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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r 24. 2020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

나는 이미지로 창조할 수 있는 사람인가?

COVID-19가 외유(外遊)를 줄이는 대신 내실(內實)을 더하게 해 준다. 근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육체적 활동의 기회는 줄었지만, 실내 활동으로 인해 사유(思惟)의 시간은 늘었다.

나는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인가?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니, 2년 먼저 초등학교에 들어간 형이 배우는 구구단을 어깨너머로 익혀서 줄줄 외웠다는 얘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나는 영재인가? 그런데 실제로는 2학년 때 선생님께 회초리로 맞아 가면서 억지로 구구단을 다시 외웠던 기억도 난다. 나는 바보인가?

나는 암기 능력이 남들보다 떨어지진 않지만, 단순히 외우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수학 II의 복잡한 공식 외우는 것, 역사적 사건의  발생 연도 외우는 것...  차 번호와 전화번호 외우는 것까지도. 단순 암기는 무조건 싫다.
아니길 바라지만, 외우기 싫어하는 구구단을 8살짜리 꼬마에게 억지로 암기시킨 담임선생님 때문에 생긴 트라우마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2013년 김포 통진에서 가족과 떨어져 독수공방 하며 읽었던 [글자로만 생각하는 사람, 이미지로 창조하는 사람]이란 책이 있었다. 이 책은 매를 맞으며 구구단을 외우던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을 보낸 내게 큰 위안을 주었다.


@www.123rf.com


Thomas G. West가 쓴 [In the Mind's Eye](2009)를 번역한 이 책엔, 학창 시절에 읽기, 말하기, 철자법, 계산, 기억력 등의 영역에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장애를 겪었던, 유명인들에 대한 일화가 실려 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윈스턴 처칠, 토머스 에디슨, 니콜라 테슬라, 윌리엄 예이츠 등이다.

내게 위로를 주었던 부분들을 적어보려 한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어떤 영역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사람이 뜻밖에도 다른 영역에서는 한참 뒤처진 능력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짓궂은 운명의 장난이 아니라 뇌의 구조 때문에 생겨나는 근본적 특징이다. 뇌가 어느 한 가지 기능에 최적화되다 보면 그 과정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요소들 중 다른 기능과는 잘 맞지 않는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 한 분야의 특출한 재능이 그와 상응하는 다른 분야에서 능력 장애를 가져오기도 한다는 뜻이다(26쪽)." -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그럴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물리학이나 수학부터 정치나 시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독창적이었던 사상가들은 시각적 사고방식에 크게 의존했다. 이들 중 일부가 학생 시절에는 읽기, 말하기, 철자법, 계산, 기억력 등의 영역에서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장애를 겪었다. 이런 역설과 모순은 보편적으로 반복해서 등장하는 요소다. 예를 들면 탁월한 언어 구사 능력으로 유명한 사람이라도 특정 언어 능력에서는 큰 장애가 나타나기도 한다. 또 고차원적인 수학에 재능을 보여 유명해진 사람이 간단한 산수를 풀지 못해 쩔쩔매기도 한다(26쪽)." - 나도 그런 것 같다.

"우리는 뛰어난 것은 결국 저절로 두각을 나타내게 마련이라고 교육받았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 언제나 그런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자연의 본성을 가장 잘 꿰뚫어 보는 사람이 전통적인 교육 제도에서 요구하는 일이나 성공적인 이력을 쌓는 일에 그다지 뛰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강의를 선택해 들을 때, 중간중간에 무직 상태였을 때, 그리고 이름 없는 하급 관료(3등급 특허청 사무원)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초기 연구의 상당 부분을 완성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사실 그가 내놓은 초기 연구가 혁명적인 것임을 알아차린 극소수 가운데 한 사람이 아인슈타인을 찾아냈을 때, 그는 아인슈타인이 대학 교수나 큰 관청의 고위 관료가 아니라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특허청에서 찾아냈을 때, 아인슈타인은 그가 눈길 한번 주지 않았던 볼품없는 사무원에 불과했다(399쪽)." - 내 주변의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사람이 훗날의 아인슈타인일 수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난독증이 있던) 마이클 패러데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학교를 그만둔 뒤 어머니에게 교육을 받았고, 나중엔 독학했다. 아인슈타인은 전통적 학교제도 속에서 마지못해 참거나 적극적으로 저항하길 반복하다가 퇴학당했지만, 다행스럽게 진보적인 학교에 다니면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학문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어느 정도 되살려 두 번째 시도 만에 대학 입학시험을 통과할 수 있었다. 조지 패튼은 전통적 사회 체계 속으로 진입할 준비가 될 때까지 집에서 교육을 받았다. 윈스턴 처칠은 지지부진하게나마 상류층 교육을 받았지만, 그의 진짜 교육은 성인이 된 뒤 영국군으로 인도에 배치되어 자신만의 독학 프로그램을 시작한 다음에 시작되었다(412쪽)." - 홈스쿨링이나 독학도 좋은 교육 방법이다. 아직도 늦지 않았다.

"학습장애를 가진 대부분의 경우 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장애를 가급적 빨리 확인하고 교정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특별한 분야에서 성숙이 지연되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면 아이에게 압박을 가하지 말고, 그저 당분간 기다려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수 있다. 이런 경우 서둘러 교정 치료를 강제적으로 진행시키면 시간 낭비가 될 뿐 아니라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특히 그런 압력을 가하는 사람이 특수한 훈련을 받은 교사가 아니라 고압적인 학교 교사인 경우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413쪽)." - 강압은 정말 싫다.

"극단적으로 들쭉날쭉한 능력을 가지고 성공하려면 깊은 내면의 자신감을 가지고, 자기한테 느려 터지고 게으르고 멍청하다고 말하는 다른 사람들의 편견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실패에 부딪히고 굴욕을 경험하면서 이런 추진력과 결단력, 사명감을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깝다. 상대적으로 소수의 사람만이 이런 어린 시절을 견뎌내고 자신감을 쌓아 모든 불평등을 이겨내고 전진해서 특별한 지식이나 깊은 이해, 열정적 관심이 필요한 분야에서 성공을 일구어 낸다(446쪽)."

"우리는 자신이 가장 뛰어나고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가장 인정받고 평준화된 사람들)이 언제 잘못된 길로 접어들지 알지 못한다. 때로는 가장 뛰어나고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그 똑똑함과 신속함, 방대한 지식, 오랜 성공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잘못되고 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문제의 해결책을 조금은 이상하고, 조금은 이방인 같고, 조금은 예측이 어렵고, 전통적인 학업과 직업에서의 성공 패턴과는 잘 맞지 않는 사람한테로 눈을 돌리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시각적 사상가들과 '난독증 공상가'들이 다른 사람이 못 보는 것을 볼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남들은 자존심과 거만함 때문에 꺼리는 행동을 그들은 기꺼이 행하기도 한다.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하나의 기관으로서 우리가 위기 상황을 극복해나갈 길을 찾아내려면, 지금 반에서 바닥을 헤매는 사람이 필요할 수도 있음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492~493쪽)." - 학교에서 꼴찌가 세상에선 일등일 수 있다. 조직에서 인정받고 평준화된 사람들은 세상을 바꾸지 못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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