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친구 이야기
친구들과 부부동반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각기 다른 생업에 종사하는 세 친구가 의견을 조율하고 일정을 맞추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결국 요식업을 하는 친구의 정기휴무일로 여행일자를 맞추었다. 휴무일 하루 전날 오후에 영업을 일찍 마무리하고 멀지 않은 곳으로 떠나기로 했다. 그렇게 세 친구의 강화여행을 계획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문득 친구들과의 옛 추억이 떠올랐다. 1982년 우린 강화여행을 했었다. 초지의 외할머니댁에 머물면서 바닷가 갈대밭에서 격투씬 사진도 찍었고 전등사에도 갔었다. 세 친구가 전등사에서 함께 촬영한 사진이 있었다. 의도하진 않았지만 우린 40년 만의 리마인드 강화여행을 계획했던 것이다.
펜션을 예약하고 각자 분담한 품목을 준비해서 화요일 점심에 만났다. 만남의 장소는 늘 그래 왔듯이 한 친구가 운영하는 김포 대명항 인근 생선구이전문점이었다. 각자 좋아하는 생선구이로 점심식사를 하고 펜션으로 향했다.
산기슭에 위치한 바다 전망의 아담한 펜션이었다. 제법 규모 있는 수영장이 딸린 사진을 보았는데, 실제 와보니 2~3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간이풀장이었다. 하지만 우리만의 프라이빗이 보장되는 단독 펜션이라 좋았다. 체크인을 하고 아내들이 좋아하는 카페로 향했다.
강화도에 산토리니처럼 꾸민 카페가 있었다. 코로나 이전에 세 친구가 해외여행을 꿈꾸며 계를 든 적이 있었다. 어느 정도 비용이 준비되었을 때, 멀리는 못 가더라도 가까운 곳으로 떠나기로 했었다. 블라디보스토크-하바롭스크 기차여행이었다. 러시아 횡단 여행을 할 시간 적 여유가 없었기에 맛만 보기로 했었다. 하지만 계획이 무산되었다.
세 친구의 휴가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해외여행 계는 깨뜨리고 국내여행으로 전환했다. 그 첫 번째가 이번 강화여행이기에 감회가 더욱 깊었다. 산토리니는 못 가더라도 산토리니처럼 꾸민 강화도 카페가 반가웠던 이유다.
카페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모처럼 일상에서 벗어나 호탕하게 웃는 친구들의 모습에 즐거움이 더했다. 아내들은 무슨 재미난 대화를 하는지 서로 맞장구를 치면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보다 여유롭게 카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는 게 더 좋다. 노사연의 노랫말처럼 우린 이제 익어가고 있나 보다. 펜션 주인장으로부터 BBQ 그릴을 사용할 거냐는 문의 전화가 왔다. 어느덧 저녁식사를 준비할 시간이다.
여행지에선 BBQ타임이 클라이맥스다. 목장갑을 끼고 집게를 들고 장작불 위에 삼겹살을 올렸다. 지글지글, 돼지기름이 떨어지자 장작불이 크게 살아나더니, 검은 연기가 삼겹살을 뒤덮었다. 고기를 먹을 줄만 알지 구울 줄은 모른다며 아내가 내 집게를 뺏어 들었다. 이리저리 옮겨고 뒤집어 가며 고기를 굽는 아내를 보니 신기하다. 아내는 뭐든지 나보다 더 잘한다. 군인의 아내로 30여 년간 모진 경험을 다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여하튼 아내의 솜씨로 잘 구워진 소, 돼지, 소시지가 끝없이 식도를 타고 내려간다. 워커 가죽도 뚫는다는 산모기가 해피타임을 방해하려 했지만 먹는 즐거움을 멈출 순 없었다.
거실로 자리를 옮긴 우린 새벽 2시 30분까지 고스톱을 쳤다. 시어머니에게 고스톱을 배웠다는 친구 아내가 1등을 했다. 그렇게 세 친구의 리마인드 강화여행 첫날이 지나갔다.
둘째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는 예보에 40년 만의 전등사 리마인드 사진 촬영은 접기로 했다. 대신 펜션에서 같은 위치에서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아침식사로 남자들은 라면을 끓여 먹고, 아내들을 위해선 내가 에그 스크램블을 했다. 유엔군 파병 시절 유럽 친구들로부터 터득한 솜씨를 발휘했더니 아내들이 좋아했다.
비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펜션 거실에서 커피를 마시며 빗소리를 들으며 담소를 나누었다. 11시 체크아웃할 시간이 되었다. 점심식사는 강화에서 유명하다는 맛집에서 젖국 갈비를 먹기로 했다. 젖국 갈비 전골, 약선 버섯전골을 주문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더 건강해진 느낌이다.
주룩주룩 비가 그치지 않고 내린다. 가까운 김포에 사업장이 있어도 연육교가 놓인 석모도에 못 갔다는 친구 내외를 위해 행로를 정했다. 석모도에 가서 빗줄기가 조금 가늘어지면 석모도 수목원을 걷기로 했다. 수목원에 도착하니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석모도 온천에 가서 족욕을 하기로 했다. 온천에 도착하니 족욕탕은 없어졌고 노천탕을 이용해야 한단다. 아내들 중엔 온천욕을 원하는 이도 있고 헤어스타일과 메이크업에 신경 쓰는 이도 있었다. 온천욕을 하려면 대여 수영복을 사용해야 했다. 결국 온천욕을 포기하고 지나는 길에 본 카페로 향했다. 아내들은 카페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카페 건물이 무척 컸다. 들어가 보니 리조트 형식의 호텔에 딸린 카페였다.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멋진 수영장이 있었다. 투숙객 전용이라고 한다. 수영장 옆엔 글램핑장도 있었다. 이런 곳이 있는 줄 알았으면 여길 예약했을텐데! I'll be back! 이렇게 40년 만의 리마인드 강화여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