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콜라~코르키)
산행지 : 인도 히말라야 산닥푸
산행일 : 2024년 10월 24일~11월 02일(토)
누구랑 : 산찾사와 함께 하는 해외 트래킹 팀
제3일 차 : 2024년 10월 26일 토요일
-08:40 : 스리콜라 Craey Stay 출발
-11:10~12:20 Reamen (라만) 중식
-14:50 코르키 Samanden 롯지 (해발 2300m)
드디어 인도 히말라야를 알현하기 위한 출발이다.
아래의 사진은 산닥푸 트레일을 표시한 전체 개념도다.
내가 처음 계획한 코스는 아래 개념도에서 노란색 실선으로 표기된
종주 (마네반장~통루~가리바스~산닥푸~팔루트~고르케이~스리콜라~ 림빅) 코스였다.
그런데 우리 팀의 체력과 연세를 본 현지 로컬 여행사에서 코스 수정을 요구했다.
이미 그곳을 답사했던 모니무슈 정사장도 종주 코스는 힘들다는 걸 인정하여 그 요구를 수용했다.
(산닥푸 트래일 전체 개념도)
다만 이번 트래킹을 추진했던 나는
사전에 그 점을 회원들에게 이해와 동의를 구해야 했는데
다행스럽게 모두들 산닥푸~팔루트 구간이 하이라이트라 그곳만
걸을 수 있음 쉬운 코스가 자신들에겐 훨씬 고마운 일이라며 수긍해 주셨다.
그러나 우리 팀에서 강동섭 님과 이영중 님은 쌩~ 고생을 시켜야 만족하실 강철 체력의
소유자분들이라 전체 팀을 위해 서운하더라도 양해를 구해 흔쾌히 승낙을 받았다.
아래는 그래서 수정된 우리 팀의 날짜별 코스를 표기해 놓은 개념도다.
결론....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다.
사실 트래킹을 끝내고 보니 대폭 줄인 코스였음에도 다들 힘겨워하셨다.
처음 계획대로 진행했다면?
흐~!
생각하기도 싫다.
처음 계획된 코스에선 위 개념도에 표기된
림빅에서 스리콜라까지 걸어가게 되어 있었지만 사륜구동
지프로 편안하게 올라갈 수 있었던 것도 사실 큰 도움이 되었다.
차를 타고 오르다 보니 그 거리도 만만치 않았지만 걷는 거 외엔 별 의미가 없는 구간이었다.
(우리 팀 4박 5일 구간별 개념도)
인도에서 계획은 계획일 뿐이다.
우린 6시에 기상해 7시에 식사 후 바로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6시에 분명 티타임이라 하여
산장의 응접실에 갔는데 차는 물론 인기척도 없다.
어쩌겠나.
실실 산장 주위 산책이나 해야지 모~
얼마 후...
이곳에선 답답한 놈이 해결해야 한다.
나는 주방에 직접 내려가 뜨거운 물을 받아와 차 한잔 마신 후
기다리고 기다린 끝에 국수 한 그릇을 받아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끝냈다.
아침 식사가 늦어진 관계로 출발이 1시간 이상 늦어졌다.
우린 스리콜라 깃점 원점휘귀라 불필요한 짐들은 분리해 이곳 산장에다 맡겼다.
모든 준비 끝.
힘찬 출발을 위해 단체 사진을 찍는데
이곳 주인장이 허겁지겁 달려와 자기네 숙소 홍보용 걸개를 들고 우리 팀을 사진에 담는다.
ㅋㅋㅋ
여긴 한국인 단체가 처음이라 신기했나 보다.
이후 우린 묵었던 산장마다 그곳 주인장들에게 환대를 받았다.
아래는 현지 로컬 여행사에서 보내온 1일 차 코스의 난이도에 대한 설명이다.
15~17km가 되며 트래커의 페이스에 따라 대략 7~8시간이 걸린다는 내용이다.
그럼 난이도가 높다는 거야 뭐야?
이날 걸어보니 실제 거리는 더 짧았고 우린 놀며 쉬며 걸었어도 6시간이 안 걸렸다.
등로는 산장을 떠나자마자 가파른 시멘트 길인데
짧게 끝난 시멘트길이 임도와
접속된 이후엔 이렇게 곳곳엔 산사태 지역을 통과해야 했다.
우린 얼마 못 가 아직 몸이 덜 풀려 그런가
다들 힘겨워하는 것 같아 휴식 타임을 가졌다.
아래 사진은 모니무슈의 오너 정사장이다.
바싹 마른 체구이나 고산에 강한 강철 체력의 사나이로 성실하고 듬직하다.
이번 해외 트래킹엔 12명 이하면 나 홀로 인솔해야 했는데 다행히 산우들 호응도가 좋아
정사장이 직접 한국에서부터 팀을 인솔해 줘 정말 마음 편했다.
안 그랬음 트래킹을 진행하며 여러모로 난 헤맸을 게 분명했다.
등로는 산간 마을에서 마을을 잇는 소로길이다.
그 길을 걷다 보면 이내 선두와 후미의 체력이
극명하게 드러났는데 언제나 그렇듯 난 후미를 책임지고
걸어야 해서 로컬 여행사의 서브 가이드와 첫날부터 많은 소통을 하게 됐다.
서브 가이드의 이름은 미렌이며 42살로 오늘 우리가 머물 산장이 있는
코르키 마을에 산다고 했다.
그는 첫날부터 자신이 맡은 후미를 철저히 챙겨 내게 믿음을 주었다.
네팔이나 여기나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악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매한가지다.
그래서 다들 궁금해한다.
뭐 해서 먹고 사는지?
네팔엔 다락밭과 다랑논이 빼곡한데
사실 여긴 그런 곳도 보이지 않아 나 역시도 그랬다.
마을 하나를 넘기던 언덕길에 들어서자 룽다가 펄럭인다.
저걸 보면 네팔과 접경인 이곳엔 힌두교보다는 라마불교를 믿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걷다 만났던 산간 마을은 모두 깔끔하고 이쁘다.
오히려 인도의 도심이 더 지저분하고 사람 살 곳이 못된 것 같다.
이곳 산간마을엔 베란다마다 유럽처럼 갖가지 꽃 화분으로 장식한 게 이채롭다.
오늘 산행 시작 전 주의 사항으로
산우들께 선두 가이드 텐진셀파를 절대 넘어서지 마라 당부를 했었다.
첫날부터 우리 팀은 29살 젊은 나이의 메인 가이드 텐진셀파가 선두를 맡아
진행했는데 후미와의 간격 조절을 적당히 유지한 리딩을 참 잘한다.
아마도 체력 좋은 몇 명은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이영중 선배가 모시고 온 우리 팀 최 고령자 52년생 문 옥현 씨가 그랬다.
그분은 그 연세에 아직도 마라톤을 하실 만큼 체력은 40대 못지않다.
그러나 고산 경험은 이번이 처음이라 그렇게 막 걷다간 고산병으로 한방에
훅~ 갈 수 있다는 엄포로 빠른 발걸음에 족쇄를 채울 수 있었는데
과연 그 효과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
반면에 우리 팀 최연소 송점숙 님은 초반부터 고전 중이다.
그녀는 내게 본심을 털어놓았다.
사실 자신은 없었는데 신청자분 연세가 다들 지긋하신 것을 확인 후 용기를 냈다며...
ㅋㅋㅋ
다행히 그녀는 느려 터지긴 했어도 꾸준히 따라붙어 줘 나를 안심시켰다.
고산엔 저렇게만 걸어주면 오히려 체력 좋은 분들보다 더 바람직하다.
저질체력은 또 계셨다.
아래의 사진 주인공들...
ㅋㅋㅋ
예전 나와 랑탕 트래킹을 훌륭하게 끝낸 금숙 누님과 그 일행들이다.
금숙 누님은 나랑 같이 갈 사람들 모두 산티아고를 완주했어란 한마디에 난 그럼 됐다고 했다.
역시나 참을성 있게 느려 터져도 따라붙어 주는 게 고산에선 트래커가 갖춰야 할 최고의 덕목이다.
역시나 그녀들 내 예상대로 힘들어는 했지만 훌륭하게 완주하셨다.
지금도 일정 내내 금숙 언니의 투덜이가 생각나 나를 미소 짓게 한다.
"내가 미친년이야~"
"알면서도 또 산찾사한테 속아서 왔어~"
"아구구~ 내가 진짜 미쳤지"
그런데....
그렇게 걷던 우리 팀에 뒤늦게 합류한 로컬 여행사 직원이 또 있었다.
처음에 난 홀로 온 유럽의 트래커인 줄 알았다.
저 아래서 빡세게 빠른 걸음으로 치고 올라오던 그 트래커는
이후 우릴 추월해 가지 않고 후미에서 계속 우릴 따라와 의야 해 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로컬 여행사에서 파견 나온 의료, 행정 담담 직원이란다.
만약 우리 팀에 환자나 부상 등 이례적인 일이 발생하면 본사와 연락해 후송과
그에 따른 모든 행정을 담당한 직원이란다.
햐~!
현지 로컬 여행사가 제대로 된 여행사란 믿음이 간다.
이후 판카치란 이름의 그 직원은 산행을 끝낸 이후엔 산장에서
모든 산우들에게 고산병을 사전에 대비하기 위해 산소 포화도를 측정해 기록하는
업무를 일정 내내 수행했다.
제법 고도를 올렸어도 이곳은 아직도 원시림의 숲 속이다.
역시 아열대 기후라 그런지 수목 한계선은 아직도 멀었나 보다.
등로는 비교적 수월했다.
간혹 만났던 오름길은 꼬부랑길로 경사를 낮춰 걷기 편했다.
그렇게 걸어가다 만난 이정목이 라만을 가리킨다.
라만을 향해가다 길옆 바위틈에서 삼지창을 발견했다.
인도에서 삼지창은 힌두교를 믿는다는 증표다.
삼지창은 바로 시바신과 연관된 무기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상징하는 한편 인간의 몸과 마음 영혼을 뜻하며 진리를 깨닫는 의미란다.
그 삼지창이 있던 등로에서 라만은 가깝다.
오늘 우린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식사는 기다림의 연속
왜?
주방에 들어가 보니 여인 홀로 장작불에 카레를 요리 중이다.
오늘 산행은 비교적 짧고 수월하니
갖은 게 시간뿐이라 서둘 것 없어 우린 요리가 될 동안 주위를 산책하며 휴식을 취했다.
드디어 식사가 준비되어 배식이 이루어지고
한 끼의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며 맛나게 드셔준 우리 팀은
또다시 첫 우리의 보금자리가 되어 줄 코르키로 향했다.
그렇게 걷다 만난 라마 사원...
그냥 갈 순 없잖아~?
룽다와 타루초가 휘날리는 그 사원에 들린 우린
그곳 사원의 마니차를 돌리며 우리 팀의 안전산행을 기원했다.
참고로 마니차는 글을 읽지 못하는 신도들을 위한 것으로 옴마니
반메훔을 외우며 그걸 한번 돌리면 불교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을 쌓은 행위로 여긴다.
라마불교 사원 이후 등로는 여전히 편안한 시골길...
그러다 큰 마당 앞의 건물을 지났는데 바로 이곳이 등산 학교라고...
코르키로 향한 등로가 이번에 계곡을 넘긴다.
계곡 이후 꼬부랑길의 언덕을 힘겹게 올라서자
그 힘겨움을 달래가라 쉼터가 반겨주고
그 이후엔 걷기 편안한 길이 평화롭게 보이던 마을로 우릴 이끈다.
그 마을로 들어서자 서브 가이드가
내 옷깃을 잡더니 예쁘장한 집 한 채를 가리켰다.
바로 저곳이 자기네 집이란다.
아래 사진에서 말 한 필이 풀을 뜯고 있는 집이 바로 서브 가이드 미렌의 집이다.
미렌의 집에서 우리가 하룻밤 묵어갈 산장은 지척이다.
이곳에 여장을 풀은 우린
각자 숙소를 배정받아 짐을 풀었다.
이후부턴 자유시간....
우리 팀의 분위기 메이커 오춘식 님이 신났다.
그는 오늘을 위해 인도의 델리공항에 도착하자마자 100달러를 인도 화폐 루피와 환전했단다.
그 돈을 다 쓰고 가야 하는데 그거 못 쓸 것 같아 안달이 났다.
그래서 이곳 마을의 전통주를 시켰는데 처음엔 뭘 몰라서 그랬고
세 번을 우려 마셔야 하는 걸 깨우친 이후엔 탄력이 붙었다.
연신 술을 시켜 주당들을 불러 세워 맛보게 했는데
ㅋㅋㅋ
다른 사람은 몰라도 대장님은 마셔줘야 하는 거 아니냐 억지를 쓰는 통에
한 대롱 빨았던 난
이궁~!
그거 내가 다 마신 놈으로 오해할 만큼 얼굴이 홍당무가 되어부렀다.
일찍 도착하니 좋다.
오후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다 날씨가 포근한 것 같아 이날 난 찬물에 샤워까지 했다.
그러나 산골마을엔 해가 일찍 저문다.
어느덧 저녁식사 시간....
그런데 식사 도중 갑자기 전등이 꺼진다.
여긴 전력사정이 좋지 못해 그런다고....
이게 다 인도여서 그렇다는 것으로 받아들인 우린 촛불을 켰다.
그런 후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의료 담담 판카치에게 산소 포화도 측정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다들 수치 정상.
다만 주당 오춘식만 측정 불가.
왜 그럴까?
그놈의 술 때문일 거란 추정...
이날 이거 통과를 못함 내일 아침 내려보낼 거란 엄포에 춘식씨
안전부절였는데 우야튼 판카치에게 뇌물을 먹였는지 어찌어찌해 겨우 통과는
했다는 야그가 전설처럼 오늘날까지 코르키 산장에 흘러넘친다 전해지고 있다고 하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