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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Sep 01. 2023

랑스 하우스와 이재효 갤러리

양평 여행

양평에 가기 위해 몇 주 전부터 약속을 잡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약속한 날로부터 일주일 전의 일기예보가 강력한 태풍 소식이었다. 계획을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부터 태풍경로가 바뀔 수도 있으니 계획대로 추진하자는 의견까지 논란이 있었다. 결국 계획대로 가기로 했다. 당일이 되었다. 비가 멈추고 날씨가 개이기 시작했다. 교외로 나가기 딱 좋은 날씨였다. 세 가족이 스타렉스로 함께 서울을 출발했다. 여럿이 함께 하니 피크닉 분위기가 났다. 드디어 양평으로 귀촌한 친구 집을 방문했다. 랑스 하우스(Lang's house)라는 명패가 붙어있었다. 아들, 딸 이름이 모두 0랑이기에 그렇게 했나 보다. 정원 잔디를 손질이 힘들어 한쪽에는 데크를, 바깥쪽으로는 화단을 만들고, 잔디 부분을 줄여가고 있다고 한다. 부지런해야 전원주택에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친구 내외의 얼굴은 좋아 보였다. 전원생활이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전원주택에 살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Lang’s House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귀촌 3년째인 친구 집에 걸린 안주인의 그림을 비롯해서 진열장의 수많은 커피잔 등 가정집 보단 카페란 느낌이 들었다. 거실에 붙은 작은 방을 튼 자리에 소파가 놓여 있었다. 소파에 푹 파묻혀 앉아보니 천국이 따로 없다. 안주인이 내온 웰컴 드링크를 마셨다. 두 시간 이동 간의 여독이 싹 풀렸다. 이어서 연어를 메인으로 한 오찬이 나왔다. 일행이 가져간 민어회까지 곁들이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맛있는 오찬을 마치고 디저트로 나온 수제 카스텔라에 곁들인 커피에 이어 과일, 수제 양갱, 보이차까지... 그 맛과 격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Lang’s House


소화도 시키고 구경도 할 겸 동네 한 바퀴 돌기로 했다. 이웃한 이장댁에 들렀다. 주인은 없었지만 ‘양평정원’이라고 써붙인 그 댁의 정원은 개방정원이란다. 널찍한 정원에 주인장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닿은 흔적이 보인다. 카메라 스폿으로 보이는 장소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사진을 찍어댔다. 몇 장의 샷이 잘 나왔다. 아내들이 네 친구의 사진이 가장 잘 나왔다고 했다. 모두 편안한 모습이다. 인생이란 그런 건가 보다. 비우고 내려놓으니 몸도 마음도 편해진다.


비우고 내려놓으면 몸과 마음이 편해진다.

양평정원




친구가 집 근처에 미술관이 있다고 했다. 이재효 갤러리다. 입장료 1인 1만 2천 원, 음료 포함 1만 5천 원이다. 시골 미술관이라더니 입장료가 만만치 않은데!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니 철사줄에 매달아 놓은 돌멩이들이 우릴 반겼다. 동굴 천장을 묘사한 듯한데, 재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구나 제1전시관 입구는 낙엽으로 통로를 뒤덮어 놓았다. 퀴퀴한 냄새와 먼지가 나는 듯한 느낌이 별로였다. 나무로 뭔가를 상징하는 조형물 투성이었다. 이게 무슨 예술작품이라고, 나도 할 수 있어! 그러던 중 한 작품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천정에서 자란 것처럼 보이는 풀, 그사이로 내려뜨린 줄, 그 줄에 매달린 돌덩이, 돌덩이들이 만들어 낸 원형동굴, 원형동굴에서 보이는 둥근 창 밖 풍경, 바닥에 떨어져 있는 낙엽들, 조형물이 만들어낸 그림자... 이런 걸 보라고 입장료를 받았구나?


돌과 철사와 나뭇잎과 풀로 만든 작품


제2관, 제3관을 지나면서 나도 할 수 있단 말이 더 이상 나오질 않았다. 뭔지 알 순 없지만 작가의 시간과 정성이 담긴 작품이란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특히 수많은 못으로 만들어낸 글자와 그 글자들이 만들어낸 조형물이 가장 눈에 띄었다. 제4관, 제5관에 이르면서 작가의 예술혼을 느꼈다. 일행 중 한 친구가 물었다. 갤러리를 돌아보니 더하기 느낌이냐 빼기 느낌이냐? 빼기 느낌이 들었다고 했더니 작가가 의도한 바가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빼기라고 한 건 작품마다 쓰여있는 무엇 빼기 무엇은 무엇이란 표시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관을 돌면서 돌, 나무, 낙엽, 들풀, 못, 책처럼 우리 주변에 있는 소재로 만들어진 걸작품을 감상하는데 “내려놓음”이란 말이 떠올랐다. 작가의 의도가 내게 전달되었던 모양이다.


나무에 박은 나사못으로 글자를 만들고 옆면을 그라인딩한 작품


갤러리를 떠나기 전 뭔가 아쉬움이 남았다. 제5전시장에 피아노가 있었다. 피아노 덮개가 열리지 않았다. 피아노 의자에 앉았다. 피아노를 치는 척, 연주 퍼포먼스를 했다. 친구들과 아내들이 모두 감독이 되어 이래라저래라 하며 요구하는 대로 고개를 들고 어깨를 내리고… 사진을 보니 제법 피아노 연주를 잘하는 듯한 포즈가 나왔다. 기실 난 피아노를 칠 줄 모른다. 연극도 이렇게 하는 건가 보다.


피아노 연주 퍼포먼스


갤러리를 나오면서 내일 당장 이재효 작품을 모방할 수 있는 재료를 구입해야겠다고 했다. 한 친구가 웃으며 말한다. 방금 지나간 관람객들도 같은 말을 했다나! 대부분의 관람객들이 제1관에서 제5관을 돌면서 비슷한 생각을 했나 보다. 대단하다. 하지만,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예술작품은 예술혼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작품은 예술혼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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