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랑탕 트래킹 제9편

(시바신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고사인 쿤드)

by Yong Ho Lee

제10일 차 : 2018년 01월 19일(금)

- 08:00 : 라우레비나 (3910m)

- 10:10~10:40 고사인 쿤드(4380m)

- 12:17~13:10 라우레비나 야크(3910m) 중식

- 13:48~13:55 촘롱(3584m)

- 15:05 신곰파(3350m)


(산행 개념도)


라우레비나 롯지의 아침이 밝아온다.

나는 아침 추위도 잊은 채 산장 뜰에서 여명을 맞았다.

저 멀리 다울라기리에서 가네쉬 히말로 이어지는 설산이

서서히 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이 장관이다.





라우레비나 롯지...

비수기라 그런지 유일하게 이곳만 영업을 한다.

올라오면서 들렸던 촐랑 파티는 아예 롯지 자체가 다 빈집였다.

롯지엔 우리 팀만 있어 그 여유로움과 한가함이 참 좋다.

이제 우리는 오늘 고사인 쿤드만 들리면 랑탕 트레킹은 귀향만 남았다.

시간은 충분하니 다들 올라갈 수 있을 거다.

그런 우릴 위해 아침식사엔 북엇국과 계란 프라이 그리고

마른김과 김치를 제공한 한식 요리가 입에 맞는지 다들 밥그릇을 비워냈다.

다행이다.

다들 저런 입맛을 보인다는 건

이젠 그만큼 고산에 적응이 돼 있다는 말과 같다.

이젠 저 밥심으로 우린 고사인 쿤드를 올라야 한다.




드디어 출발이다.

고산이라 그런지 아침엔 제법 춥다.

그래도 바람만 불지 않음 그리 대단한 추위는 아니다.



굳어버린 몸이 풀릴 동안

아주 천천히 진행시키란 나의 말을 가이드 마누가 잘 따른다.

보폭을 줄이고 심호흡을 해가며 아주 천천히 걸어 올라 체온을 올릴 동안



선두와 후미가 한동안 함께 줄줄이 사탕이 되어 언덕을 오른다.

그런 우리와 어여쁜 설산 랑탕리웅이 건너편 능선에서 우릴 바라본다.



랑탕리웅의 멋진 설경은

다들 한 번쯤 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그 설경의 미모에 몇 걸음 걷다 뒤돌아 보고

몇 걸음 걷다 되돌아보던 서 선생님이 선두권에서 떨어져 나와 후미와 합류한다.

이 나이에 용기를 내어 찾아든 보람이 있어 내생 전 저런 풍광을 다 보게 되었다는 서 선생님...

본인 스스로 대견하여 뿌듯한 마음이 드시나 보다.



어느덧...

선두와 후미의 간격이 서서히 벌어진다.

고사인 쿤드까지 그리 먼 거리가 아니니 체력에 맞게
꾸준히 걸어만 준다면 다들 라우레나비에 돌아와 점심 식사 후

오후엔 하산길에 들을 수 있으니 걱정할 일은 아니다.



갑자기 고도를 높이는 걸음이 참으로 힘겹다.

한발 두발 뛰고 심호흡.

그런 후...

다시 또 한발 두발 뛰고 심호흡.



다들 말을 잊었다.

그저 무심히 걷다 되돌아보며 한숨과 감탄만 내뱉는다.

하아~!



이제 저 언덕만 넘어서면 된다.

이미 선두는 초르텐이 지키고 있는 정상을 앞두고 있지만



후미는 이렇게 아직도 힘겨운 사투를 벌인다.



다만 여유롭던 발걸음의 서 정갑님만 아름다운 풍광에 발목을 잡혀



광활하게 펼쳐진 히말라야의 풍광에 빠저

헤어날 줄 모른 채 저렇게 망연자실 넉을 놓고 설산들을 바라보고 계신다.






라우레비나 롯지에서 보였던 깃발이 나부끼던 정상엔



부처님을 모셨던 불전이 지진으로 무너져 내렸다.



그런데...

햐~!!!!

부처님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 자리를 보전한 채

바람에 흩날리는 타르초에 둘러 쌓여 저 멀리 랑탕을 응시하고 계셨다.



가네쉬 히말을 넘어 아스라이 저 멀리

무스탕 방면을 한없이 바라보던 마누가 후미가 다 올라선 걸 확인 후



다시 또 선두를 이끌고 발걸음을 옮긴다.



얼마 후...

후미팀도 선두의 꽁무니를 따라 걸음을 옮겼는데

새롭게 삼리님이 후미팀에 함류했다.

그간...

회사에서 지사장 직책을 맡아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체중이 10kg 이상 붙었다는 삼리님은

예전과 같지 않은 체력임을 이번 트래킹을 통해 절감하게 되는데

그간 몸을 너무 내팽겨처 둔걸 깊이 반성하여 귀국을 하게 되면 잠시 접어 뒀던

택견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말한다.

몸을 예전처럼 만들지 못하면 다신 이런 트래킹도 하지 않겠단다.

ㅋㅋㅋ

삼리는 이번 트래킹에 저질체력으로 고생이 심했나 보다.

참고로.....

삼리님은 지도자 자격증까지 갖춘 택견의 고수다.



서 선생님과 삼리가 나란히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여전히 후미를 고수하는 정여사 님의 뒤를 내가 따른다.



한고비를 넘긴 등로는

능선 사면으로 이어진 평범한 등로다.

그런데...

이 편한 등로마저 언덕을 올라오며 힘이 다 소진되었나?

정여사 님의 발걸음은 여전히 답답할 정도로 더디다.

얼마 후...

너무 바짝 붙으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

뒤 떨어져 따라오던 나를 불러 세운 정여사 님이 그런다.

그냥 이렇게 걷다 힘들면 되돌아 내려가던가

고사인 쿤드에서 되돌아오는 산우들과 만나면 내려갈 테니 먼저 가시란다.

이미 함께 걷던 후미의 서 선생님과 삼리도 멀리 달아나 있는 상태....

서로 간 마음의 부담도 덜을 겸 그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대신...

나는 서브 가이드 한 명을 붙여 정여사 님을 전담시켰다.



족쇄가 풀린 산찾사의 걸음이 제 세상을 만났다.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저 멀리 정여사 님은 빨간 점이 되어 따라오고



바로 내 앞엔 선두의 에개해님이 보이던 고갯마루에 내가 서있다.



그 고갯마루의 양편엔

창조의 신 브라마, 유지의 신 비쉬뉴,

그리고 파괴의 신 시바로 대표되는 힌두교의 여러 신들 중

오른쪽엔 시바신, 그리고 마주 보이던 벽면엔 그의 아들 가네샤를 모셔 놓았다.

전설에 의하면 오랫동안 멀리 떠났다 돌아온 시바신을 몰라본 가네샤가 자기 집을

찾아온 시바신을 못 들어가게 막자 시바신은 홧김에 그게 자신의 아들인지도

모르고 가네샤의 머릴 땡강 잘라 버린다.

그러자...

그 사실을 알고 노발대발하는 아내 파르바티를 달래기 위해

시바신은 지나가던 코끼리의 머리를 같다 붙여 주는데 그게 지금의 가네샤 모습이다.

코끼리 머리를 갖은 가네샤는 행운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 그런가?

나와 걷던 서브 가이드는 가네샤를 만진 손을

자기 입술에 같다 댄 후 아주 공손하게 연신 절을 한다.



우리가 찾아가는 고사인 쿤드 호수는 힌두교들의 성지다.

힌두신화에 의하면 어찌어찌하여 죽음의 독약 깔라꾸타를 입에

머금게 된 시바신이 뜨거운 독을 참지 못해 삼지창으로 히말라야 한 곳을 내리찍는다.

그러자...

첫 번째 호수 시라시와티 쿤드.

두 번째 호수 마이라브 쿤드.

세 번째 호수 고사인 쿤드가 생겨 났는데

시바신은 그중 가장 큰 고사인 쿤드의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시켰다고 한다.

시바신과 가네샤를 모신 고갯마루에 서면

그중 첫 번째 호수 시라시와 티 쿤드가 바로 발아래에 펼쳐진다.

규모는 아주 작다.

얼음이 얼어 그런지 물빛 또한 탁해 보여 그저 그런 웅덩이 같은 느낌이다.




그러나...

시선을 위쪽으로 돌리면 두 번째 호수가 내려 보인다.

바이라브 쿤드인데 제법 규모가 크다.

얼음이 얼지 않은 물빛을 보아 짐작하건대 해빙기를

지난봄에 오면 또 다른 느낌의 아름다운 호수란 생각이 든다.




이젠 고사인 쿤드가 지척이다.

우측에 내려 보이던 두 번째 호수와 나란히 등로가 이어진다.





드디어 도착한 고사인 쿤드....



롯지엔 찾아든 사람이 없어 쓸쓸함마저 감돈다.

그러나 이곳은 힌두교 성지라 8월 축제 시간엔 사람들이 넘쳐 난다고 한다.

힌두교 신자들은 일생동안 고사인 쿤드 순례를 10번이나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일 널찍한 고사인 쿤드를 배경으로

다들 기념증명사진을 박느라 정신이 없다.



호수 아래엔 곰파가 보이고

그 뒤로 길은 계속 이어지는 게 보인다.

저 길을 따라 라우레비나 야크 패스를 넘으면 나갈 곳까지

트래킹 코스가 이어지는데 그곳에서 카투만드는 1시간 거리로 알려져 있다.

여유로운 여행자라면 저 길을 따라 내려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대통령 문재인 님이 랑탕에 들린 장소가 바로 저곳이라 알고 있다.



그렇게 우리가 한가롭게

햇살을 쬐며 휴식을 취할 때 반가운 여인이 찾아든다.

와우~!

정여사 님의 끈기는 알아줘야 한다.

정금숙 님이 드디어 고사인 쿤드에 도착하셨다.

솔직히 너무 힘들어하셔서 도중에 포기를 할 것 같단 예감이 들긴 했었다.

그래도 혹시?

결과는 역시나였다.

물론 본인은 더 하시겠지만 나 또한 얼마나 기쁘던지?



이로써....

고사인 쿤드를 마지막으로 모든 일정의 정점을 찍었다.

이젠 무사해 내려가 귀향만 하면 된다.



올라올 땐 죽을 만큼 힘들던 길이 내리막길은 참 수월하다.



내리막길 내내...

황홀하게 펼쳐진 히말라야 능선이

너무나 아름다워 차마 내딛는 발걸음이 아까워 안타깝다.

머물고 싶다면 마냥 더 머물고 싶은 풍광이다.



그렇게 내려가다 연인처럼 보이던 외국인을 만났다.

그들은 전망 좋은 곳에 벤치까지 갖춰진 초르텐에 도착하자마자

누가 보든 말든 옷들을 죄다 훌훌 벗어 제킨다.

순식간에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긴 채 벗어놓은 옷들을 주위의

바위에 널어놓은 채 배낭에서 새 옷을 꺼내 입은 연인은 벤치에

퍼질러 앉아 히말라야의 능선을 바라보며 멍~ 때리기에 들어갔다.

헐~!

일순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 여인의 나신을 보려고 본 것도 아닌데

순간 죄 진 것처럼 내 얼굴이 뜨끈해진 건 왜?

ㅋㅋㅋ

라우레비나 롯지에 다 내려선 후 그곳을

올려다보니 그들은 망무석처럼 그 자리 그곳에 한 점이 되어 있었다.

참으로 여유로운 저들의 저런 여행이 순간 부러워진다.



라우레비나 롯지에 도착하자

식사가 바로 차려지고 점심 식사를 끝낸 우린 다시

내림길에 들어 어제 긴 휴식을 취한 촐랑 파티 롯지에서 역시 또 긴 휴식에 든다.



촐랑파티에서 신곰파로 향한 등로가 환상이다.

지금껏 걸었던 등로 중 최고로 편안한 길이다.

아름드리 침엽수림이 빼곡히 들어찬 밀림에서 뿜어 저 나온

피톤치드가 그간 강행군에 지친 심신을 맑게 정화시켜 주기엔 차고 넘친다.



길게 이어진 숲길은 제아무리 길어도

싫증을 내는 법 없이 다들 즐겁게 걸어 내렸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오늘의 종착지 신곰파가 코앞이다.



신곰파 사원....

호기심에 들어가 보려니 문이 잠겼다.

비수기라 그런가?

우리가 머물려던 롯지도 영업을 안 한다.

때마침 관리인 하나가 오더니 다른 롯지로 안내한다.



오후 3시를 넘기자마자

도착했으니 참으로 여유로운 시간들이다.

배정된 방에 짐을 풀고 나자 한 명 두 명 모이기 시작한 롯지의 로비....

할 일이 없으니 자연 酒님을 섬기게 된다.

주당들...

그간 얼마나 고팠을까?

이젠 맘 놓고 마실 수 있으니 편안하다.

여행의 막바지...

酒님의 은총을 입게 되자

여행자들의 닫혔던 마음들이 열리며

그간 갖고 있던 오해와 편견들은 물론 맺힌 생각들이 실타래처럼 풀린다.

그렇게 오후 한나절을 보낸 후 맞이한 저녁 식사엔 우리가 주문한 염소 고기가 나왔다.



예전 ABC 트래킹땐 수육으로만 내놓았는데

이번엔 부위별로 다르게 요리한 염소 고기를 내준다.



염소 고기를 처음 맛보는 사람들도

특유의 냄새 없이 부드러운 육질에 맛까지 뛰어나 다들 흡족해한다.



양도 아주 푸짐했다.

다들 실컷 드신 후 酒님까지 가세한 뒤풀이가 흥겹게 끝났다.

그런데...

마누에게 미리 넌지시 알려 주기까지 했는데

센스가 없는 건지?

오늘 지나고 나면 요리사팀이나 포터팀과 이별이다.

비록 그들은 돈벌이지만 우린 그들의 힘을 빌려 쉽게 트래킹을 끝낼 수 있었다.

어디든 마지막날에 그래서 함께 어울린 쫑파티를 마련한다.

당연 나는 오늘도 그런 자리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가이드 마누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나 보다.

얼마간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 준비한 팁이 그래서 내 주머니에 남게 되었다.

으29~!!!


그날밤...

마누는 나에게 그들은 따로 먹고 마시라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니 부담 갖지 마시란 말을 했었다.

함께 어울리면 더 좋았을 텐데 그 점이 많이 아쉬운 밤이다.

그런데...

한밤중에 그들은 한잔 하다 흥에 겨워 그랬나

요리사와 포터들이 마당에 나와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젊은애들이라 그런지 참말로 이쁘게 잘도 논다.

뜰에 나와 수없이 쏟아지던 별들을 바라보던 나도 순간 그들과 함께 어우러졌다.


어느 사이...

룸메이트 황초님이 뒤늦게 뛰어들더니

ㅋㅋㅋ

아주 제대로 즐긴다.

한없이 빨려 들 것만 같던 그들의 순박한 눈동자가

네팔의 히말라야의 산기슭으로 쏟아 내리던 보석 같던 별빛과 닮았다
그날밤의 기억이 아직도 선연하다.

그간의 힘든 여정을 동료들과 스스로 달래며

한밤중 흥겨워하던 그들의 몸짓이 난 왠지 안쓰럽게 느껴짐에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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