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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을 다녀오며

관계의 중요성에 대하여

by Kenny

‘중국의 꽌시( Quanxi, 關係) 문화’에 관한 많은 학술 연구가 있을 정도로 중국에서는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들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제주도의 경우, 동향이나 동창이란 이유만으론 친밀한 관계가 형성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서로의 경조사 챙기기를 비롯해서 오랫동안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그들만의 끈끈한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없다고 한다. 이와 달리 호남의 경우, 동향이란 이유만으로도 결속력을 보인다. 온갖 고장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모인 서울의 경우엔 제주나 호남과 같은 결속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속력이 있는 집단이 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다.

우리 교회 원로장로님의 부고를 듣고, 낮에 아내가 조문을 했음에도 퇴근길에 장례식장을 찾아가서 문상을 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다. 물론, 같은 교회에 다니기만 한다기 보다는 학교 선배이자 군대 선배이기도 하다. 또 아들과 딸의 결혼식에 모두 부조를 한 분이기도 하다. 하지만 거의 이십 년 정도의 연령 차로 인해서 직접적인 대화를 한 적은 한번뿐이다. “당신은 내 후배는 아니지?” "후배가 맞는데요. “

고인을 떠올리면 그와의 관계에서 오래전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단 한마디의 대화가 전부이다. 그럼에도 그분은 내 아이들의 경사를 챙기셨고, 나는 그분의 장례식장에 다녀온다. 어쩌면 이런 관계가 대부분의 한국 남자들의 관계일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본다. 내가 고인이 된 후에 나의 영정 앞에서 나를 기억하는 누군가가 고인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건 한마디뿐이라고 말한다면 어떨까?

후배들에게 지갑을 더 열어야겠다. 밥도 좀 더 자주 사주고, 커피도 많이 사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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