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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ug 19. 2023

교회오빠와 교회누나

하얀 얼굴 진한 눈썹 붉은 입술 단발머리 누나

교회오빠 이야기는 2019년경 KBS TV 특집드라마와 영화로 상영되었고 책으로도 출간되었다. 2019년에 나온 얘기는 성경의 욥처럼 연속된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말기 암 환자의 삶을 마감한 이관희라는 청년을 모티프로 한 감동적인 스토리다.


반면,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교회오빠가 등장한다. 예능에 나오는 교회오빠는 친절하고 잘생기고 노래 잘하는 오빠다. 예능에선 주로 통기타를 메고 다니며 여자아이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모습으로 교회오빠를 패러디하곤 한다.


교회오빠는 얘깃거리로 등장하는 데, 교회누나에 관한 스토리는 왜 없을까? 내 주변엔 교회오빠와 결혼한 청년들도 많지만, 교회누나와 결혼한 청년들의 수도 적지 않다. 어쩌면 교회오빠보다 교회누나 이야기가 더 재미있고 감동적인 소재를 제공할런지도 모른다.


내가 다녔던 교회에선 대부분 학교에서 졸업식과 입학식을 하기 전에 졸업감사예배를 드렸고 그다음 주에 바로 교회학교 상급반으로 진학했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중등부로,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고등부로 편입되었다. 중등부에 새내기로 편입한 어느 겨울날이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서울 변두리에 위치한 개척교회였는데 뒤뜰의 손펌프로 지하수를 끌어올려 청소 용수로 사용하곤 했다. 펌프질을 해서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 손을 씻으려는데, 누군가 다정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손 시리겠다며 따뜻한 물을 한 바가지 부어 주었다. "단발머리에 얼굴이 하얗고 눈썹이 진하고 입술은 빨간" 누나였다. 조숙하던 내 친구를 좋아하던 그 누나, 가끔 그 누나가 생각난다.


고등학교 2학년때의 일이다. 그 시절 교회에선 중고등부 주관으로 문학의 밤이란 행사를 했다. 자작시 낭송, 악기 연주, 연극 공연, 중창, 합창.... 문학의 밤을 하면 다른 교회 학생들이나, 평소 교회를 다니지 않던 친구들도 많이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지금의 오산시)에 있는 교회에서 "단발머리에 얼굴이 하얗고 눈썹이 진하고 입술이 빨간" 누나(고3)와 함께 문학의 밤 사회를 맡게 되었다. 행사를 진행하기 전에 누나가 친구들을 소개해 준다고 했다. 수원에 있는 학교를 다니던 누나가 친구들에게 서울학생을 소개해 준다면 데려왔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경기도 여학생들에게 서울학생과 사귀는 건 로망이었던 모양이다. 그때 난 서울에 있는 학교를 다녔기에 그녀들의 로망인 서울학생이었다. 누나들과 한창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단발머리에 얼굴이 하얗고 눈썹이 진하고 입술이 빨간" 누나의 오빠가 어디선가 나타났다. "얘들아! 얘는 2학년이야! 동생이야, 동생!" 청년부 형에게 대들진 못하고 속으로 말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고3 때의 일이다. 1~2학년 때는 서울에서 하숙을 했다. 하숙하다 보니 친구들이 많이 놀려왔고 공부하기보다는 어른 흉내내기에 바빴다. 이대로는 대학 진학이 쉽지 않다는 생각에 경기도 오산읍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오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수원역에 내려서 다시 시외버스를 타거나 전철을 타고 서울 학교를 다녀야 했기에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하숙집에 있는 것보단 학업에 전념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 통근열차를 기다리던 어느 날, 오산에서 보기 힘든 예쁜 누나가 눈에 띄었다. 당시 교복과 두발 자율화로 고등학생들도 교복 대신 사복을 입고 머리를 길렀지만, 그녀는 고등학생처럼 보이진 않았고 대학생 같았다. 평소에 내가 관심을 가졌던 "단발머리에 얼굴이 하얗고 눈썹이 진하고 입술이 빨간" 여자들과는 스타일이 달랐다. 얼굴이 작고 정말 예뻤고 옷차림도 스타일리시했다. 교회에서 여 전도사님에게 그녀를 본 얘기를 했더니, 전도사님이 씩 웃으면서 자기가 아는 사람이라고 했다. 전도사님에게 소개해달라고 했더니 그러자고 했다. 그런데, 주일 예배 때 그녀가 보였다. 통근열차에선 캐주얼하게 입고 있어서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펌을 한 정장 차림의 그녀의 모습은 나이가 조금 더 들어 보였다. 그녀는 대학생이 아니라 초등학교 선생님이라고 했다. 대학을 갖 졸업했다 하더라도 나이차가 네다섯 살 정도 날 것 같았다. 그녀에게 다가가서 지난 이야기를 했더니 웃으면서 언제 영화 한 편 같이 보자고 했다. 계속 교편을 잡았더라도 지금쯤은 정년퇴직했을 텐데, 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아내를 처음 본 건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다. 서울에서 목회를 하시던 아버지가 오산읍에 있는 교회로 부임을 하시던 날이었다. 온 가족이 함께 교회에서 인사를 하던 중, "단발머리에 얼굴이 하얗고 눈썹이 진하고 입술이 빨간" 그녀가 눈에 띄었다. 왠지 그녀와 섬싱이 생길 거란 기시감이 들었다. 그녀와 교회에서 고등부 시절을 함께 했고 연인이 되었고 결혼을 해서 지금은 출가한 두 자녀를 두었고 곧 둘째 손녀가 태어난다. 그녀는 교회친구였다. 2월생인 내가 학교를 빨리 들어가서 학교는 같은 해에 졸업했지만, 음력 4월생인 아내는 나보다 10개월 누나다. 가끔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누나한테 까불래?" 고교 시절엔 아내와 함께 자전거도 타고 제과점에 가서 빵도 먹고 영화를 보곤 했었다. 아련한 추억이다. 어느 날, 교회에서 여중생이 영화티켓을 끊어 놓았으니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싫다고 했더니 대뜸 그 아이가 하는 말이 "그 여자랑은 영화 보러 잘 가면서, 나랑은 왜 안 가냐?"는 것이다. "뭐! 그 여자! 이게 버릇없이 언니한테 그 여자!"라고 화를 냈더니, 휙 돌아서서 가버렸다. 아내와 난 교회친구였지만, 그 아이에겐 나도 교회오빠였던가 보다.


교회오빠와 교회누나, 교회학교를 다녔던 이들에겐 그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신앙공동체에서 교회오빠, 교회누나, 교회친구 사이로 함께 한 사람 중 배우자와 동역자를 찾을 수 있는 유익이 있다. 청소년기 교회에서 만난 오빠, 누나, 친구는 이해관계로 만난 사람들이 아니다. 각자의 신앙적 성숙함의 차이는 있지만, 청소년기의 순수함 속에서 함께 웃고 울고 싸우고 화해하며 서로를 이해하고 알게 된 사이다. 교회학교 커리큘럼에 함께 참여하면서 오랜 친구처럼 서로를 잘 알게 된다는 것이다. 특히 어른이 되기 전에 만난 사이라서 서로의 인성을 간파할 수 있다. 결혼을 전제로 소개를 받거나, 어른이 되어 서로의 단점을 감추고 만난 관계보다는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다. 이런 이들과 함께 사역을 하거나, 배우자로서 인생을 함께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아들은 교회누나, 나의 딸은 교회오빠와 결혼했다. 나의 손주들도 그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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