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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Sep 26. 2020

지금 이 소녀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2000년 12월 25일경, 소녀는 난생처음으로 선물을 받았다고 말했다

20년 전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분쟁 지역인 캐시미르에 유엔군 옵서버로 파견되어 파키스탄 측의 어느 유엔 초소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절대다수가 무슬림인 지역에 크리스천 마을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마을의 인근 지역을 지나던 우연한 기회에 현지인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다. 몇 차례에 걸친 상호 교류를 거쳐 크리스천 빌리지에 있는 현지인 교회에 방문하게 되었다. 마침 성탄절이 가까워서 마을 아이들에게 성탄 선물로 줄 노트와 필기도구를 조금 준비했다. 그곳의 교회에 가보니 마치 심령대부흥회를 하던 70~80년대 한국 교회의 모습과 유사했다. 갈급한 심령들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의 모습을 보았다. 예배를 마친 후, 현지인 아이들에게 노트와 연필을 나눠주었다. 아주 작은 선물이었는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무척 기뻐했다.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소녀가 말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로부터 선물을 받았다며 정말 감사하고 기쁘다고 했다. 자기도 어른이 되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다. 지금쯤 이 소녀는 삼십 대가 되었을 텐데!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멋진 어른이 되어 있겠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너무 작은 선물을 준비한 손이 부끄러워서 목사님께 여쭈어 보았다. 혹시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 뭐라도 있을까요? 현지 목사님은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파키스탄이 대외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표명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크리스천 아이들이 공부할 수 있는 학교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크리스천 마을에 작은 학교가 필요한데, 겨우 생계를 잇는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서 학교를 지을 능력이 안돼서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우연하게 해외 선교 헌금을 희망하는 재미교포와 연결이 되어서 그분의 도움으로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재원을 목사님께 전해 드렸다. 그리고 곧바로 그곳을 떠나 다른 지역의 유엔 초소로  근무처가 바뀌었다. 현지인 목사님으로부터 크리스천 학교 건물 착공을 했다는 소식과 감사 인사를 우편으로 받았고, 재미교포 후원자에게는 이메일로 감사를 전했다. 가끔 그곳 소식이 궁금하다. 아직도 크리스천 빌리지가 잘 유지되고 있을까? 학교 건물을 완공해서 크리스천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게 되었을까? 지금쯤 그곳도 지역 개발이 되어서 훨씬 더 좋은 환경에서 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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