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
산행지 : 네팔 랑탕 체르코리 & 고사인 쿤드
산행일 : 2018년 01월 10일(수)~22일(월) 12박 13일
누구랑 : AM트래킹(주)회원
제7일 차 : 2018년 01월 16일(화)
- 08:00 강진곰파(3870M)
- 09:15 싱둠(3410M)
- 11:40~13:00 탕샵(3410M
- 15:55 라마호텔(2470M)
(트래킹 개념도)
먼저 하늘이 밝아오고
그다음 산 아래서 떠 오르는 햇살을 받은
설산이 붉게 물드는 장엄한 모습이 있는 뒤에야
비로소 주위가 밝아지며 3870m의 고지대 산골 마을에도 아침이 찾아든다.
전날 일찍 트래킹을 끝내고 충분한 휴식이 있어 그런지
다들 시간 전에 준비를 끝낸 산우들은 롯지를 떠날 채비를 꾸렸다.
잠시 잠깐 분주하던 이곳 산골 오지도 우리가 떠나고 나면 또 한동안 잠잠 해 지리라.
그만큼 1월의 이곳은 비수기에 해당한다.
아침 식사를 끝낸 후....
롯지의 로비에 있던 거울에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세월은 참 빨리도 찾아와
평소엔 몰랐던 내 수염의 절반을 이렇게 하얗게 물들여놓았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참 낯설다.
핏줄이 터진 오른쪽 눈망울엔 아직도 핏빛이 선연하다.
몸은 아직 제 컨디션을 찾지 못해 찌뿌둥 하지만
카트만두에서 날아온 소식엔 그분이 안정을 찾아 무사하다니
소용돌이치던 마음에 잔잔한 고요함이 찾아든다.
그럼 된 거다.
나는 연세가 드신 분이라 후유증이라도 생겨 귀국하게 되면
그분의 인생은 물론 가족들이 받을 상처가 무엇보다 염려스러웠었다.
이제는 각자의 가슴에 수많은 사연을 남긴 강진곰파를 뒤로 한다.
내 생전에 이런 높은 고지를 올라온 것 하나 만으로도
아니...
히밀라야 한 자락을 밟았던 사실 만으로 성공했다며
아주 자랑스러워하던 정여사 님의 긍정적인 마인드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고령의 조성갑 님은 이 나이에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그 자체 만으로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추억이다라고 하셨다.
그래서 더욱 고맙다.
반면에....
이렇게 저렇게 했다면 체르코리 등정이 가능했는데 라며
진행에 대한 아쉬움을 계속 말씀하신 산우님도 있어 나는 일정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개인적으로 배낭여행을 통한 여유로운 일정이면 그분의 말씀도 맞다.
그러나 틀에 맞춘 패키지는 기간 안에 모든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무엇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기에 내가 택한 진행 방법은 최선였고
그분이 제안한 방법은 다시 또 가더라도 절대 선택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현지 경험이 풍부한 메인 가이드도 그걸 잘 알고 있어
일언지하에 그의 제안에 태클을 걸며 NO를 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단체 산행을 하는 경우는 개인적인 성향보다
안전을 생각해 넓게 보고 선택해야 하며 또 그런 결정엔 기꺼이 따라줘야 한다.
혹여...
나중에 그분이 나의 이 글을 읽게 되신다면 오해는 하지 마시고
등정 실패의 원인을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본인 스스로에게
한번 물어보는 시간을 같기를 정중히 권한다.
오늘 하산길은 제법 길다.
이틀에 걸쳐 올라온 길을 하룻만에 내려가야 한다.
그러나 국내 산행에 비하면 결코 긴 거리가 아니다.
고산을 올라서는데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 했을 뿐이고
내리막길엔 우리 몸에 상관없다는 차이가 그런 결과를 만들었을 뿐이다.
강진곰파를 벗어나 마니 석의 돌담길을 지나면
스투파가 세워진 규모가 아주 소박한 곰파를 지난다.
이후엔 계속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올라올 땐 그렇게 느끼지 못 한 경사도다.
이 정도로 가팔랐나?
그러다 완만한 평지를 만나자
고운 미세먼저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흙먼지가 날린다.
앞사람과의 간격을 멀찌감치 벌려 놓고 걷는 게 그래서 좋다.
그렇잖아도 저질 체력의 정여사 님을 따라가다 보니 선두권은 사라진 지 오래다
얼마 후...
항상 후미에서 우리와 같이 걷던
황초님도 날리는 먼지 때문에 선두권으로 쫓아 버렸다.
그러자...
정여사 님이 그러신다.
"옆에서 재잘재잘 대던 황초님이 없으니 귀가 심심한걸~!"
ㅋㅋㅋ
걷다 보면 내리막 길만은 없는 법.
가끔씩 만나게 되는 오름길에선 역시나 해발이 높은 지역이라 그런지 힘겹다.
그 오름의 고갯마루에서 선두권이 쉬고 있다.
꼴찌는 항상 그러듯...
우리가 도착해 배낭을 내리자 그들은 또 떠날 채비를 서둔다.
은근과 꾸준함의 대명사 금숙님이 한마디 하신다.
"꼴찌는 맘대로 쉬지도 못하네~!"
대단하신 참을성이다.
그것이 바로 남성들 틈바구니에서 백두대간을 완주하신 저력이다.
랑탕팀이 결성되었을 때 금숙님의 전화를 받았었다.
"저 가도 될까요~?"
"팀에 방해가 된다면 빠질게요."
"데려 가 주신다면 산찾사님만 믿고 가구요."
그때 한치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었다.
금숙님이 가실 이유는 차고 넘치니 무조건 오시라며...
빠른 걸음은 아니나 꾸준히 걸을 수 있는 능력이 고산엔 최적의 조건이다.
더군다나...
평생을 의료계에 몸 담으신 분이라 팀닥터로 손색이 없는 분이다.
실제로 현지에서 발생한 고산병에 노출된 환자와 진행자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되셨다.
이런저런 구급약을 필요한 산우들께 나눠준 일은 그저 덤이고....
그것 하나만으로도 정여사 님은 우리 팀에게 보석 같은 존재가 돼 주셨다.
같은 길을 가는데
올라설 때와 내려갈 때의 풍광이 다르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내려갈 때의 편안함 때문이리라.
네팔은 사람이 길을 만들고
길은 사람이 만든다는 말이 있다.
길을 걷는 동안 그 길 위에서 진짜 나를 찾을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묵언의 수행이라도 하는 듯...
다들 아무 말 없이 걷는다.
하긴...
입을 열어봤자 들어오는 건 먼지뿐이다.
덕분에 수많은 생각들이 정리되는 시간들로 우린 그 길을 채웠다.
정말로...
내 안의 나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오늘 하산길이다.
힘들게 걸어 오를 땐 느끼지 못했던 그런 소중한 시간들을 비로소 우린 경험한다.
어느 틈에 발걸음이 싱둠(3410M)마을에 들어서고
또다시 싱둠 마을을 뒤로 보냈다.
오르락내리락...
무심히 걷는 산우들의 모습들이
어느새 랑탕마을로 빨려 들어가 없어질 때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지고
낑낑대며 올라서던 젊은 청춘을 만났다.
한마디로 이쁘고 부럽다.
금숙님이 그런 처자들을 붙잡고 몇 마디 나눈다.
아~!
빛나는 청춘들...
저들은 오로지 자기들 힘만으로 몇 달을 저렇게 네팔의 오지를 탐험 중이다.
반면에...
이곳의 젊은 네팔리들은 지진으로 황폐된
삶의 터전을 복구하기 위해 저렇게 안간힘을 쓰고 있다.
똑같은 젊음인데 극명하게 비교가 되는 삶을 뭐라 해야 할지?
또다시 다리 쉼을 하는 산우들과 만났다.
그곳엔 포터들도 이렇게 짐을 내려놓고
햇살에 따스하게 데워진 바위에 엎드려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그들에게 디카를 디밀자
하아~!
어찌 저런 미소를 보낼 수 있는지?
아름답다.
내 자식보다 더 어린 저 녀석들의 순진한 눈망울을 보면
순간 혼탁한 나의 영혼마저 깨끗해 짐이 느껴져 온몸이 감전되는 듯하다.
다시 시작된 걸음....
맨 후미에서 타박타박 걷는 나에게 서브 가이드가 디카를 달랜다.
그러더니 탕샵 마을을 배경으로 인물 사진 한 장을 담아준다.
끝까지 제자리를 지키며 나의 뒤를 따라붙던 그 녀석은 나의 수호신이다.
때론 답답해하며 저 홀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어느 틈엔 이렇게 다가와 나에게 사진을 담아주던 그 녀석에게
손짓 발짓을 통해 알아보니 40살에 두 딸을 둔 가장이다.
후에 난 이 녀석에게 그래서 따로 10달러 팁을 챙겨 주었다.
탕샵 마을이 이젠 지척이다.
저곳에서 우린 점심 식사가 예정돼 있다.
우리가 도착하자
요리사들이 항상 그러하듯 달콤한 주스 한잔씩 따라준다.
양지쪽 담벼락엔 요리사들이 감자를 깎고 있다.
오늘은 무슨 요리를 주려고 저럴까?
힘들게 짐을 풀어놓은 여성포터 니찌도 감자 깎는 걸 돕고 있다.
음식이 차려지는 동안
메인 가이드와 서브 가이드 둘이 장난을 치며 놀고 있다.
메인 가이드 마누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19살에 한국에 가서 5년을 살았단다.
싸장님 나빠요로 인기를 끌던 예전 코미디 프로에 나왔던 것처럼
악덕 사장을 만나 한국에 좋지 않은 기억은 없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니
한국의 아줌마들이 다들 저보고 아들~ 아들 하며 챙겨줘
1년 만에 한국말 다 배우고 맨날 먹을 거 주셔서 재미난 한국 생활였다고 한다.
하긴...
정(情) 많은 한국의 어머니들이 틈에서 일을 했다면 안 봐도 비디오다.
지금도 귀여운 티가 나는 예쁘장한 마누인데 당시 19살이면
얼마나 귀여웠을지 상상이 되고도 남는다.
정여사 님이 계속된 여정에 힘겹긴 했나 보다.
오늘은 점심 생각도 없다 하시더니
칼국수가 나오자 얼굴에 희색이 돌며 반가워한다.
"얘들이 내가 국수 좋아하는 걸 어찌 알았지?"
정여사 님만 좋아한 국수가 아닌가 보다.
순식간에 국수 그릇을 비워내고 너도 나도 더 달란다.
다들...
이국땅에서 먹는 고향음식에 감동의 물결이 인다.
사실 한국이라면 별것도 아닌 게 이곳에선 별게로 느껴지나 보다
탕샵에서 늘어지게 더 쉬었다 출발한 이후..
수목한계선을 지나옴을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숲 속의 등로를 걸어 내린다.
울울창창 숲 속길이 반갑다.
그간 따갑기만 하던 햇살도 아열대의 숲 속으로 스며들자 부드럽다.
그런 등로를 따라 걸어 내리는 동안 우린 힐링의 순간을 맞이한다.
이젠 다 내려왔다.
오늘의 종착지 라마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애기처럼 어린 소녀가 60리터쯤 되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올라서다
배시시 웃으며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나마스테이~!"
어찌나 이쁘고 귀엽던지?
홀로 이런 오지를 찾아드는 그 강인함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 없었던 그녀의 외모라 참으로 기특하다.
어릴 때부터 이런 여행을 통한 경험은 분명 그녀의 인생을 풍요롭게 해 줄 것이다.
점점 더 희망을 잃어가는 우리의 젊은 청춘들은 꿈도 못 꾸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간 세상을 바로잡지 못한 기성세대의 잘못이다.
이젠 좀 새로운 세상으로 변화시켜 우리의 젊은 청춘들도
저들처럼 저런 삶을 영위하게 될 날을 소망해 본다.
라마호텔에 도착하자.
먼저 뜨거운 차와 함께 군것질을 내준다.
그간 내주던 비스킷이나 팝콘과 달리 달콤한 스낵이라 자꾸만 손이 간다.
평소 이런 건 별로인데 참 이상하넹~!
오늘도 일찍 라마호텔에 여장을 푼 우리들....
아직 조심스럽긴 하나 이곳에서 몇몇은 돈을 주고
뜨거운 온수로 샤워를 하는 호사를 누리며 느긋한 휴식으로 피로를 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