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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Oct 05. 2020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미술 선생님의 권유대로 미대에 갈 걸 그랬나?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면 그림 그리기에 재능이 있었던 것 같다. 국민학교 3~4학년 즈음, 교내 사생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은 기억이 난다. 친구들은 모두 최우수상을 받은 그림보다 내가 훨씬 더 잘 그렸다고 했다. 나도 왜 내가 우수상인지 궁금했다. 담임 선생님께 가서 여쭤봤다. “친구들이 모두 최우수상을 받은 그림보다 제 그림이 훨씬 더 잘 그렸다고 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구요! 근데 왜 제 그림이 우수상이죠?” 지금 생각해봐도 무척 당돌한 행동이었지만, 그때 벌써 내겐 반골 기질과 저항 의식이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도 내 그림이 훨씬 잘 그렸다고 생각한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최우수상을 받은 그림은 어린이가 그린 그림 같은데, 내 그림은 어른이 그려준 것 같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헐! 만일 그때 내가 최우수상을 받았더라면 미술학도의 꿈을 키웠을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땐 교장 선생님이 화가셨다. 소풍을 갈 때마다 모든 학생이 수채화를 한 점씩 그려서 내야만 했다. 친구들과 실컷 놀다가 마감 직전에 대충 끄적여서 그린 풍경화를 내곤 했다. 그래도 최소한 입상, 가작, 특선... 이런 딱지가 붙은 내 그림이 교내에 전시되곤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미술 시간 2주에 걸쳐 네 시간 동안 유화를 그리는 시간이 있었다. 세 시간 반을 놀다가, 나이프와 붓으로 대충 끄적여서 추상화라고 제출했다. 그다음 미술 시간에 서울대 출신이었던 미술 선생님께서 내 작품이 그려진 캔버스를 들고 나타나셨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유화는 이렇게 그리는 것이다. 붓의 터치, 나이프를 이용한 질감, 추상적인 색감...” 한참 설명을 하시더니 미대로 진학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난 당당하게 대답했다. “아니요.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사실 난 그림 그리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미술 수업 시간 외엔 별도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다. 그냥 생각나는 대로 손이 움직이는대로 끄적이면 남들이 잘 그렸다고 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림과 무관한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오십 대 중반을 넘어서는 지금에 와서 가끔씩 그런 생각이 든다. 미술 선생님 말씀대로 미대에 진학할 걸 그랬나? 프로스트의 시구처럼 누구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남아있나 보다.




가지 않은 길(로버트 프로스트)


단풍 든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몸이 하나니 두 길을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참을 서서 낮은 수풀로 꺾여 내려가는

한쪽 길을 멀리 끝까지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똑같이 아름답고, 아마 더 걸어야 될 길이라 생각했지요.

풀이 무성하고 발길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그 길도 걷다 보면 지나간 자취가 두 길을 거의 같도록 하겠지만요.

그날 아침 두 길은 똑같이 놓여 있었고,

낙엽 위로는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습니다.
아, 나는 한쪽 길은 훗날을 위해 남겨 놓았습니다!
길이란 이어져 있어 계속 가야만 한다는 걸 알기에,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거라 여기면서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어디에선가
나는 한숨지으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했다고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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