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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01. 2020

하랄트 뮐러 [문명의 공존]

하랄트 뮐러(Harald Müller)의 反 헌팅턴 구상을 소개한다.

[문명의 공존(Das Zusammenleben der Kulturen)]은 20년 전 어느 후배에게 받은 책이다. 그 당시 인도-파키스탄 간 종교분쟁과 영토분쟁이 진행 중인 캐쉬미르(Kashmir) 지역으로의 파병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그 지역으로 떠나기 전에 읽으면 갈등과 분쟁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 그 후배의 사려 깊은 선물이었다.

먼저 캐쉬미르 지역에서의 파키스탄-인도 갈등에 관한 내용을 정리해 보자. "파키스탄과 인도 간의 갈등은 세 차례의 전쟁과 무수한 국경선상의 소규모 전투, 그리고 핵과 미사일 군비 경쟁을 불러왔다. 이 갈등의 원인은 근본적으로 영국의 식민지 통치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은 통치권 유지를 위해 피식민 민족 간의 인종, 종교 차이를 이용했다. 영국 치하에서 특권 계층의 대우를 받았던 모슬렘은 독립과 함께 다수의 힌두족이 거주하는 국가에서 기존의 특권을 잃을까 봐 두려워했다. 그 결과 모슬렘 지도부는 자기들만의 국가를 요구했으며 식민 통치를 끝낸 영국은 그 요구를 들어주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에서 벌어진 모슬렘과 힌두족의 민족 이동은 대량 학살을 동반한 극적인 고통의 역사였다. 이후 두 개의 근본적인 갈등이 인도-파키스탄 관계를 특징지었다. 영토 분쟁과 국가 이데올로기의 모순이 그것이다. 영토분쟁은 캐쉬미르 산악 지대를 둘러싸고 일어났다. 영국의 식민 통치가 끝나갈 무렵 캐쉬미르의 소속 문제는 매우 불분명했다. 주민의 다수는 이슬람을 신봉했지만 힌두 지도자는 캐쉬미르가 인도에 귀속되기를 원했다. 이에 전쟁이 일어나 북부는 파키스탄에 귀속되었고 훨씬 큰 남부는 인도로 남았다. 유엔은 캐쉬미르 전역에 국민 투표를 실시하도록 요구하지만 인도가 계속 거부하고 있다.

두 번째 갈등은 상이한 국가 이데올로기이다. 파키스탄은 모슬렘 인도인의 국가임을 천명하고 있다. 인도는-1억 2천만 명의 이슬람 신도를 포함한-모든 인도인을 위한 세속 국가임을 주장한다. 인도의 관점에서는 파키스탄이란 애당초 존재할 수가 없다. 파키스탄의 관점에서는 인도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위험한 적이다.

이 대립은 두 나라의 다언어, 다민족 상황으로 더욱 심화된다. 중앙정부는 다언어, 다민족 상황의 다양성을 국가 이데올로기에 호소하여 결속시키려 한다. 이때 외부의 적은 내적 갈등을 외부로 투사할 수 있는 훌륭한 통치수단으로 계속 이용된다. 특히 정부의 실책으로부터 국민들의 눈을 돌리기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118-119)

하랄트 뮐러는 현대의 가장 위험한 갈등, 가장 피비린내 나는 전쟁 가운데 중앙아프리카, 아프가니스탄, 쿠르드, 알제리, 한국의 경우는 동일 문명권 내에서 일어났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문명의 단층선에서 일어난 남아시아, 스리랑카, 보스니아, 중동의 갈등을 포함해서, 모든 갈등은 인종적 요인, 정권 다툼, 국가 안보의 딜레마, 정치 경제적 차별 대우 등 복잡한 전쟁의 원인이 있다고 한다.

이 모든 갈등은 집단 간 대립의 고전적 대상, 즉 영토에 대한 통제권을 둘러싼 분쟁이라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폭력 분쟁은 단순한 모티브의 산물이 아니며, 그 원인도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폭력 분쟁의 모티브는 다를 바가 없다고 한다. 따라서 분쟁 원인의 복잡성을 올바로 이해하면 해결이 왜 그리도 어려운지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만이 마침내 폭력을 종결지어줄, 가능한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강조하였다.(120-121쪽)

"인간 집단 간에 벌어지는 유혈 투쟁은 아주 오래된 역사적 현상이다. 부족과 민족, 도시, 국가, 동맹 간에 벌어지는 유혈 전투의 근간에는 개별적으로 혹은 결합하여 작용하는 다수의 원인이 있다. 영토 분쟁, 부족한 자원을 둘러싼 경쟁, 탐나는 시장을 둘러싼 경쟁, 약탈을 목적으로 한 공격, 종교적인 열정, 이데올로기의 차이, 인종/국가 간의 경쟁, 안보 딜레마(군비 경쟁이 예방 공격으로 이어질 가능성), 비민주적 국가 지도부의 통치욕 등이다. 이 전쟁 원인들은 오늘날에도 모두 유효하다. 전쟁은 복합적인 사회 정치적 사건으로 그 책임을 하나의 원인으로 돌릴 수는 없다. 두드러진 것은 지리적 소견으로 전쟁은 육지 상의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나라들 사이에서 터질 확률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97-98쪽)

하랄트 뮐러는, 헌팅턴의 새로운 세계 해석 시도에 대한, 반론을 이렇게 제기한다. 헌팅턴은 문명이 현실 세계에서 패권국의 모습으로 나타나며 또 그의 지휘 하에 서로 충돌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헌팅턴의 시도에는 명백한 오류와 잘못된 인식이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첫째, 헌팅턴은 '이슬람의 피 묻은 경계선'이란 명제를 내세우며 이를 통계적으로 입증하려고 시도한다.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집단 간의 분쟁 31개 가운데 21개, 즉 2/3가 이슬람과 비이슬람 간의 분쟁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명 간의 경계선을 살펴보면, 이슬람 문명은 다른 어떤 종교와 비교해도 육로 경계가 현저히 길다. 즉 이슬람 국가와 민족은 샌드위치에 든 치즈처럼 다른 문명 사이에 끼여 있는 반면, 다른 문명 집단들의 외부 경계는 많은 부분이 바다에 면해 있다. 따라서 헌팅턴의 통계는 오래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 즉 육로 경계를 사이에 둔 국가들은 갈등에 빠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고 있을 뿐 달리 새로운 점이 없다.

둘째, 헌팅턴은 이슬람-유교 동맹의 잔혹 시나리오를 펼치기 위해 중국과 북한의 대 이슬람 국가(특히 파키스탄, 이란, 이라크, 시리아) 무기 판매를 언급한다. 반면, 그는 서구, 특히 미국의 대 이슬람 국가 무기 판매량이 중국과 북한의 판매량의 10배가 넘는다는 사실은 침묵하고 있다. 이는 서구-이슬람 동맹의 신호탄인가?

셋째, 헌팅턴은 보스니아 분쟁에서 서구 국가들이 가톨릭인 크로아티아와 동맹을 맺었고, 정교 국가인 러시아와 그리스는 세르비아를 도왔으며, 이슬람 지역은 보스니아의 모슬렘에 명백한 지지를 보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보스니아에서 처음 갈등이 시작되었을 때, 개신교가 다수인 독일과 개신교가 우세인 덴마크는 크로아티아를 지지했고,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성공회인 영국은 세르비아 편이었다. 하지만 분쟁이 진행되면서 상황이 변했다. 여론의 압력으로 서구 국가들이 보스니아의 모슬렘을 지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스니아 전쟁은 '문명의 충돌'을 입증해 주는 증거일 수 없다.

헌팅턴의 '거대 이론'은 주의가 요망된다. 파란색 선글라스를 쓴 사람은 세상을 파랗게 볼 수밖에 없고 그렇게 한동안 지내다 보면 세상이 정말 파랗다고 믿게 된다. 날씨가 화창한 날 하늘을 올려다볼 때 파란색 선글라스는 현실을 왜곡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선을 아래로 돌리게 되면, 사물의 색채에 대해 잘못된 발언을 하게 된다. 헌팅턴의 이론도 이와 다르지 않다. 그의 이론-안경은 현실을 왜곡시킨다.(19-23쪽)

하랄트 뮐러는 21세기 세계 정치의 6대 기조 노선을 제시하였다. 여러 문명 간의 미래 관계를 평가해 본 결과 도달한 결론은 21세기 초에 기대되는 국제 정치의 '운동 법칙'에 대한 통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이것을 요약한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러 문명권의 국가들은 근대화의 위기에 매우 상이한 방식으로 대처할 것이다. 둘째, 근본주의 정책은 해당 문명권 내에 반대 세력을 불러온다. 셋째, 근본주의가 몇몇 나라에서 든든한 발판을 구축하고 그곳의 정부들이 근본주의 확산을 강력히 추진할수록, 그리고 해당 문명권 내 패권 추구가 분명하게 드러날수록 국가 세계의 동력은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넷째, 외부 세력과의 동맹이 역내 인접국에 굴복하는 것보다 선호된다. 다섯째, 경제 및 사회 세력의 세력이 확산될수록 비서구 문명권 국가와 서구 사이의 대립은 약화된다. 여섯째, 이런 구도에서 문명 간의 연결망은 빠르게 촘촘히 얽혀 나갈 것이다.(271-274쪽)

책의 말미에서 그는 '서구의 개혁'과 '문명의 충돌이 아닌 대화'를 강조하였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거친 시대에는 서구 문명의 역사적 성취마저 위험하다. 무덤지기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서구 사회에도 도처에 존재한다. 열린 사회에 대한 공격은 세 방향으로부터 방어되어야 한다. 첫째 방향은 서구 제도의 경직화이다. 기득권 유지에 급급한 정당들과 노사 관계가 그 좋은 예이다. 둘째 방향은 극우파 소수 집단이다. 이들은 문명 혹은 인종의 순수성 확보라는 목표를 가지고 다시 한번 파시즘적 몰락을 향해 달려가려 한다. 셋째 방향은 문명 다원주의가 표방하는 임의적인 '착한 인간'의 개념이다. 이들이 표방하는 관용은 무한하여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부정까지도 문명적 외투를 두르기만 했으면 무작정 수용하고자 한다."(307-308쪽)

"21세기는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 문명의 차이가 분열을 가져올까? 협력을 가져올까? 이는 서구의 대응에 달려 있다. 초강대국 미국도 커다란 책임을 지고 있다. 미국이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기를 바란다. 현재 보이는 징후들 모두가 이 희망에 부합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구의 장점을 인식하고 또 이제까지의 성취를 지키며-개발도상국들과의 대화 속에서-계속 적절히 발전해가야 한다. 이 필요성의 통찰이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다음 세기가 20세기처럼 피비린내를 풍길 것인가, 아니면 폭력 분쟁은 주변적인 현상이 되고 세계가 협력의 질서를 이룩할 것인가, 이는 '중국의 도전'이나 '일본 주식회사, ' 이슬람 근본주의에 달린 문제라기보다는 서구 사회에 달린 문제이다."(309-310쪽)

하랄트 뮐러가 1998년에 이 책을 쓰고, 번역본이 국내에 2000년에 출간되었다. 그가 조망했던 21세기에 들어선 지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서구 사회는 무엇이 얼마나 변했는가?

하랄트 뮐러, 이영희 역, [문명의 공존] (서울: 푸른 숲, 2000)
Harald Müller, [Das Zusammenleben der Kulturen] (Frankfurt am Main: Fischer Taschenbuch Verlag GmbH,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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