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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n 08. 2020

묵도(默禱)와 묵상(默想)에 대하여

묵도(默禱)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예배 형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프롤로그


개신교 교회에서 예배를 시작할 때 "다 같이 묵도하심으로 오늘 예배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멘트를 많이 사용한다.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 예배를 시작할 때 사용하는 '묵도'라는 용어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라는 것을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2년 전 국내 성지 순례를 하면서 철원에 있는 교회 몇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어느 교회의 목사님께서 그 교회 교인들의 순교사에 대해 들려주셨다. 일제 시대와 6.25 전쟁 시기에 순교한 분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묵도(默禱)라는 용어는 신사 참배할 때 사용하던 용어라는 것을 알려 주셨다. "땡땡땡" 하고 종을 치면서 묵도를 하는 것은 일본의 신사 참배하는 형식이었다는 것이다. 묵상(默想)에 대한 글을 쓰려다가 묵도가 떠올라서 서 두 용어의 의미를 함께 되새겨 보면서 정리하려고 한다.



[묵도]에 대하여


'묵도'라는 용어의 기원은 일제 강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기독교 선교 초창기에는 '묵도'라는 말이 예배 순서에 없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이 우리 예배 시간에 '묵도' 순서를 넣도록 강요하였다. 여기서 '묵도'는 신사 참배 때나 일본 사람들이 집에서 자기들이 믿는 신들에게 예배할 때 마음으로 신들을 생각하면서 묵념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래서 일본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에 앞서 자기들의 신들을 먼저 숭배하도록 예배 순서에 '묵도'를 넣게 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결코 예배의 한 요소가 될 수 없으며, 결과적으로는 이방 신을 인정하는 불경스러운 행위다. 근래에 교회들마다 찬송가나 오르간 연주로 예배를 시작하면서 이런 표현이 자연스럽게 사라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전통 방식을 따라 '묵도'로 예배를 시작하는 교회들이 있다. 따라서 굳이 이런 순서를 포함시킨다면 '묵도'가 아니라 '묵상'(시편 1:2), 아니면 '조용한 기도'로 표현을 고치는 것이 좋다. 간혹 '묵상 기도'란 말을 사용하기도 하는 데, '묵상'이 '말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드리는 기도'라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으므로 이는 이중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

- 출처: [교회용어사전], 생명의 말씀사, 2013.9.16.


요즘에는 예배의 순서나 형식보다 본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예배에 사용하는 용어가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사용하게 된 것인지를 알고 사용하는 것과 모르고 사용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묵도'라는 용어보단 '조용한 기도' 또는 '묵상'으로 고쳐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렇다면 '묵상'이란 무엇인가? 그저 조용하게 말없이 기도하는 것일까?



[묵상]에 대하여


묵상의 어원은 히브리어와 라틴어의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먼저 히브리어다. 구약에서 '묵상하다'는 히브리어 '하가'와 '시아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하가'는 속삭이다, 곰곰이 생각하다, 중얼거리다, 귓속말하다, 고함치다, 이야기하다, 상상하다, 연구하다의 의미를 지닌다. '시아흐'는 대화하다, 친하게 말하다, 숙고하다, 선포하다, 기도하다, 상념에 젖다의 의미다.


영어로 묵상은 meditation이다. meditation의 어원은 라틴어 medikelus로 약(medicine)이라는 뜻이다. 약은 약봉지나 병에 담겨 있을 땐 효력이 없다. 몸속에 투약해야 약효를 발휘한다. 성경 말씀도 지식으로만 머리에 남아있고 심령 속에 살아 있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 성숙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 출처 : m.blog.daum.net>esther1012



묵상(默想, meditation)은 약이 몸안에 퍼져서 약효를 내듯이 어떤 생각이나 사실이 인간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섭리와 역사를 사색하고, 하나님과 영적 교제의 시간을 통해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는 사고 활동을 하는 것이다. 즉, 내 인격이 하나님 말씀 속에 몰입되어 하나님을 체험하는 필수적 훈련인 것이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로지 주님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밤낮으로 율법을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함 같으니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다. - 시편 1:1-3.




[신사 참배]


신사 참배(神社參拜) 무엇인가? 신사 참배를 어떻게 강요 당했는가?

신사 참배는 신사의 종교의식에 참여하여 절하고 예를 올리는 행위다. '신사'는 일본 고유 종교인 신도(神道)의 신령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장소다. 일본은 우리나라에 침략 야욕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부산 용두산에, 그리고 한일합방이 되던 1910년에 대구, 평양 등지에 11개의 신사를 세웠고, 1919년 말에는 36개의 신사(神社)와 46개의 신사(紳祠)를 세웠다. 그리고 1918년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이라 부르는 거대한 신사를 착공하여 8년 만인 1925년 6월에 완공하였다. 이를 기화로 조선 총독부는 헌법으로 "모든 종교는 최고의 신(神)인 천황 아래서만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라고 선언하고 신사 참배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기독교를 비롯한 전문학교 학생들이 반대하자 다소 자유롭게 하도록 규정을 완화하였다. 그러다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일본은 관공서를 비롯한 학교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신사 참배를 강요하였다. 이로 인해 미국 북 장로교회와 남장로교회 선교부가 세운 학교들은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폐교되거나 자진 폐교하는 일들이 속출했다.


1937년 9월 중일전쟁을 앞둔 일본은 모든 조선 사람들에게 전승(戰勝)을 기원하는 신사 참배를 강요했고 결국 모든 종교 단체도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에 안식 교회나 성결교회, 감리교회, 천주교회 등은 신사 참배를 수용하였다. 그러나 장로교회는 끝까지 신사 참배를 반대하며 많은 고초를 겪고 있었다. 이에 일본은 강하게 반발하던 주기철, 이기선, 김선두 목사 등을 사전에 구속시키고 신사 참배에 협조적인 목사들을 선동하여 1938년 9월 9일 평양 서문 밖 교회에서 열린 장로교 제27회 총회에서 신사 참배를 결의하게 하였다. 당시 일본은 경찰을 동원하여 교회 밖을 에워싸고 97명의 경관들이 교회 안 강단 위와 193명의 목사들 사이사이에 앉아 신사 참배를 강제로 결의하게 하였다. 결국 총회 이틀째 되는 날 오전 10시 40분 평양노회장 박용률 씨가 신사 참배를 제안하였고, 평서 노회장 박임현 씨의 동의와 안주노 회장 길인섭씨의 재청에 총회장 홍택기 목사가 가(可)만 묻고 부(否)는 묻지도 않은 상태에서 전격적으로 통과시킴으로써 공식적으로 신사 참배를 결의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블레어(Blair), 헌트(Hunt, 한국명 '한부선')를 비롯한 30여 명의 선교사가 강력히 항의하며 단상으로 향했으나 모두 일본 무술 경관의 제지에 막혀 교회 밖으로 끌려 나와야 했다. 이에 총회장 홍택기 목사는 '신사는 종교가 아니며 기독교 교리에도 어긋나지 않는 애국적 국가 의식이기에 솔선해서 국민정신 총동원에 적극 참가하여 황국신민으로서 정성을 다해 달라'는 취지의 선언문을 채택하였다. 그해 12월 12일에는 신사 참배에 주도적 역할을 한 장로교 목사들을 비롯한 감리교, 성결교 등 각 교단 목사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신궁들을 참배하고 돌아왔다.


1939년 9월 8일 신의주 제2예배당에서 회집한 제28회 총회 예배에서는 '궁성요배(동방요배, 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여 절하는 의식), 국가 봉창, 황국신민 서사 제창, 찬송가(32), 기도, 성서 봉독(막 13:1-7), 취지, 규약, 선언, 내빈 축사, 축전피로, 묵도(황군 장병과 동양 평화를 위하여), 찬송가(1), 축도' 등이 행해졌다(제28회 총회 회의록 16-17쪽). 또 이 자리에서는 국방헌금 및 황군 위문금 모금을 결의했다. 뿐만 아니라 제29회 총회에서는 10월 20일을 황실 기념 애국 주일로 정하고, 1942년 제31회 총회에서는 애국기(愛國機) 헌납을 결의했다. 이후 일본은 기독교인을 설득하기 위해 각 지역별로 연사를 내려보내 강연회를 갖는 등 신사 참배 정당화에 열을 올렸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황도 정신연성소(精神鍊成所)에서 정기적으로 정신 교육을 받아야 했다.

- 출처 : [교회용어사전], 생명의 말씀사, 2013.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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