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에서 추진하는 정책적 용어는 최대한 신중하게 선택해서 사용해야 한다.
2020년 COVID-19 팬데믹이 만들어 낸 사상 초유의 사건이 많다.
1784년 한국 천주교 최초의 미사 이후-박해시대를 거쳤지만-자발적 미사 중단은 236년 만에 처음이다.
한국 개신교의 경우에도 공적 예배를 중단하고 영상 예배로 전환한 것은 사상 초유의 사건이다.
감염병 위기경보 최고 단계인 심각단계 격상에 따른 초중고교의 전국 단위 개학 연기도 사상 최초의 일이다.
그밖에도 국내외적으로 COVID-19가 만들어 낸 역사적 진기록이 많이 있다.
내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난생처음 들어 본 "사회적 거리두기"와 "공적 마스크"라는 용어다.
그 의미를 모른다거나 정책의 잘잘못을 따져 그 필요성을 부인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 용어에 대한 뉘앙스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를 처음 듣는 순간, 사회주의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전임 법무부 장관 조국이 인사청문회에서 "사회주의 사상과 정책이 대한민국 헌법의 틀 아래에서 필요하다"면서 자신은 자유주의자인 동시에 사회주의자라고 고백했기 때문이었을까?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말이 다른 이들에겐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모르지만, 내겐 정부가 사회주의 정책 추진을 위한 포석을 던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
무엇이든지 궁금할 땐 사전을 찾아보면 된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social distancing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여러 종류의 사전에서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를 찾아봤다.
- 생명과학 대사전에는 사회적 거리란 무리에서 떨어진 개체가 다시 무리로 되돌아오는 행동상의 한계 거리로 정의하고 있다.
- 교육심리학 용어사전에서 사회적 거리란 집단과 집단 사이, 개인과 개인 사이에서 어느 정도 호감을 가지고 있고 반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정도를 말한다.
- 사회복지학 사전에서 사회적 거리란 개인 혹은 집단 간의 친근성 정도를 말한다. 여기엔 개인 또는 집단 간의 수평적 거리, 사회적 계층과 지위 차이로 인한 수직적 거리도 존재한다.
- 위키피디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란 감염병 확산 방지를 위해 물리적 접촉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나와있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 distancing)는 동일한 의미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사회적으로는 연결되어 있지만 물리적으로만 거리를 두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로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표현 대신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사전을 찾아보니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용어 이해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WHO의 권고처럼 처음부터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면 '사회적 거리두기'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듯한 용어가 아닐까 하는 오해를 사진 않았을 것이다.
"공적 마스크"란 용어가 내게 준 뉘앙스는 사회적 거리두기 보다 더 사회주의적이었다.
제도의 시행 취지 자체가 국가에서 직접 개입하여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서 약국 앞에 서있는 긴 줄을 보면서, 또 그 100여 명의 긴 줄 속에 선 나 자신을 보면서 사회주의 국가의 배급 시스템이 연상된 이유도 있다. 그럼 "공적 마스크"를 뭐라고 했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 용어가 내게 사회주의적 뉘앙스를 풍겼다고 말하려는 것이다.
"코로나 마스크"는 어땠을까?
대언론 브리핑이나 대국민 담화를 들어보면 정부와 여당은 국민 대다수가 자기들을 지지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야당은 야당대로 민심은 자기들 쪽으로 기울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총선 결과가 나오기 전엔 그 누구도 민심이 어느 쪽을 더 지지하는가를 알 길이 없다.
문재인 정부는 보수세력으로부터 사회주의 국가를 지향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비난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면, 애매모호한 스탠스를 취하지 말고 반대 세력에게 자신의 정체(identity)를 밝혀야 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와 "공적 마스크"라는 용어에서 사회주의적 뉘앙스를 느낀 내가 유별난 사람이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