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nny Apr 27. 2020

창조론적 관점에서 본 가축의 기원과 동식물의 차이

창세기 1장 천지창조 부분을 읽다가 발견한 창조론적 관점의 사실

일일 성경 읽기는 나의 루틴의 일부분이다. 출근하면 바로 [Bible Time]을 펼치고 오늘의 주제에 해당하는 부분을 읽고 묵상한다. 오늘은 "시리아 군대가 도망가다"는 제목으로 열왕기하 7~8장을 읽었다. 최근 2년간 이런 방법으로 성경 일독하기를 지속해왔다. 해마다 성경 일독은 꼭 했던 것 같다. 모두 합치면 부분적으로 읽은 것은 제외하더라도 최소한 성경을 열 번 이상은 완독 했을 것이다.


금년 초엔 다른 해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더 생겨서 계획적인 성경통독 시간 이외에도 가끔씩 성경을 펼쳐서 주석까지 포함해서 자세하게 읽곤 했다. 창세기의 천지창조 부분을 읽던 중, 이전에는 눈여겨보지 못했던 부분이 눈에 띄었다. 가축의 기원과 동식물의 차이에 대한 창조론적 사실을 깨우친 것이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가축의 기원에 관한 사실이다. 사실 난 가축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야생동물을 길들여서 만든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어쩌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웠기에 그로 인해 만들어진 고정관념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창세기 1장 25절에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하나님이... 가축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었다. 번역하면서 오류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두 종류의 영어 성경을 찾아보니 cattle(가축) 또는 livestocks(가축)라고 되어 있었다. 번역의 오류는 아니었다. 그렇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여러 종류의 가축을 창조하셨던 것이다. 즉, 가축의 기원은, 내가 알고 있던 것처럼, 사람에 의해 길들여진 야생동물이 아니었다.


다른 하나의 발견은 창조론적 관점에서 동식물의 차이에 대한 사실이다. 난 동물과 식물을 모두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시에 함께 만드셨으려니 하고 생각했었다. 어쩌면 이 부분은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도 같다. 앞에서 제시했던 창세기 1장 25절 말씀처럼 동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 동물에 속하는 사람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사실은,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를 비롯한, 창세기의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하나님이 식물을 만들었다는 구절은 창세기의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식물, 즉 풀과 채소와 나무는 하나님이 땅에게 그것들을 내라고 말씀하셔서 생겨난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창세기 1장 11절과 12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식물은 동물처럼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땅을 통해서 나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창조론적 관점에서 동물과 식물의 차이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책을 아무리 많이 읽더라도 습관적으로 읽다 보면 제대로 읽을 수 없더라는 얘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태 신앙인인 내가 창세기 1장을 읽은 횟수로 치면 글자를 깨우친 이후만 계산하더라도 최소 48번 이상은 읽었을 것이다. 이건 1년에 한 번 읽었다고 계산한 것이니까 창세기 1장을 1년에 2번 이상 읽었다고 치면 100번도 넘게 읽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야 창조론적 관점에서 가축의 기원과 동식물의 차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올해주석을 포함해서 꼼꼼하게 성경을 읽다 보니 새로이 알게 된 내용이다. 물론 아무리 꼼꼼하게 읽어도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여전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므로. 여하튼 책을 읽을 때, 어떻게 읽어야 하는 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후엔 특히 성경을 읽을 때의 내 태도가 바뀌었다. 보다 신중한 자세로 속독보다는 정독하겠다는 태도로 한절 한 절씩 성경을 읽고 있다.


이 글은 평신도의 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신학을 전공하신 분이나, 목회를 하시는 분의 관점에서 볼 때 이 글에 논리적 오류가 있거나 다른 문제점이 있다면 댓글로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류의 구원자와 비천한 그의 조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