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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Sep 14. 2020

라스웰의 정치적 인간과 거짓말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에 대한 정치학적 단상(斷想)

여야 정치인들은 늘 상반되는 견해로 갑론을박한다. 대립하는 양측의 의견이 상충될 경우 한쪽이 진실이라면 상반되는 의견을 제시한 다른 한쪽은 거짓이기 마련이다. 여야 구분 없이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정치인들의 신뢰도는 하위권을 맴돌곤 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정치학자 라스웰(Harold D. Lasswell)이 주장하는 '정치적 인간(homo politicus)'의 특징에서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한다.


라스웰은 '정치적 인간'의 특징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하였다. 권력 지상주의적 가치관, 강력하고 무한한 권력욕, 철저한 이기심, 권력 중심의 역사관, 자신의 권력욕을 충족시키는 역량이다. 즉, 정치적 인간은 권력 획득에 주력하고 다른 가치들은 수단으로 추구하며, 만족할 줄 모르는 권력욕을 갖고 있다. 그들은 공동체나 타인이 아닌 자신만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며, 권력에 영향을 주는 과거의 역사와 미래의 가능성에 주목한다. 뿐만 아니라 권력욕 충족에 필요한 기량과 능력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인간'의 특징이 정치를 업으로 하는 정치인들에게서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정치인이 추구하는 기본적 가치는 권력이다. 정치인에게 가장 강력한 욕구는 권력 추구욕이며, 정치인은 완전하게 자기중심적인 인성을 지니고 있다. 정치인들이 추구하는 권력 지상주의는 거짓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가치체계이다. 권력 중심의 가치관은 도덕적 가치가 우선해야 함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가치와 다른 가치들의 독자적 중요성을 인정하는 다원주의 입장을 거부한다. 이러한 정치인의 철저한 이기심은 도덕심 자체를 함양하기 어려운 한계를 노정하고 있다. 또 정치인은 자신의 권력욕 충족에 유리한 방향으로 역사적 사실을 선별해서 보고 해석하여 미래를 예측한다. 게다가 정치인이 가진 자신의 권력욕 충족에 필요한 기량에는 거짓말을 효과적으로 잘할 수 있는 능력까지 포함되어 있다.


왜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하는가? 정치인의 '사적 이해관계'와 '공적 대의' 사이의 알력 때문이다. 사적 개인으로서의 정치인이 갖는 권력욕과 명예욕과 재물욕은 공적 존재로서 대의를 추구해야 하는 정치인의 의무와 충돌한다. '사적 개인'과 '정치적 공인'이 정치인이라는 한 인간의 존재 안에서 구조적으로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고결한 대의를 표명하지만 그들이 성직자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정치인은 일반인보다 더 많은 욕망을 가진 존재이며, 더 잦은 유혹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는 존재다. 정치인들에게 숭고한 고결성을 기대하다가 실망해서 정치를 외면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그들이 하는 거짓말의 개연성을 염두에 두고 정치에 관심을 갖고 감시하고 참여하는 것이 적극적 민주시민의 자세가 아닐까? 순수한 이상주의적 견지에서 정치인을 바라보다가 체념과 외면으로 향하는 정서적 급진성은 정치인들의 거짓말을 더욱 부채질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재정, "정치인의 거짓말: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한국정치연구] 제23집 제3호(2014), pp.1~27에서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정리한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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