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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Jul 24. 2022

전우의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신랑 신부 외 최소 4명은 주례사를 들었다

6월 어느 날, 해병대 전우로부터 인스타그램 문자를 받았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게 되었는데, 직장 생활하면서 초심을 잃으려 할 때마다 해병대 시절을 떠올렸고, 해병대를 떠올리면 당시 대대장이었던 내가 생각났으며, 수십 차례의 고심 끝에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게 되었다고 했다. 다른 일정이 없고 장소도 서울이기에 흔쾌히 수락하고 연락처를 알려줬다.


예비신부와 함께 인사차 방문하겠다는 연락을 받고, 며칠 후 예비부부를 만났다. 5년 전 지인 소개로 만났는 데, 9살 나이 차가 부담스러워 친한 오빠와 동생 사이로만 4년을 지냈다고 한다. 예비신랑이 4년간 서울에서 부산까지 예비신부를 찾아가며 구애한 끝에 1년 전부터 진지한 만남을 해서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었단다. 항공사 승무원인 예비신부는 조부가 목사님이며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했다고 자기소개를 했다. 예비부부의 인사를 받았으니 이젠 주례사를 준비해야 한다.


웹서핑으로 요즘 주례사를 어떻게 하는지 검색했다. 주례를 해본   10년이 지나서 이번이 처음이나 마찬가지다. 요즘은 주례가 없는 결혼식이 대세이고, 주례를  경우 5~7 정도로 주례사를 짧게 하는 추세란다. 신랑 신부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고, 양가 부모님과 하객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 다음, 신랑 신부에게 당부의 말을 하는 순서가 일반적 주례사라고 했다. 최근 주례를 했다는 친구에 의하면, "주례사를 듣는 사람은 남편이 실수할까 걱정하는 주례자 아내,  예정된 주례를 준비하는 하객뿐이고, 신랑 신부도 주례사를 기억하지 못하더라"라고 했다. 하지만 뭔가 임팩트가 있는 주례사를 하고 싶었다.


무슨 말을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하절기 양복을 한벌 사러 가자고 했다. 주례 때 입으려고 한 옷이 너무 젊은 트렌드라 점잖은 걸로 입는 게 좋겠다는 얘기다. 백화점 남성 코너를 한 바퀴 돌아보니 눈에 띄는 양복이 있었다. 입어보니 마음에 들었다.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아내가 바로 결제했다. 원님 덕에 나팔 분다더니 주례 덕에 새 옷이 한벌 생겼다. 집에 돌아와 얼마 전 선물 받은 넥타이와 양복을 코디해보니 잘 어울렸다. 이젠 주례사만 준비하면 된다.


신랑 신부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곰곰이 생각했다. 신랑은 해병대 장교 출신이고 신부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란 걸 강조하기로 했다.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란 해병대 표어에 신부 이름을 넣어 신랑에게 당부하면 좋을 것 같았다. "누구나 000의 신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000을 신부로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신부에겐 결혼이나 부부와 관련된 성경 구절을 인용해서 권면의 말을 하기로 했다. "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의 값은 진주보다 더 하니라"라는 구절이 마음에 닿았다.


이젠 부부에게 공통적으로 당부할 말을 준비하면 된다. 인터넷 서핑을 다시 했다. "부부는 일심동체가 아니라 이심이체(二心異體)"란 말에 꽂혔다. 성격, 성별, 성장환경, 가치관 등이 다르기 때문에 일심동체가 될 수 없단 의미다. 당부의 말 한 꼭지가 만들어졌다. 세 가지 당부를 염두했으니 두 꼭지만 더 찾으면 된다. 부부싸움의 원인을 생각해봤다. 배우자를 남과 비교하다 보니 만족하지 못하고, 그게 증폭되면 갈등이 생긴다. 핵가족화로 시들해져 가는 부모 공경에 대한 얘기도 하면 좋을 듯했다. 드디어 신혼부부 두 사람 모두에게 당부할 세 꼭지가 정해졌다. 일필휘지로 주례사를 썼다.



결혼식 당일이 되었다. 옷을 차려입고 일찍 집을 나섰다. 주례 당일 자가 차량을 타고 나섰다가 교통체증으로 애를 먹었다며 지하철을 이용하란 분의 말이 생각나서 전철을 탔다. 급행을 타고 예식장에 도착하니 1시간 20분 정도 시간이 남았다. 리허설을 하던 신랑과 눈인사를 하는데 신랑 아버지가 다가오셨다. 십오륙 년 전 일면식이 있던 분이기에 너무 반가웠다. 하객이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서 양가 하객석을 둘러봤다. 신랑 측은 대기업인 삼성 000, 신부 측은 법조계 인사들이 대부분이다. 5성급 000000 호텔의 000 볼룸에서 대기업과 법조계 하객들이 있는 가운데 주례사를 하게 된 셈이다.


양가 어머니의 리허설이 끝나자 식장 관계자가 사회자와 주례자에게 예식 진행을 설명했다. 어느새 예식 시간이 되었다. 화촉점화에 이어 사회자의 소개를 받으며 단상으로 향했다. 하객에게 인사를 하고 단상에 서니 조명이 환하게 비추었다. 오랜만에 수백 명 앞의 스포트라이트가 비추이는 자리에 서게 되었다. 고교시절 이후 교회나 군대에서 수백 명 앞에 서본 경험이 많기에 별로 긴장되진 않았다. 신랑 신부 입장, 혼인서약, 성혼선언에 이어 주례사를 낭독했다. 신부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주례사를 들었다. 신랑은 하루 전에 미리 보내준 주례사를 읽어봤는지 빙그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주례사를 마치고 신랑 신부가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하는 중에 어둠 속에서 코디가 내게로 다가왔다. 식전에 어딘가에 떨어뜨린 주례자용 꽃을 가슴에 다시 달아주었다. 혼인예식 1부를 마치고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마스크를 착용하고 주례한 게 아쉬웠는데, 주례자와 신랑 신부 사진 촬영 땐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혼주석에 함께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던 중, 어느 젊은 여성이 다가오더니 "정말 대대장님이셨어요?"라고 물었다.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와서 뜬금없이 무슨 얘긴가 했는데, 옆자리의 신랑 친지 분이 자기 딸이라며 여성 ROTC를 희망하는 고3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학생은 주례자가 군인처럼 멋있다며 세 차례나 더 찾아와 군대에 관한 질문을 했다. 그 학생의 엄마도 남편이 해병대 장교 출신이었다며, 주례사가 짧아서 너무 좋았다고 한다. 주례사를 조금이라도 들은 사람이 최소한 두 명 있었단 걸 확인한 순간이었다.


2부 행사까지 모든 순서를 마치고 귀가하기 위해 일어섰다. 신랑 어머니께서 예식장을 장식했던 꽃을 다발로 만들어서 주셨다. 신랑 여동생이 예쁘게 다시 포장해서 가져다주었다. 신랑 부모님과 인사를 나눈 후 꽃다발을 들고 식장을 나서는 데, 신부가 쫓아왔다. 두 손을 꼭 잡더니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했다. 신랑을 못 보고 간다며 신부에게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다시 보자며 식장을 나섰다. 신랑에게 전화가 왔다. 인사를 못 드려 죄송하다며, 신행 후 찾아뵙겠다고 하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대대장님, 제 동기들이 이구동성으로 오늘 주례사가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흐뭇했다. 주례사를 들은 사람이 신랑 신부를 제외하고 최소 4명이다. 이렇게 전우의 결혼식 주례를 잘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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