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와 리델 하트 전략의 현대적 유용성과 한국의 군사전략 적용방안
리델 하트는, 손자에 필적할 만한, 군사 사상가는 클라우제비츠뿐이라고 했다. 클라우제비츠보다 2천 년 앞선 시대의 손자가 더 명확한 안목, 심오한 통찰력, 항구적 신선함을 지녔다고 극찬했다. 리델 하트는 손자병법을 읽은 후, 손자의 전략 사상이 여러 측면-특히 간접접근전략 면-에서 자기와 일맥상통 함을 발견했다. 그로 인해 군사전략 사상에 대한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agelessness) 원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손자가, 전쟁연구를 위한 불변의 가치 기준이 되는, 전쟁연구를 위한 가장 간결한, 입문서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의 저서인 『전략론(Strategy)』 서두에 손자병법의 중심 사상 13개를 수록해서 자기가 손자의 영향을 받았음을 밝혔다. 이처럼 손자병법은 후대 전략사상가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 글은 손자의 병법서에 흐르는 부전승 개념과 본질이 리델 하트의 대전략에 미친 영향에 대해 썼다. 손자의 군사력 운용과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전략 개념 비교, 현대전 사례연구로 그들이 제시한 군사전략의 현대전 유용성과 한국 군사전략 적용방안을 검토해보자.
부전승(不戰勝) 사상은 손자병법의 전편에 흐르는 기본 논지(論旨)다. 손자는 전쟁에 국민의 생사와 국가 존망이 달려 있으므로 최후 수단으로 전쟁을 해야 하며, 승산이 있을 때 전쟁을 시작하라고 했다. 미리 승패를 예측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무모한 전쟁은 하지 말고, 승리가 예상될 때 전쟁을 하라는 것이다.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 목적 달성 방법을 추구하고, 전쟁을 하면 그 폐해를 적극적 회피하고 최소 손실로 승리하는 방법을 모색할 것을 강조했다.
부전승 사상의 본질은 손자병법 모공 편(謨攻篇)에 수록돼 있다. “무릇 전쟁을 하는 가장 훌륭한 방책은 적국을 온전한 채로 두고 굴복시키는 것이며, 적의 국토를 파괴하고 굴복시키는 것은 차선책이다(全國爲上 破國次之).” 따라서 “싸우지 않고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결론적으로 “가장 훌륭한 방책은 적의 계획을 분쇄하는 것이고, 그다음이 적의 동맹관계를 끊어 적을 고립시키는 것이며, 그다음이 적의 군대를 정벌하는 것이고, 최하의 방책이 적의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上兵伐謨 其次伐交 其次伐兵 其下攻城).”
리델 하트의 대전략과 손자의 부전승 사상은 어떻게 연계되는가? 리델 하트는 “대전략(Grand Strategy)이란 전쟁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한 국가 또는 국가군(國家群)의 모든 자원을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리델 하트의 대전략은 전쟁수행지도 정책이므로 군사적 차원의 대전략을 수행하는 군사전략과 구분된다. 군사전략이 전쟁에 국한된 것이라면, 대전략은 전쟁의 한계를 넘어서 전쟁 이후의 평화까지 포함한다. 대전략의 목적은 “전쟁 이후의 보다 나은 평화”를 구축하는 것, 즉 전쟁 이전의 평화보다 더 나은, 전쟁 이후의 평화 상태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리델 하트는 대전략 수행 원칙 4가지를 제시했다. 그중 2개가 손자의 사상과 일치한다. 첫째, 전쟁수행은 이성적으로 통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전승을 획득하기 위해 많은 전투력을 소진한 경우, 승리의 대가로 국력 쇠퇴를 지불해서 전후 그 이전보다 나은 평화의 상태에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둘째, 전쟁수행은 속전속결로 이뤄져야 한다. 승리는 전쟁 전보다 전후가 더 평화로워지는 것이므로, 속전속결로 전쟁비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리델 하트의 대전략 개념과 수행 원칙은, 가능한 무력을 사용치 않고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며(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 전쟁을 할 경우엔 속전속결을 통해 최소 손실로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것(兵聞拙速 未睹巧之久也 夫兵九而國利者, 未之有也. 兵貴勝 不貴久)을 강조한, 손자의 부전승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리델 하트가 손자병법 탐독 후의 깨달음을 시인하였듯이, “전쟁 이후의 보다 나은 평화”를 추구하는 그의 대전략 개념은 손자의 “부전승” 사상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손자의 군사력 운용 개념과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전략은 대동소이하다. 리델 하트의 전략개념과 손자 병법서에 나타난 명구(名句)를 비교해서 리델 하트에 스며들어 있는 손자의 사상을 찾아보자.
제1, 2차 세계대전 경험을 통해 리델 하트는 “진정한 목적은 전투의 추구가 아니라 유리한 전략적 상황을 추구하는 것이며, 전쟁을 종결짓진 못해도 전투에 의해 유리한 위치를 지속 유지하면서 전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교훈으로 “상대방의 저항력을 미리 약화시키는 것”에 주안을 둔 간접접근(Indirect Approach) 개념을 도출했다. 그는 전투력 요소를 시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물질적 요소와 변하지 않는 심리적 요소로 구분했다. 인간 본성은 정면으로부터의 접근에 대해서는 긴장하고 대비하나, 예기치 않은 측후방으로부터의 접근에 대해서는 심리적 마비현상을 가져온다. 따라서 측후방의 간접접근은 상대의 전투력이 붕괴되거나 와해되는 현상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간접접근은 손자가 주장한 “멀리 돌아가지만 직행(直行)을 앞지르는 방책(迂直之計),” 즉 허(虛)를 보이면서 실(實)을 취하는 우회 기동의 방법과 일치한다. 리델 하트는 유리한 전략적 상황을 조성하기 위해 책략으로 적을 기만하고 교란(dislocation)함으로써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했다. 손자가 주장한 “용병이란 적을 속이는 것(兵者 詭道也),” 즉 임기응변의 술책을 이용하여 적을 기만하고(欺敵) 다스리며(料敵) 공격하는 것(攻敵)과 일치한다.
리델 하트는 간접접근 조건으로 적 균형을 깨뜨리고 마비효과를 얻기 위해 적에 대한 심리적 물리적 교란을 강조했다. 물리적 교란은 적이 예기치 않았던 방향으로 접근하여 적을 동요시키고 균형을 잃게 하는 것이다. 심리적 교란은 물리적 교란으로 적의 저항 의지를 상실시키는 것이다. 적 정면으로 직진하는 기동은 적의 물리적 심리적 균형을 견고케 하며 적의 저항력을 강화시킨다. 따라서 물리적 측면의 최소 저항선과 심리적 측면의 최소 예상선을 지향하여 적의 균형을 교란하는 것이 계산된 간접접근의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리델 하트의 최소 저항선은 손자가 주장한 “적이 대비하지 않은 곳으로의 공격(攻其無備)”과 일치하고, 최소 예상선은 손자의 “적이 예상하지 않은 곳으로의 진출(出其不意)”과 일치한다.
결론적으로 간접접근전략이란 적 부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적의 심리를 지향하여 적 행동의 자유를 박탈하고 저항가능성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다양한 책략에 의한 물리적 심리적 견제와 교란, 기만, 기습과 기동의 조화를 통해 아측에 유리한 전략 상황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는 손자가 주장한 “전투는 원칙(正)으로 적과 대치하고 변칙(奇)으로 승리를 쟁취한다(以正合 以奇勝)"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따라서 손자의 군사력 운용개념과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전략 개념은 그 전반에 걸쳐 동일한 사상적 기조를 띄고 있다.
현대전에서 손자와 리델 하트의 전략 개념이 적용된 사례를 찾아보자. 1950년대 인천 상륙작전은 적의 최소 예상선이자 최소 저항선인 인천에 연합군이 상륙돌격을 해서 북한군 병참선을 차단하고 심리적 마비효과를 달성한 것이다. 이는 연합군의 반격 작전을 위한 공세 이전의 호기를 획득한 작전으로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전략의 대표적 사례다. 1960년대 베트남 전쟁 시 수세적 대치 단계에서 주민 선동과 유격전으로 무장세력을 확장시키고, 여건 조성 후 역량이 갖춰지면 대규모 정규전과 유격전으로 총공세를 감행한 베트콩의 전략은 손자의 兵者 詭道也 또는 以正合 以奇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1980년대 포클랜드 전쟁 시 영국 특공대의 페블 섬 기습상륙작전과 영국 해병대의 폭스만 기습상륙작전은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전략과 손자의 迂直之計, 攻其無備 出其不意를 적용할 수 있다. 1990년대 걸프 전쟁 시 해병기동군(MEF: Marine Expeditionary Force) 10만 7천여 명으로 상륙양동을 해서 전략적 기만을 달성하고 이라크군 12개 사단을 고착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다국적 군의 대규모 우회기동을 통해 이라크군을 포위해서 지상전을 성공으로 이끈 사례다. 여기서는 상기 모든 전략을 적용시킬 수 있다.
미국 국제정치학자 마이클 클레어는 자국의 이익 추구를 위해 타국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방법을 단계별로 경제 및 군사원조, 경제제재, 은밀한 개입, 준군사개입, 직접 군사개입 등 5가지로 분류했다. 이는 국가 이익 추구를 위해 가용한 수단을 모두 사용한 후에 최후 수단으로 군사력을 사용하여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군사력을 사용하는 분쟁이나 전쟁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이므로 최후의 수단(last resort)이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통해 한반도 위기시 미군 증원의 인계철선 역할을 하는 주한미군을 파견하는 미국의 경우, 선전포고, 법이 정한 특별한 권리, 미국과 국가 소유물에 대한 공격으로 인한 국가 긴급사태시를 제외한 군사력 사용시 대통령은 국회의 사전 동의를 얻어야 한다. 한국의 경우도 해외 파병 시에는 국회 인준을 거쳐야 한다. 대다수 민주주의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군사력의 사용을 신중하게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손자의 “부전승” 사상과 “전후의 보다 나은 평화”를 추구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전쟁을 해야 한다는 리델 하트의 대전략 사상은 현대에도 유용하다. 손자의 迂直之計와 리델 하트의 간접접근전략은 대양해군 건설 일환으로 한국 해군 해병대가 추구하는 해군-해병대 팀 구상의 전략적 배경이 다. 전략적 기동성, 임무형 편조의 융통성, 자체 군수지원을 통한 생존성과 지속성을 보유한 해군-해병대 팀을 구성하여, 유사시 적의 측후방으로 기동하여 심리적 교란과 전략적 마비효과를 통해 아군 주력의 전승을 보장한다는 논리를 뒷받침하는 것이다.
리델 하트는 손자병법을 처음 접한 후, 2천 년 전의 동양 사상과 자기 전략사상이 일맥상통함에서 진리의 근원은 불변한다는 것을 느꼈다. 마찬가지로 두 전략사상가의 전략개념은 현재에도 우리의 전략개념 정립을 위한 준거 틀(frame of reference)을 제공한다.
손자와 리델 하트의 전략을 한국의 군사전략에 적용하기 위한 방안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21세기 대양해군 건설, 공지기동해병대 건설을 목표로 하는 해군과 해병대가 합력해서 해군-해병대 팀을 구성하고 운용할 수 있는 논리의 지속 보완이다. 즉, 전략적 기동성을 갖추기 위한 해상 및 공중 무기체계의 도입, 임무형 편조의 융통성을 보장하기 위한 부대구조의 개선, 자체 군수지원을 통한 생존성을 보장하기 위한 각종 체제 및 구조의 개선이 멀지 않은 미래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국방기본정책서와 합동군사전략기획서에 이 기본 구상과 전략 틀이 그려져 있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이제 해군과 해병대의 앞에 놓여 있는 제도판 위에 공동 노력을 기울여 구체적 설계도를 그려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 글은 작가가 2003년에 해군대학에서 작성한 글을 2020년에 부분 수정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