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호텔 레스토랑 외엔 경양식집이었다
후배 부부를 저녁식사에 초대해 놓고 조금 일찍 약속 장소에 나왔다. 남산 기슭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La Corte.
여긴 십여 년 전 큰 동서가 소개한 집이다. 그즈음엔 김종필 씨가 봄볕을 쬐러 가끔 들렀다고 들었다. 어떤 이의 개인 주택을 개조해서 레스토랑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지금은 그 자리에 그네가 있지만, 처음 왔을 땐 그리스 신전에나 있을 것 같은 기둥이 몇 개 있었다. 그 나름대로 운치가 있었다.
오랜만에 와보니 야외 테이블도 많이 설치했고, 잔디가 많이 훼손되었다. 유명세를 타면서 손님이 많아져서겠지. 예전엔 커피와 차만 마셔도 됐지만 지금은 식사 손님 위주로 바뀌었다. 처음 왔을 때가 더 좋았던 것 같다.
아내와 함께 후배 부부를 대접할만한 메뉴를 고르다 보니 스테이크가 눈에 띄었다. 스. 테. 이. 크. 네 글자를 보니 옛 추억이 떠올랐다. 레스토랑에 처음 갔던 날. 그땐 대부분 경양식집이라고 불렀다. 호텔에나 가야 레스토랑이라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니까 호텔 레스토랑에 고등학생이던 형과 중학생이던 내가 갔던 것이다. 아마 형도 처음이었을 거다.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데 따뜻한 빵 몇 개와 네모난 마가린 조각처럼 생긴 게 몇 조각 나왔다. 뭔지 모르던 난 형만 바라봤다. 형이 포크로 마가린처럼 생긴 것을 푹 찍더니 맛있다며 먹었다. 마가린을 좋아했던 형의 입맛에 그게 맞았었나 보다. 그게 빵에 발라먹는 버터였다는 걸 알게 된 건 한참 지나서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였다.
지금도 레스토랑에 오면 그때 형이 버터를 맛있게 먹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땐 레스토랑에서 뭘 먼저 먹어야 하는지 포크와 나이프를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몰라도 괜찮았다. 그런 걸 몰라도 창피하지도 않았다. 그냥 맛있게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오늘 만나기로 한 후배 부부는 초등학생 남매를 데리고 오기로 했다. 아내가 아이들과 함께 초대했다고 한다. 형과 내가 레스토랑에 처음 왔던 그때보다 훨씬 더 어린 아이들이다. 이 아이들도 격식을 차리지 않고 맛있게 잘 먹어 주면 좋겠다. 어린 시절의 따뜻했던 시절을 회상하며 후배 부부와 어린 손님들을 기다린다.
10년 전의 La Corte엔 그리스 느낌의 기둥 조형물이 몇 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