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목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인간이 나무를 부자연스럽게 비튼 건 아닐까?
어느 빌딩 앞에서 멋진 정원수 몇 그루를 보았다. 미치 화분 위의 분재를 크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부자연스러움 속에 조화로운 인공적 아름다움이다. 커다란 나무를 어떻게 이토록 멋지게 만들어 놓을 수 있을까?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집에 돌아와서 나무 사진을 다시 보았다. 자세히 보려고 스마트폰 속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늘여서 확대했다. 나무 주변에 크고 작은 버팀목 같은 자재가 설치되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나무의 모습이 어딘가 자연스럽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느낌대로 부자연스러움 속에 인공 미를 가미한 자연스러움이라는 표현이 가장 적절한 것 같다. 이런 나무가 있어야 할 장소에서 원래 모습대로 자랐다면 이렇게 멋들어짐은 없었겠지만 나무가 기울거나 비틀어지진 않았을 텐데!
인간과 나무의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았다. 나무가 나를 내가 있던 곳이 아닌 곳에 고정시켜 놓고, 짧은 팔과 다리는 쭉 잡아당겨 늘여 놓고, 불룩 나온 배는 허리띠로 꽉 졸라 매 놓고, 한쪽 다리를 들고 비스듬히 세워서 그 자세를 계속 유지하도록 버팀목으로 나를 묶어 놓는다면 어떨까? 짧은 팔과 다리가 늘어나서 신체 비율이 좋아지고, 허리도 잘록해져서 더 멋져 보이고, 유니크한 자세로 시선을 집중시킬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은 무척 괴로울 것이다.
나무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도심지의 빌딩 앞에 있는 아주 작은 공간에 멋들어진 모습으로 그 자태를 드러내고 있지만, 이런 모습이 될 때까지 이리저리 비틀리고 묶여서 고정되어 무척 힘들었을 텐데!
이 곳을 지나치던 그 순간, 눈길을 끄는 멋진 나무들을 보고 사진을 촬영했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훼손되어 가는 자연에 대한 생각은 하지 못했다. COVID-19 팬데믹 발생 원인도 인간의 자연 훼손과 생태계 파괴라는 연구 결과도 있었는데, 순간적인 안목의 정욕을 쫓았던 것이 부끄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또 다른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쫓아가며 살고 있다. 아! 덧없는 인생이여!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