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 백>
2024년 어쨌든 네이버 블로그에 영화 관련해서 뭔가 썼던 글 백업입니다.
시간이 많으신 분들만 읽어 주세요.
2024. 09. 24(화) / <룩 백>
3회차를 찍었다. 사실 3주 차 특전인 스토리보드 북을 받고 싶어서 예매한 거였는데 뭔가 날짜를 잘못 착각했는지 스토리보드 북 대신 책갈피를 받음^^;; 머쓲... 그래도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n차 관람을 찍으니 감회가 새롭다. 음… 중학생 때 <메이즈 러너: 데스 큐어>를 열심히 본 이후로 처음이니까. (당시 뉴트를 정말로 좋아했었다. 본체인 톰생도.) 정말로 Gamhey가 새롭다. 이번에는 1, 2회차와 다르게 리클라이너 관에서 봤다. 집 근처에 리클라이너 영화관이 있다니 완전 럭키비키자나~ 근데 너무 편안한 나머지... 영화 초반에 좀 졸음^^;;;; 안 그래도 1시간짜리 영화라 1분 1초가 소중한데 내가 미쳤지!!!
아무튼 말을 더 얹어보도록 하자. 후지노의 4컷 만화 중 <책략가 미카>가 최애였는데 쿄모토와의 비교 장면으로 휙 지나가 버려서 아쉬움. 아니 근데 만화 중 끝판왕 최고 난이도인 “4컷 만화”를 초딩 때 정기적으로, 그것도 몇 년간 연재한 후지노 당신은 도대체…. 그렇게 만력을 다지니까 중학생 때 천재 콤비 소리 듣고 성공하는 거겠지. ㄷㄷ
<책략가 미카>를 캡처하러 간 김에 원작을 다시 읽어 보았다. 후지타츠는 어떤 연유로 이런 만화를 그리게 된 건지 궁금하다. 미안하지만 이 작가에게서 이런 따뜻한 만화가 나올 줄을 몰라서….^^ 난 그가 골방에서 야마 있고 정신 나간 만화만 그려대는 기인인 줄로만 알았다. 미않하다!!! 아무튼 언젠가 시간이 된다면… <<파이어 펀치>>부터 읽어가며 후지타츠를 알아가 보겠다.
<해변의 아트랑제>도 그렇고, 만화를 애니화하는 작업은 꽤 흥미롭다. 흑백에 컬러를, 정적에 음악을, 인물에게 목소리를.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정지된 화면”을 “움직이는 장면”으로 탈바꿈시킨다. 그림과 활자의 조각들로 기운 보자기는 어느새 형형색색의 장식들로 메꿔져 보다 풍성하고 입체적인 자태로 변신한다. (물론, 이렇다고 해서 애니메이션이 만화보다 우월한 것은 아니다. 청실홍실로 자수가 놓인 실크 이불보다 그냥 아묻따 드렁슨드렁슨 쿨쿨띠할 수 있는 애착 메이플 스토리 담요가 더 좋을 수 있는 것처럼. 그냥 취향 차이일 뿐.) 아무튼 만화-애니메이션을 비교해 가며 감상할 수 있다니, 참 행운이다. 두 분야 모두 시작은 단 한 장의 그림이었을 텐데. 각자 이리저리 편집하고 연출하고 우당탕탕 요리해 댄 덕에 재미있는 두 매체가 탄생했다. 오타쿠인 나는 즐겁다.
그리고 또, <룩 백> 3회차에 와서야 깨달은 것 하나. “작가”란 존재를 그 무엇보다 잘 설명할 수 있는 건 작가의 “뒷모습”이 아닐까. 만화를 그리는 뒷모습은 참 비루하게 보인다. 푹 숙인 고개와 축 처진 어깨에 활기라곤 없다. 고독하고, 시시하고, 지루해. (대체 누가 창작을 위대한 행위라고 했는지?) 심지어 뒷모습에서는 종이에 무엇이 그려지는지 책상에 앉은 사람 외에는 알 턱이 없지. 아이디어로 번뜩이는 눈빛도, 목적을 갖고 거침없이 그리는 손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검은 뒤통수와 묵묵히 사각거리는 소리뿐. 이토록 참 수수한 광경에 사람들은 흥미가 없다. 흥미가 있는 건 화려한 결과물뿐이다. 당연하다. 슈퍼볼 하프타임 쇼의 리허설과 본무대 중 하나만 볼 수 있다면, 누가 리허설을 보겠어?
하지만 이 뒷모습에 공명하는 별종들도 있으니… 이들이 바로 작가들이다. 작가의 인생 이벤트 중에는 반드시 운명적인 만남이 존재한다. 작가를 꿈꾸게 만들었던, 좋아하는 작품과의 만남. 어떤 이는 이 만남을 '운석과 충돌'하거나 '5톤짜리 트럭에 치이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썩 과장된 비유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작품을 보았을 때, “즐거운 감상 시간이었어.” 하고 마음에 담아두는 데 그치지 않고, ”나도 이 사람처럼 잘 그리고 싶어!" 라며 냅다 다이빙하는 일은 잘 없기 때문이다. 미친 짓이다. (음, 적고 보니 운석 충돌과 교통사고보다는 물귀신에게 홀렸다는 말이 더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들은 “나도 이 사람처럼 잘 그리고 싶어!”라며 패기롭게 매다 꽂았으나, 곧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창작이 생각보다 노잼이라는 것. 다이빙한 곳은 별가루가 반짝이는 은하수가 아닌 흙탕물이었다는 것. 이때, 그제야 비루한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걸 깨닫고 흙탕물을 벗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득바득 물장구쳐 살아남는 사람이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뒷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자신이 꿈을 꾸게 했던 동경하는 작가의 초라한 모습이. 아이디어로 번뜩이는 눈빛도, 목적을 갖고 거침없이 그리는 손도 보이지 않지만 그 모습을 이정표로 삼아 계속 그린다. 그리고 또 그리다 문득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나의 뒤에도 수많은 이들이 생겨났다.
신, 악마, 외계인. 기타 등등. 하여튼 간에 인외적인 존재가 다가와 인간 세계의 작가가 대체 무엇이냐 묻는다면… <룩 백>을 보여주면 되겠다. 음, 좋은 감상 시간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