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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19. 2020

The Masterpiece, 태동(胎動)

내 인생의 역작(力作)을 그리다

학창 시절, 서클 활동으로 미술부에 들어갔다.

어릴 때부터 뭔가를 끄적끄적 그리면 미술 선생님이 칭찬을 하셨기 때문이다.

학교 축제 때 미전(美展)도 열린다는 소문이 돌았다.

사실이었다. 미술부는 작품을 두 점 이상 꼭 출품해야 한다고 했다.

난 1학년이었다.

억지로 그리기는 싫었지만 부장 선배의 당근과 채찍에 거부할 방도가 없었다.

유화 한 작품을 완성했다. 잘 그린 듯하면서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미술부장 선배에게 보였다.

선배가 붓으로 두어 군데 터치했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은 이런 거로구나! 그림을 완성했다.

나도 선배도 흡족했다.


한 작품이 남았다.

정말 그리기 싫었다.

자주적 인간인 난 강제로 하는 건 정말 싫었다.

하지만 그려야만 했다. 1학년이었기에.

유화 붓과 나이프를 들고 이리저리 끄적였다.

말 그대로 아무 그림이었다. 아니 아무 그림도 아니었다.

검은색 칠을 해서 그림을 모두 지웠다.

지우다 보니 캔버스 전체가 까맣게 칠해졌다.

꾀가 났다.

노랑, 파랑, 빨강 유화 물감 튜브를 들었다.

튜브로 물감을 짜면서 캔버스에 달팽이 모양의 원을 그렸다.

노란색 물감을 짜면서 돌아간다.

빨간색 물감을 짜면서 돌아간다.

마지막으로 파란색 물감을 짜면서 돌아간다.

장난질을 마쳤다.

뭔가가 떠올랐다. 태동(胎動)!

제목을 태동으로 정했다.


미술 부장 선배에게 그림을 보였다.

이게 뭐지?

추상화요! 제목은 태동(胎動)입니다.

선배님! 전 이제 출품작 두 개 다 그렸어요.

당당하게 말했다.

부장 선배가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의 Materpice 태동(胎動)이 탄생했다.

축제일이 되었다. 미전(美展)이 열렸다.

나의 두 작품은 고급 액자에 끼워져서 전시되었다.

혹시 설명을 해야 할까 해서 태동(胎動) 주변을 서성였다.

정장 차림의 노신사 두 분이 다가왔다.

태동(胎動)을 보며 하시는 말씀이 재미있다.

한 분이 얘기했다. 이거 학생이 장난질한 거 아냐?

다른 한 분이 점잖게 말씀하셨다.

어허! 미술품을 감상할 줄 모르는군!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서서 두 눈을 살포시 감고 그림을 감상해보게나!

태동(胎動)이 느껴질 걸세!

먼저 분이 따라 했다.

아! 정말 태동(胎動)이 느껴지는군! 자네도 심장 뛰는 소리가 들리는가?

그렇게 태동(胎動)은 내 인생의 Masterpiece임이 검증되었다.

아이패드 그림판에 손가락으로 그때 그 작품을 다시 그려 보았다.

튜브에서 물감을 짜내어 그린 유화만큼 입체감은 없었지만 비슷하게 그렸다.

오늘 내 인생의 역작(力作)을 다시 그렸다.

예술품은 해석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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