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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02. 2020

모터사이클과 고교시절의 질주 본능

시골친구들은 나의 로망인 오토바이를 누구나 다 탔다

고교 시절, 대학생인 아는 형이 오토바이를 타고 여자 친구들과 놀러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다. 영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질주하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당시 부모님께서 시골로 이사하시고, 난 서울에 남아서 하숙하던 시절이었다.


학교 친구들에게 오토바이가 있거나 타 본 적이 있는지 물어봤다. 모두의 로망이었지만 서울 친구 중에는 거의 없었다. 주말에 시골 집에 내려갔다. 동네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오토바이를 타 봤냐고! 절반 이상의 시골 친구들이 오토바이를 탈 줄 안다고 했다. 바쁜 농촌에선 아버지 심부름이나 일손을 돕기 위해서 오토바이나 경운기를 운전할 일이 많다고 했다.


나와 서울 친구들의 로망인 오토바이를 시골 친구들은 누구나 다 탔던 것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언젠간 나도 오토바이를 타고 영화 속 주인공처럼 달려 보겠다고.


어느 날, 아버지의 지인이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놀러 오셨다. 기회를 놓칠세라 그분께 졸라 댔다. 오토바이 타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그분이 흔쾌히 허락해서 시동을 걸고 출발하는 법을 배웠다-그때만 해도 손으로 클러치를 잡은 채, 발로  페달을 밟아서 시동을 걸고 클러치를 서서히 놓아야 했다. 그리고 시동이 걸리자마자 난 그대로 앞으로 달렸다. 영화에서 본 대로 부앙, 부앙, 손목을 돌려서 굉음을 내가며 시골길로 한참을 달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토바이가 푸르륵, 푸르륵하더니 시동이 꺼졌다. 기어 변속하는 방법을 배우지 않은 채, 시동을 걸고 1단으로 달리다 보니 과부하가 걸렸던 모양이다. 내가 달려올 때 부앙, 부앙 소리를 내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계속 쳐다보곤 했던 기억이 났다. 내가 멋지게 보여서 그런 줄 알았는 데! 아뿔싸! 과부하로 시끄러운 엔진 소리 때문이었던 것이다.


거기서부터 오토바이를 끌고 집까지 반나절을 걸어서 돌아왔다. 다행히 아버지와 지인은 다른 일로 바빠서 그런 일이 있던 것을 눈치채지 못하신 듯했다. 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오토바이 키를 슬그머니 놓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며칠 후 그분께 기어 변속 방법을 다시 배웠다.


겨울이 왔다. 오토바이 타는 법을 알려주신 그분이 집에 오셨다. 아버지가 주신 쎄무 잠바를 입고 오토바이 키를 받아서 질주 본능을 달래러 밖으로 나갔다. 이번엔 곧게 뻗은 산업도로 위를 달렸다. 기어 변속을 해가며 신나게 달렸다. 그러다가 오토바이를 탄 채로 도로 위에서 미끄러졌다. 빙판을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다행히 속도를 늦추었기에 크게 다치진 않았다. 길게 형성된 빙판도 부상 방지에 한몫을 했다. 오토바이를 탄 채로 넘어져서 빙판 위로 미끄러진 채로 쭈욱 밀려갔다. 핸들을 잡은 채로 넘어진 쪽 손가락에 찰과상을 입었다. 오토바이도 핸들 부분만 약간의 스크래치가 생긴 것 외엔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지인께 말씀드렸다. 빙판에 미끄러져서 핸들이 조금 까졌다고. 다치지 않았으면 됐다고 말씀하셨다. 나중에 들었지만 오토바이에 피가 묻어 있었다고 한다. 하긴 까진 손가락에서 피가 뚝뚝 흘렀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나의 질주 본능 앞에서 그까짓 까진 손가락이 뭐 그리 대수겠나!


그 이후론 그분께 오토바이를 빌려 탈 수 없었다. 오토바이를 처분하고 중고차를 사셨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고교 시절 질주 본능과 오토바이에 대한 로망은 막을 내리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 서울 친구들은 몰랐다. 서울에선 제일 잘 나간다는 친구들만 탔던 오토바이를, 시골 친구들은 누구나 타고 다녔다는 사실을. 난 그때 그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달렸던, one of them이었다. 하지만 서울 친구들에겐 얘기하지 않았다. 분명히 서울 친구들이 벌떼같이 달려들어 오토바이 타러 같이 가자고 졸라 댔을 테니까!


일반 오토바이를 끌고 모래사장에 들어가서 영화 속 주인공을 흉내내려 했던 청소년기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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