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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16. 2020

승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제 분야의 승자는 감당해야 할 왕관의 무게가 있다

왕관의 무게를 잘 감당해 온 진정한 승자 중의 한 사람은 김연아 선수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국내외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의 영광을 차지하였다. 그녀가 세운 경이적인 세계 신기록과 완벽하고 예술적인 피겨스케이팅의 모습은 전 세계인들의 뇌리 속에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녀는 미국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포함되기도 하는 등 스포츠인으로서는 최고의 영예를 누리고 은퇴하였다. 그녀가 승리자로서 왕관의 무게를 잘 견뎌내는 모습은 2014년 2월 은퇴 이후 2018 평창 동계올림픽 홍보대사로서의 활동에서 돋보였다. 평창 올림픽 유치를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했지만, 김연아 홍보대사가 없었다면 2018년의 평창도 없었을 수도 있다.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인 김연아 선수는 거액의 후원금과 기부금을 사회에 쾌척하는 등 각종 선행으로도 유명하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국적기 항공사 오너 일가의 갑질은 널리 알려져 있다. 가족 모두가 구설수에 오르거나 법적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은 동종업계의 승자로서 왕관의 무게를 견뎌낼 자질도 의지도 없었던 것이다. 그 기업의 수익과 사회 환원 기부금을 비교해 보면, 그들의 끝없는 욕심을 수치화할 수 있다. 승자가 왕관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다면 물러날 수밖에 없다. 그들이 앉아있는 왕좌엔 머지않은 미래에 다른 이들이 않게 될 것이다.


21대 총선에서 여당은 대승을 거두었다. 문재인 정부의 승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젠 왕관의 무게를 감당해야 할 차례다. 경제 회복, 민심 통합, 외교적 고립 탈피 등 해결해야 할 중대한 현안과제가 산적해 있다. 승리의 기쁨에 도취되는 것은 오늘 하루면 족하다.  COVID-19 팬데믹 상황 대처 측면에서 외신의 칭찬을 받고 있듯이, 여당과 정부는 함께 힘을 모아 대한민국의 이름에 걸맞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얘기가 점점 더 무거운 방향으로 흘렀다. 고교 시절에 승자로서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했던 에피소드를 가볍게 소개하려고 했는 데, 역시 글쓰기는 쉽지 않다. 고등학교 2학년 무렵이었다. 친구의 손에 이끌려 어느 교실로 갔다. 시끌벅적하는 소리와 함께 꽤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 친구는 내 손을 붙잡고 그 무리 속으로 들어갔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친구가 앉아 있었다. 문과 팔씨름 대표 선수라고 했다. 난 이과 대표 선수란다.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해 보려고 한다.


난 국민학교, 지금의 초등학교 5~6학년 시절부터 팔씨름을 좋아했다. 아니 제법 잘했다. 동네 친구들이나 같은 반 친구들과 팔씨름을 하면 모두 이겼다. 중학교 땐 같은 반 친구 모두와 팔씨름을 했던 적도 있다. 수십 명의 친구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한 명씩 도전을 받았다. 약한 친구들은 팔목을 잡고, 조금 센 친구들은 맞잡고 팔씨름을 했다. 친구들에게 팔씨름을 진 기억은 나지 않는다. 중학교 땐 어른 들과도 팔씨름을 많이 했다. 열에 아홉 번은 내가 이겼다. 그런 내가 친구의 손에 이끌려 이과 팔씨름 대표로 문과 대표와 겨루게 되었던 것이다. 중3 때쯤 성장을 멈춘 내 키는 173cm, 당시 몸무게는 60kg 정도였으니까 외형적으로는 팔 힘이 세게 보이진 않았다. 반면, 그 친구는 제법 체격이 좋았고,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쌀가마니 2개를 들고 아파트를 오르내린다고도 했다. 팔씨름이 시작되었다. 기술적으로 기선을 제압한 내가 이겼다. 내가 이기는 쪽에 몇백 원짜리(당시 짜장면 두 그릇 값 정도) 내기를 걸었던 친구들은 신이 났다.


교실로 돌아와서 수업을 하는 데, 선생님의 말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친구들의 환호성과 승리의 기쁨만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팔꿈치가 시큰거렸다. 팔씨름을 하던 도중 힘줄이 약간 당겨지는 느낌을 받았었는 데 힘을 무리하게 쓴 것 같았다. 하지만 수업이 모두 끝날 때까지 참았다. 왜! 나는 승자니까! 승자가 어찌 양호실에 갈 수 있겠는가! 내가 양호실에 간 것이 알려지면, 나의 승리는 헛된 것이 될 텐데. 이것이 그 시절 내가 견뎌야 했던 승자로서의 왕관의 무게였다. 팔꿈치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수업이 모두 끝나고 살며시 양호실로 갔다. 다행히 양호 선생님이 퇴근하기 전이었다. 양호 선생님께 팔을 조금 무리해서 쓴 것 같으니 물파스를 발라달라고 했다. 선생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오늘은 참 이상한 날이네? 아까 점심 무렵에 우락부락하게 생긴 친구가 와서 팔이 아프다고 했었는데!" 그 친구였다. 그 친구가 나보다 먼저 양호실에 찾아갔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팔씨름을 이겼고,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몇 시간을 참다가 그 친구보다 늦게 양호선생님을 만났다. 치기 어린 듯 하지만, 그때 그 시절 난 그렇게 내 왕관의 무게를 견뎌냈다.


팔씨름에도 힘을 압도하는 기술이 있다 @latinclub.tistory.com


스포츠에서도, 경제계에서도, 정치계에서도, 그리고 학창 시절에도
 "승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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