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단상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은 수많은 유태인을 가스실로 보낸 장본인이다. 천인공노할 만행을 저지른 그가 법정에서 진술한 말은 “나는 책임 있는 지도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였다.
이를 두고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악의 평범성’이란 표현을 했다. 아돌프 아이히만 같은 부류는 증오도 죄의식도 드러내지 않는 평범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은, 부당한 권위에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 권위에 동조해서 언제든지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잠재성을 지니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사건과 관련해서 누군가 말했다. “생각의 무능, 말하기의 무능, 행동의 무능이 유죄의 사유“라고. 아돌프 아이히만은 자신은 ”상부에서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고 누굴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다 “며 자기는 죄가 없다고 항변했다고 한다.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비상계엄 관련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 군인으로서 명령에 따랐을 뿐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령관들의 모습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이 오버랩된다. 30년이 넘도록 군복을 입고 자랑스럽게 국토방위와 세계평화를 위해 청춘을 바쳤던 퇴역 군인으로서 참 부끄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