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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n 01. 2022

잘 모를 땐 아내에게 물어보자

건강검진 예약 시간에 맞춰 병원에 갔다.

예약시간보다 30분 늦게 검진을 시작했다.

체중과 신장, 시력과 청력을 측정했다.

모두 예상치를 벗어나지 않는 적당한 수준이었다.

아침에 혈압약을 먹지 않지 않았는데 혈압도 정상이란다.

기분이 좋았다.

채혈을 하고 소변과 미리 준비한 대변을 채변 용기에 담아 제출했다.

치과에서는 치아관리를 잘하고 있다는 칭찬도 받았다.

기분이 더 좋아졌다.

심전도 검사도 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건 위내시경 검사다.

늘 그랬듯이 비수면으로 진행했다.

기구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의 뻑뻑함,

위까지 도달하기까지의 불편함까지 잘 견뎌냈다.

몇 차례 캑캑대며 위 내시경 검사를 마치고 담당의사를 만났다.

의사가 내시경 검사 결과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식도에 약간의 염증이 있는데 이건 걱정할 정도는 아니군요.

위벽에도 염증이 있는데 관리하지 않으면 위궤양이  수도 있으니 소화기 내과 진료를 받으시면 좋을  같군요.

오후 1시에 청와대 관람 신청을 해놓은지라 의사에게 물었다.

오전 중에 진료를 마칠 수 있겠지요?

의사가 대답했다. 예약을 하지 않아서 대기시간이 있겠지만 오전엔 끝날 수 있을 거예요.


아내에게 전화했다.

여보! 건강검진은 마쳤는데, 위염이 있어서 소화기 내과 진료 대기 중이야.

청와대 관람시간을 맞추려면 당신이 나를 태우려 와야 할 것 같은데?

아내가 말했다. 알았어. 소화기 내과 진료는 실비보험 청구를 해야 하니까 어쩌고 저쩌고~.


열명 남짓 예약 환자 진료가 나길 기다렸다가 소화기 내과 전문의를 만났다.

한 달 전, 코로나-19 확진 이후 몇 가지 증상으로 진료하고 간과 폐 CT 촬영 결과를 설명해 준 의사였다.

간과 폐는 깨끗한데, 장에 변과 가스가 차있고 장내시경을 6년 전에 했으니 장 내시경 검사를 하라면서 예약을 권고했던 의사다.

곧 건강검진을 하니까 그때 장 검사를 하겠다고 했었다.

그 의사가 말했다. 위염이 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일주일 정도 약을 드시면 될 것 같고요.

지난번 말씀드린 대로 장내시경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예약해 드릴까요?


참 이상했다.

의사가 지난번 간과  검사를  다음, 간과 폐는 이상이 없다며 장내시경 검사를 권면하고 예약해 드릴까요 했다.

이번엔  검사를  다음, 위는  걱정  해도 된다며 장내시경 검사를 다시 권하며 예약해 드릴까요라고 .

이 양반이 장 내시경 전문의인가? 왜 자꾸만 장 내시경을 하라고 하지?

의아했지만, 건강검진 결과를 본 후에 장 내시경 검사 여부를 결정하겠다며, 담당의 소견서를 써달라고 했다.


의사가 물어봤다.  소견서가 필요하냐고.

실비보험 청구를 위해 아내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했더니, 건강검진 실비보험 상관이 없는데요라고 했다.

알았다고 하고 진료실 밖으로 나오는데 간호사가 쫓아 나오며 물었다.

지난번, 간과 폐 CT 검사한 걸로 진단서를 발급해 드릴까요?

진단서 발급비용은 2 원입니다. 수납하고 발급받으시면 됩니다.

얼떨결에 네.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답했다.


시계를 보니 11시였다.

아내에게 진료가 끝났으니 빨리 태우러 오라고 전화했다.

병원 수납창구로 가던  무인수납기를 발견했다.

수납창구에 가면 번호표를 뽑고 대기해야 했기에 시간 절약을 위해 무인수납기로 갔다.

주민등록번호를 쳤더니 신용카드를 삽입하라고 했다.

무인수납기를 사용할  안다는 생각에 약간 뿌듯했다.

2 8 원이 결제되었다.

공단 검진을 했는데, 내시경 검사 비용도 10%인 8천70원을 지불하고, 소화기 내과 진료비용도 2만 8천 원이나?

어쨌든 청와대 관람시간을 맞추려는 급한 마음에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향했다.

약을 받아 들고 아내를 기다리면서 무인수납기 영수증을 자세히 봤다.

진찰료 8천 원, 진단서 2만 원이었다.

어! 진단서를 발급받지도 않았는데 2만 원을 냈다고!

손해 봤다는 생각에 병원으로 되돌아가 증명서 발급창구 영수증을 들이밀며 진단서를 발급해 달라고 했다.

그렇게 불필요한 진단서를 발급받았다. 왜냐면 이미 돈을 냈으니까!


아내가 왔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에게 말했다.

소화기 내과 의사가 공단 건강검진이라 실비보험이 필요 없다고 하던데, 소견서는 없고 진단서만 있다고 해서 진단서를 끊었는데 2만 원 들었어.


잘 모를 땐 아내에게 물어보자


아내가 말했다. 실비보험이 필요 없다고 의사가 얘기했으면 그냥 오지 진단서는 왜 발급받았냐고.

당신이 의사 소견서 떼오라고 해서, 소견서 달라고 하니까 진단서를 발급해줬다고 했다.

아내는 내가 언제 소견서가 필요하다고 했냐면서, 소화기 내과 진료를 한다기에 진료비가 많이 나올 경우엔 실비보험 청구하려고 관련 서류를 받아오라고 한 거라면서 어쩌고저쩌고.

평소엔 잘 물어보더니 모르면 전화해서 물어보지 왜 물어보지도 않고 2만 원짜리 진단서를 발급받았냐면서 어쩌고저쩌고.

졸지에 아내 앞에서 바보가 되었다.

위내시경 8천70원과 소화기내과 진료비 8천 원을 더해도 1만 6천70원인데 실비보험 청구하면 1만 원 제하고 6천70원을 받을 텐데, 2만 원짜리 진단서를 떼어오면 실비청구가 무슨 소용이냐며 어쩌고저쩌고.


30여 년간 입고 있던 군복을 벗은 지 3년이 넘었지만, 난 여전히 아내 앞에선 어리바리한 사회초년생이다.

다시 한번 다짐한다.

잘 모를 땐 아내에게 물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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