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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19. 2020

2020년인데 [술 권하는 사회]에 살아야 할까?

일제 강점기 땐 애국적 지성들이 절망감으로 인해 술을 벗 삼아 살았다

엊그제 백령도에서 잠시 나온 며느리가 울면서 전화를 했다. 아들과 같은 부대에 근무하는 동료 군인 가족이 음주운전 차량에 사고를 당해서 갑자기 사망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20대 중반의 5개월 된 아기 엄마라고 했다. 대낮에 만취 상태로 운전하던 60대 후반 남성의 포터 차량이 피해자를 추돌해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섬에 있는 의료시설과 의료진의 능력을 초과하는 수술이 필요했다고 한다. 안개로 인해 응급 헬기가 뜨지 못했고, 해군 함정으로 의료진을 긴급하게 수송했지만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Rest in Peace!


작가가 군인으로 백령도에 근무하던 20여 년 전을 떠올려 보았다. 대민 협조 업무를 위해 어촌계장이나 마을 이장을 만나러 가보면 대체로 그들은 취해 있었다. "어이! 같이 한 잔 하세!" "이봐! 젊은 친구! 같이 한 잔 하자니까!" 이런 말을 들을 땐 재빨리 그 자리를 뜨는 게 상책이었다. 그때가 1998~1999년경이었는데, 2020년에도 여전히 그곳은 "술 권하는 사회"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가해자가 마을 이장이라는 얘기를 들은 후에 그런 심증이 더욱 짙어졌다.


1921년 현진건이 지은 [술 권하는 사회]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이 책의 핵심은 일제 탄압 밑에서 많은 애국적 지성들이 어쩔 수 없는 절망으로 인해 술을 벗 삼게 되고 주정꾼으로 전락하지만, 그 책임은 어디까지나 '술 권하는 사회'에 있다고 자백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저자는 경제적으로 매우 무능한 지식인과 주정뱅이로 동료들과 함께 다방, 술집, 기생집을 전전했던 얘기를 털어놓는다. 일제 하에서 한국 지식 청년들이 사회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가정에서도 이해받지 못했던 갈등과 시대적 상황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때, 전후 산업화를 위해 고달팠던 1960~1970년대, 민주화를 위해 애달팠던 1970~1980년대, 그땐 술을 권하고 마실 만한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현진건이 [술 권하는 사회]를 쓴 지 100년이 지난 2020년이다. 백만 원대의 스마트폰을 온 가족이 한 대씩 들고 다닐 정도로 개인과 국가가 부유해졌고, 대통령을 탄핵할 정도로 민주화도 이루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술 권하는 사회'에서 머물러 있다면,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집단에 대해서 깊이 성찰하고 반성해야 할 것 같다.


가장 인기 있는 여자 연예인들은 반드시 TV의 "소주" 광고에 등장한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소주 판매량이 많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TV 드라마에선 주인공의 아픔과 슬픔과 괴로움을 달래는 장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포장마차나 바에서 술을 마시는 장면이다. 또 회식 장면이 나오면 여전히 '폭탄주'가 나오고 술잔을 좌우로 돌리거나 주거니 받거니 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2020년에도 대한민국은 여전히 '술 권하는 사회'인 것이다.


술을 많이 마셔 본 사람은 음주 이후의 언행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해서는 안될 실수를 한 경험을 갖고 있다. 작가 자신도 지금은 술을 끊었지만, 과거에 수많은 해프닝의 주인공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술을 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술을 권하지 않으면 상대방이 서운해하거나 나를 예의 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우리의 화려한 겉모습은 2020년에 어울리지만, 우리의 내면세계는 아직 100년 전의 유약함에 머물러 있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정녕 2020년에도 '술 권하는 사회'에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술 권하는 사회에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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