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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Sep 24. 2020

교만함과 연약함의 교차

경력직 연구원 블라인드 채용 도전 중에 드는 생각

지난달 중순경, 어느 연구소의 경력직 연구원 채용 공고를 보고 입사지원서를 제출하였다. NCS 방식의 채용 전형이라는 생소한 방식을 접하면서, 새로운 도전의식이 생겼다. 입사지원서를 작성하여 전직 컨설팅 회사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검토를 요청했다. 이튿날, 그분으로부터 더 이상 손 볼 곳이 없을 정도로 잘 썼다는 말을 들었다. 으쓱대는 마음에 자신감을 갖고 서류를 제출했다.


1차 서류전형 합격 발표 주간이 되었는데 소식이 없었다. 채용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제출했던 서류를 열어보았다. PC 모니터로 보이는 대로 들여 쓰기를 하기 위해 enter키로 단락을 끊었던 부분이 오히려 잘못되어 있었다. enter키를 치지 않았어야 했던 것이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형식이 잘못돼서 혹시 감점요소가 된 건 아닐까? 자기 PR을 너무 과도하게 했나? 제출하던 시점의 자신감이 사라졌다. 1차에서 탈락하면 조금 창피한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1차 서류전형에 합격했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20여 명 정도 합격할 것으로 예상한 1차 전형 합격자는 4명이었다. 20:1에서 시작할 줄 알았는데 4:1로 경쟁률이 줄었다. 하지만 기쁨은 잠시, 2차 NCS 평가가 가장 큰 난관이었다. 입사지원 준비를 하면서 서점에서 NCS 책자를 사서 한 달 남짓 공부를 했지만 모의고사 문제를 풀어보면 늘 시간에 쫓겨서 수리영역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1차 합격 발표와 함께 2차 시험 1주일을 앞두고 NCS 10개 영역 중 5개로 범위가 줄었다. 문제풀이 시간이 가장 많이 소요되는 수리, 문제 해결, 의사소통 영역은 그대로 포함되어 있었다. 더 이상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할 시간이 없었다. 나름대로 시험 전략을 구상했다. 긴 지문을 읽어야 하는 의사소통능력 문제를 먼저 풀고, 비교적 쉬운 자원관리-조직이해 순으로 해결한 다음, 문제 해결-수리영역 순으로  시험 종료 5분 전까지 풀다가 남은 문제는 찍는다는 전략이다.


2차 채용시험을 하루 앞두고 소화가 잘 안됐다. 시험은 시험인지라 신경이 제법 쓰였던 것 같다. 채용시험 이틀 전에 치른 모의고사 성적이 몇 차례 자체 평가 성적 중 최하점을 맞았기 때문인 듯했다. 더구나 과락 점수였다. 자신감을 회복하기 위해, 문제 해결과 수리영역 위주였던 모의고사였기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시험 당일, 문제지를 받아보니 예상보다 조금 쉬운 듯했다. 하지만 50문항 중 15문항을 풀었는데, 시험 종료 30분 전이라는 감독요원의 음성이 들렸다. 계획했던 대로 문제 해결, 수리 영역을 건너뛰고 나머지 문제를 풀고 앞으로 다시 돌아와서 해결 가능한 문제를 찾아가면서 답안을 표시했다. 시험 종료 10분 전, 더 이상 문제풀이를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비교적 덜 어려운 두 문제를 찾아서 풀고 나머지는 모두 2번과 3번으로 절반씩 찍었다. 종료 5분 전, 답안카드에 누락된 부분을 찾아본 후에 문제지와 답지를 덮었다. 시험이 끝나고 함께 시험을 치른 후배에게 전화가 왔다. “선배님! 시험문제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그래? 나도 많이 찍었어!”라고 대답하면서 마음속으론 이 친구보단 내가 잘 본 것 같은데라는 생각을 했다. 2차 채용전형 발표를 기다리면서 마음 한편으론 그래도 열심히 준비했는데 설마 떨어지겠어? 경쟁자들보다 내가 더 많이 준비했을 거야! 다른 한편으론 다른 이들은 더 오랫동안 준비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4명 중 최소한 한두 명은 떨어지겠지? 하지만 그게 난 아닐 거야! 이런 생각들이 들었다. 발표일인 금요일 오후까지 소식이 없었다. 조급한 마음에 채용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늦게나 다음 주 월요일에 발표한다고 했다. 퇴근을 했더니 아내가 내 표정을 살폈다. 일부러 시크한 척하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나중에 알려 준다는데!” 저녁 7시쯤 스마트폰의 진동이 울렸다. 이메일이 왔다. 열어보니 2차 채용 전형에 합격했다는 소식과 3차 전형 일정과 준비에 관한 내용이었다. 경쟁자 4명이 모두 합격했다. 발표면접은 최종 학위 논문을 10분 내로 요약발표 후 질의/응답으로 진행하고, 종합면접은 별도로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3차 발표면접 준비를 위해 박사학위 논문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의 친구들에게 자료를 보여주고 몇 차례의 수정 보완을 거쳐서 사전 제출서류와 함께 채용 홈페이지에 업로드를 완료하였다. 10분 프레젠테이션 시간을 맞추기 위해 대여섯 번 연습을 했다. 종합면접에 대비해서 자기소개서도 수차례 다시 읽어 봤다. 경쟁률이 4:1이라는 말을 들은 주변의 지인들이 Kenny박사 말고 누가 있겠어라고들 한다. 나 자신도 나만한 적임자가 있겠나 하는 자만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다른 이들도 1, 2차를 통과한 걸 보면 만만치 않은 고수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1,2차 시험을 거쳐 다음 주 월요일의 3차 최종 면접을 앞둔 이 시점에게서 나를 돌아보고 내면을 들여다본다. 교만함과 연약함이 수시로 교차하는 인간의 본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오늘 이른 아침, 영상 새벽예배에서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가장 잘 섬겼던 다윗왕이 부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후, 그것을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가장 위험한 전쟁터로 보내서 죽게 하였다고. 이것이 우리 인간의 연약함이라고.


우연한 일로 뜻하지 않았던 채용공고를 보게 되어 지원을 했고 3차 최종 면접 직전까지 왔다. 어찌 보면 준비된 자에게 돌아온 기회일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주의 인도하심과 시험의 과정이란 생각이 든다. 군에서 퇴역하면서 모두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이 남아 있고, 자신에 대한 교만함이 남아 있었다. 더불어 여전히 연약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렇기에 오늘 이 시간에 기도할 수 있다. “주님! 저의 교만한 마음을 용서해 주세요. 아직도 버리지 못한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도 내려놓을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내가 계획하였더라도 그것을 이루는 것은 주님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게 도와주세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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