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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09. 2020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중학교 1학년 국어 첫 교시 첫 번째 쪽지 시험

중학생이 되었다.

까만 교복을 입고 빡빡머리 위에 모자를 눌러쓴 중고생의 반열에 올랐다.

들뜬 마음으로 책가방을 옆구리에 끼고 등교했다.


첫째 시간, 국어다.

선생님이 쪽지시험을 본다고 하셨다.

백지를 한 장씩 나눠 주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순서대로 끝까지 쓰라고 하셨다.


국민학교 1학년 때 가나다라, 가갸거겨 같은 걸 배운 기억은 나는데,

기역 니은 디귿을 써본 기억은 없다.

하지만 우등상을 받고 국민학교를 졸업한 입장에서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큰 뜻을 품고 들어 온 중학교 국어 시간에 이렇게 수준 낮은 시험을 보다니!


어쨌든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잘 들어야 한다고 배웠기에 답을 적기 시작했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응 지읒 치읓 키읔 티읕 피읖 히읗

모두 적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친구들이 아직도 다 쓰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다시 생각해 봤다.

명색이 중학교 시험인데 이 정도로 쉬운 문제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모두 '으' 밑에 자음을 쓰는데 왜 기역과 시옷은 '여'와 '오'일까?

기윽, 시읏인데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던 건 아닐까?

이렇게 쉽다면 급우들이 아직까지 답을 적지 못하고 있진 않을 거야!


시험 끝 오 분 전이었다.

답을 고쳐 썼다.

기윽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읏 이응 지읒 치읓 키읔 티읕 피읖 히읗.


답안지를 회수한 후, 선생님이 칠판에 답을 적으셨다.

기역

니은 디귿 리을 미음 비읍

시옷

이응 지읒 치읓 키읔 티읕 피읖 히읗.


아뿔싸!

처음 적은 게 정답이었다.

두 개나 틀리다니.

그래도 다 맞힌 친구는 없었다.

받침으로 같은 자음을 쓰는 것조차 모르는 친구들이 태반이었다.


그 이후, 난 시험에서 답을 절대 고치지 않는다.

아리송한 문제는 처음 떠오른 게 정답일 가능성이 높다는 고정관념이 생겼다.

모르는 건 찍고, 아는 건 풀고, 알쏭달쏭한 건 처음 떠오른 답을 적었다.


2학년이 되었다.

그때 그 국어 선생님이 담임이었다.

1학기 말 성적 발표 후 선생님이 교무실로 오라고 하셨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네가 1등 한 건 다른 애들이 공부를 너무 안 해서지 네가 잘해서가 아니다.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 이후 두어 번 더 1등을 했지만 선생님은 매번 똑같은 말씀을 하셨다.

다른 친구들이 공부를 안 해서 네가 1등 할 수 있었던 거니까 자만하지 말고 더 열심히 하라고.


그 후로는 공부의 재미를 잃었다.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성적이 뚝뚝 떨어졌다.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더 이상 내 주변에 우등생은 없었다. 모범생도 없었다.

중학교 때 그 선생님의 몇 마디는 나의 학창 시절을 바꾸어 놓았다.

난 이제 우등생과 모범생과 어울리던 착하고 말 잘 듣는 학생이 아니다.

친구들과 어울려 놀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선생님이 고맙다.

공부에 대한 관심을 세상과 친구에게 돌릴 수 있게 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런 인생 경험이 쌓여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 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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