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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n 30. 2020

비와 우산, 그리고 남자

옛날엔 비올 때 우산 쓰면 나약한 남자였다

장맛비가 주룩주룩 시원하게 내린다.

일찍 찾아왔던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시원하다.

코로나도 이 빗줄기에 쓸려 내려가면 좋으련만.


비가 오면 센티멘털리스트가 된다.

십 대와 이십 대에도, 삼십 대와 사십 대에도, 오십 대인 중반인 지금도 여전하다.

남자답지 않은 감성이 내면에 감추어져 있는 걸까?


사십 대까진 남자가 울면 안 되는 줄 알았고

마초들이 모인 해병대에서 삼십여 년을 버틴 걸 보면

옛날 말로 남자답게 살았던 것 같은데.


요즘엔 비가 조금만 내려도 우산을 쓴다.

오늘도 집에서 가장 커다란 우산을 들고 나섰다.

혈기왕성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비와 우산, 그리고 남자를 그려본다.


우산이 처음 나온 17세기엔 비올 때 남자가 우산을 쓰면 나약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우산의 영어 표기 Umbrella에서 Umbra는 라틴어로 그늘, 그림자라는 뜻이다.

그 의미가 어둡고 나약한 이미지라서 남자들이 비가 올 때 우산을 쓰고 다니는 것이 나약하다고 했다나.


그런 이미지가 남성 중심의 군대 문화에도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군인들이 전투나 훈련할 때 우산 대신 판초 우의를 입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일상 업무 시에도 군인들은 우산을 쓸 수 없었다.

최근에 평상시엔 우산을 쓸 수도 있도록 규정이 바뀌었다고 한다.


불과 십여 년 전만해도 훈련이나 전투할 때와 마찬가지로 군인은 평상시에 이런 판초 우의를 입어야만 했다.



청소년기엔 비올 때 이랬던 적도 있었다.

비 오는 날, 여자 친구를 만나러 갈 때 일부러 우산을 안 들고나가서.

이때도 남자가 우산 들고 다니는 건 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요즘 말로 멋짐 폭발을 꿈꿨던 것 같다.





연애 시절엔 연인의 우산을 대신 들고 이렇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 시절에도 우산은 안 들고 다닌 것 같다.

남자답기 위해서.




어떤 땐 영화배우처럼 이런 적도 있었던 것 같다.

비를 맞거나 말거나 멋져 보이면 그만이다.

폼생폼사~




오바마처럼 이런 적도 있던 것 같다.

남자는 비를 맞아도 되고 여자는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오랫동안 몸에 밴 사회생활의 매너 때문이었을까?





오십 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는 지금은 우산을 이렇게 쓴다

나는 내 우산, 아내는 아내 우산.

나는 내 우산, 그대는 그대 우산.

나도 아내도 그대도 이젠 비 맞으면 아프니까.





가끔은 이런 우산을 하나 살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나지만 둘 같은 우산.

남자답게 우산은 내가 들지만 둘 다 비는 안 맞는 그런 우산.






센티멘털리즘에 빠져 글을 쓰다 보니까 아직도 남자답고 싶은 미련이 남아 있나 보다.

여성 호르몬이 많아져서 눈물도 많이 흘리고 잘 삐치기도 하고 말도 많아졌지만

가부장적인 문화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내재화된 무언가가 내 안에 꿈틀거리고 있나 보다.





아래의 글은 1600년대 우산을 처음 쓰던 시절에 관한 이야기다. 웹 서핑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URL이다.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ipoworld2&logNo=221718112217&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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