유발하게 될 것이고, 미국은 부차적으로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관여할 수 없게 될 것이며, 대량 보복은 미국에 대한 직접 공격 같은 최대 규모의 침략의 경우에 한해서만 신뢰성이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신뢰성 억제와 유연 반응 전략     


신뢰성 억제

억제하기 위한 위협은 신뢰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신뢰성 억제의 개념이다. 위협에 신뢰성이 없을 경우, 상대 국가는 억제하려는 국가가 위협을 실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여 도발할 수 있다. 위협의 신뢰성을 위해 위협하려는 국가는 상대국이 공격할 경우에 대비한 실제 대비를 해야 한다. 강화된 난폭성과 확대된 위협 전략이 형식적이거나 그에 필요한 대비태세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허세에 불과하다. 신뢰성은 단순한 결의의 표현과 일방적 결심이 아니다. 위협과 위협하려는 국가와  그 나라의 정치적 상황과 유기적인 관계가 있고 그에 근거한 것이다.


전략은 성공하게 되어 있는 기지의 어떤 가정에 기초하면 안 되고, 실패가 예상되는 부분을 간과해서도 안된다. 예상치 않았던 이유로 억제가 실패하고 상대국이 침략을 감행하거나 여러 가지 다른 이유로 전쟁이 발발해서 억제하려는 국가가 보복하도록 강요할 가능성을 배제하면 안 된다. 최종성 개념에서는 경시되었던 이런 가능성에 대한 관심은 미국의 전략을 신뢰성 억제의 방향으로 움직여서 미국의 핵 전략은 보복을 제한하고 억제를 합리적으로 신뢰성 있게 활용하려는 추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 추세에 근거한 전략이 미국의 유연 반응 전략이다.


유연 반응 전략

유연 반응 전략은 전면적 핵전쟁으로부터 침투, 전복과 같은 게릴라 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의 가능한 도전에 대해 효과적으로 적절히 대응한다는 능력에 입각한 전략이다. 이는 대량 보복 전략의 신뢰성 비판에 대응한 새로운 전략으로써, 도발의 형태와 상황에 따라 적절히 융통성 있게 대응한다는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이 전략은 억제와 방위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므로 공격력과 손실 제한 역량을 동시에 준비하여 적의 침략을 억제하고, 전쟁이 개시될 경우에 무제한적 확전을 피하면서 분쟁 해결을 위한 교섭을 포함한 제조치를 강구하려는 정치·군사적 방책을 의미한다.


이 전략은 선택성, 신중성, 신축성, 통제성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무기를 먼저 선정하고 그에 따른 목표를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당면한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목표와 무기와 공격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케네디 시대의 미국 전략이었던 유연 반응 전략은, 현실적인 소련의 도전은 핵 전면전이 아니라 제한 침략일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따라서 도발에 융통성 있게 대처하기 위해 핵 전면전 대비 외에 재래 전력에 의한 평시 대비태세를 동시에 강화하여 융통성 있는 확전 통제 전략으로 채택하였다.


          

억제 개념의 이율 배반성과 정치적 조건     


억제 개념의 이율배반적 성격은 억제 이론을 실제로 정책에 반영할 경우, 기본 전제인 합리적 정책결정 과정을 제약하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하게 만든다. 억제 이론은 다음의 기본 가정을 전제로 성립된다.     

(1) 억제하려는 측이나 억제를 당하는 측의 정책 결정 주체인 국가는 모두 단일 인격체로 하나의 통일 의지를 가지고 있다.

(2) 억제 국가와 억제를 당하는 국가 모두 동일하게 일원화된 가치관과 억제 전략관을 가지고 있다.

(3) 쌍방 모두 확실하고 충분한 정보에 기초하여 피아의 능력과 상황에 관한 정확한 평가를 하여 예기되는 이해 득실을 정확히 계산한다.

(4) 쌍방 모두 몇 개의 선택 가능한 것 중에서 특정한 전략 목적이나 국익상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한다.     


이런 기본 가정을 현실과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가는 개인처럼 단일 인격체가 아닌 복잡한 조직체이며, 대외정책 결정 시 정책결정자들 외에도 여타 관료 기관이나 그룹이 참여한다. 둘째, 억제 국과 피 억제 국이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가 다를 경우, 양국의 가치관과 억제전략관이 상이할 것이다. 셋째, 완전한 정보의 획득이 거의 불가능하며 인간 능력의 한계로 인해 정확한 판단이나 평가가 어렵다. 넷째, 대외정책결정은 몇 개의 대안을 검토하여 가장 유리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집단 간의 협상이나 타협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 이런 여러 가지 정치 조건은 억제의 최종성 또는 신뢰성에 대한 전략적 접근에 영향을 준다.

 

강대국인 미국은 최종성의 대량 보복 전략으로부터 신뢰성의 유연 반응 전략으로, 전략을 보다 현실적 접근방법을 취하여 억제가 어떤 이유로 인해 실패할 수도 있거나 억제의 효과가 상대적이 될 수도 있다는 이유를 인정하고 있다. 강대국은 핵 공격을 흡수하고 생존이 가능하기 때문에 전쟁의 가능성을 논의할 때 여유가 있으며, 전쟁을 제한시킬 수 있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하게 된다. 강대국에 대해서는 신뢰성 억제 개념이 보다 현실적이며, 강대국 본토에 대한 전면전과 핵 공격 시에만 대량 보복 전략이 유용하다.


반면 약소국은 핵 공격에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핵 억제의 효과가 절대적이 아니길 바란다. 약소국의 자살 위협, 즉 최종성 억제는 결과적으로 신뢰성이 있다. 억제의 최종성 증대는 신뢰성을 감소시킨다는 이율배반적 관계는 강대국과 약소국이 처한 제반 여건에 따라 그 적용 정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에필로그

     

억제란 상대가 취할지 모를 어떤 행동이 초래하는 대가와 그 위험 부담이 상대가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득보다 크다는 것을 보여 줘서 그 행동을 하지 않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보복 위협을 통해 전쟁을 예방하고, 위협이 크면 클수록 그 신뢰성은 감소한다는 명제 아래 억제 개념은 최종성과 신뢰성이라는 이율배반적 성격을 띠고 있다. 억제 개념의 이중성은 국가 조직의 복합적 성격, 억제 국과 피 억제 국의 상이한 정치체제와 이데올로기 문제, 정확한 상황판단의 불가능성, 협상 또는 타협의 산물로서의 대외정책으로 인해, 자국에 보다 적합한 억제 개념 설정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핵전쟁의 흡수 능력으로 인해 강대국은 억제의 신뢰성을 추구하고 약소국은 최종성을 추구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경향은 일반적이며 원칙적인 것은 아니지만, 각 국가는 각자가 처한 상황과 여건에 따라 자국의 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전략 개념을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이 글은 미국과 소련이 핵 군비 경쟁을 하던 시절의 억제 전략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작성한 것입니다. 현재 북한의 핵 무장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의 핵우산이 여전히 필요하다는 측이 있고, 이젠 우리가 주도적 한미 연합방위태세를 유지하거나 독자적인 대북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는 측도 있습니다. 억제 전략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는 북한의 핵을 억제하기 위해 우리가 어떤 전략을 선택하고 어떤 태세를 갖춰야 할 것인가를 구상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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