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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Jan 05. 2017

거실 창업

'남의 집 프로젝트'를 시작하다.

차고지에서 시작한 창업 신화는 이제 새롭지도 않다. 가정집을 개조해서 음식점, 카페로 운영하기도 한다. 심지어 자기 집에 남을 들여 재우고 돈을 벌기도 한다. 


그리고 나랑 은재형은 2년 넘게 쉐어하우스로 같이 살며 서로의 속옷을 한눈에 알아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든 '집은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거주를 목적으로 모인 공간'이란 상식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특히 나와 은재형은 쉐어하우스를 하며 더더욱 집이라는 공간에 대해 남들과 다른 감각을 체득해 왔다. 


그랬기 때문일까? 우리 집을 한시적으로 카페나 펍등 뭔가 재밌는 용도로 활용해서 의미있는 수입을 올려보겠다는 농이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사업성 검토나 해보자는 심산으로 우리 공간의 상품성을 이렇게 따져 봤다.




1. 연희동에 있다.

일단 연희동, 이 자체만으로 먹어준다. 핫플레이스 아닌가? 

연희동은 흡사 일본의 한적한 시골을 떠올리게 한다.


2. 거실 뷰가 기깔난다.

우리 집 거실은 연희동에 있는 그 어떤 가게도 가질 수 없는 최고의 뷰를 지녔다. 큰 차장으로 내려다 보는 연희동 저택의 가든뷰. 이거 하나면 그 지겨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소설도 술술술 다읽을 수 있겠다 싶다. 물론 창밖의 가든은 옆집 소유다. 옆집의 정원을 우리의 관상용으로 쓰고 있다. 공유경제라고나?

남의 집 정원이면 어떠하리, 내 눈에 담기면 내 것인 것을.


3. 식음료가 넘쳐난다.

먹고 마시는 것에 애정이 남달라 부엌에 왠만한 F&B 인프라가 전부 갖춰져 있다. 덕분에 우리는 바리스타, 쉐프, 바텐더로 언제든 투입이 가능하다. 심지어 양조시설까지 갖추었다.

카누 광고, 아닙니다.


4. 읽을 거리가 그득하다.

적독을 추구하는 은재형의 장서들과 내가 틈틈이 구매해 온 책들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책 뿐만 아니라 만화책, 잡지 등 다양한 읽을거리가 넘쳐난다. 덕분에 난 가끔 평일에 휴가를 내고 거실에서 하루종일 책만 보기도 한다.

거실 반대편도 이 정도 규모의 책들이 가득하다.


5. 옥상뷰는 화룡점정

이 집을 오게 된 이유 중의 하나가 옥상을 마음대로 쓸 수 있다는 거였다. 나는 주로 야밤에 옥상에 올라 줄넘기를 하고, 은재형은 맥주를 마시거나 영화를 본다. 이곳에서는 무얼 하든 화보다.

옥상에서 내려다 본 연희의 밤


정리해 놓고 보니, 이 정도 상품성을 갖춘 공간이라면 뭐라도 되지 않겠나? 싶은 근자감이 차올랐다. 좋아! 공간은 상품성이 있겠어. 그럼 다음 질문. 이 공간에서 뭘 제공해야 기꺼이 고객의 지갑을 열 수 있을까? 단순히 카페로 운영하자니 테이블 수가 많지 않아 큰 재미는 못볼 것 같고, 객단가가 높은 걸 제공해야 할텐데 뭐가 있을까? 그렇게 혼자 거실에서 끄적끄적 생각을 정리하고 있으니, 귀가한 은재형이 합류했다. 


"해피 뉴이어~ 혼자 뭘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노?"


아. 오늘이 2017년 첫날였지~


"어제 얘기한 거요. 우리 집을 어떻게든 활용해서 돈 버는 거. 그거 고민 중에요. 어떻게 하든 그림은 나올 거 같으니 뭐라도 해봤음 싶어서 뭘 할까 고민 중에요. 해보고 안되도 손해보는 것 없으니~"


"그래? 그럼 진짜 뭐라도 해볼까?"


"네~ 일단 집 위치가 구석이라 유동인구가 없어서 100% 초대제로 운영할 수 있는 그런 아이템이여야 할 것 같아요. 효율적으로 운영하려면 팀별로 스케줄링해서 시간제로 돌리고. 객단가를 좀 높이려면 정액제 개념으로 해서 1시간에 음료, 식사 등등을 무제한 제공 뭐 그런 식으로 상품 구성을 하구요."


"그럼 우리 상담같은 거 해볼까? 왜 내가 전에 얘기했던 거 있잖아~ 취준생들 대상으로 고민상담하고 자소서 봐주면서 멘토링하는 컨셉."


은재형이 몇달 전 후배의 취업 상담을 해주고 집에 와서 취업 상담 관련된 사업을 차릴까 하는 말을 던진 적이 있었다. 


"너랑 나랑 다니는 회사도 번듯하겠다. 취업 맨토링으로 어필이 잘 될 것 같은데? 네 말대로 객단가 높이려면 밀착 마크해야지! 둘다 연차도 좀 되니 사회 초년생 대상으로 하는 멘토링도 먹힐 것 같고."


사실 처음엔 나나 은재형 자체의 인력 리소스를 쓰기 보다는 우리를 둘러싼 자산들을 활용한 상품을 돌려서 수익구조를 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근데 형 말을 듣고 보니 지금처럼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부가가치 높은 상품(?)을 내놓으려면 형이나 나 스스로를 상품화하는 게 제일 효율적이였다. 무엇보다 그 외의 대안이 뾰족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해보고 판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좋아요!! 그럼 먼저 멘토링으로 시작하고, 운영하면서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매달 바꿔서 하면 되겠네요! 강연회를 열어도 되고, 독서 토론을 한다거나."


"굿. 그럼 매달 다른 컨셉으로 이 집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구체화 해볼까?"


라며 은재형이 펜을 들고 우리의 생각타레를 글로 풀기 시작했다.

이 종이 한장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될까?


둘이 신나게 상상의 나래에 빠져 마구마구 아이디어를 주고 받는 사이, 우리의 팀명은 '연희동 브라더스'로 정해졌다. 이어 은재형이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 프로젝트 이름은 뭘로 하지?"


가히 프로젝트 역사에 남을 순간였다. 우리 집이라는 공간을 매달 다른 컨셉으로 제공하는 거에 초점을 맞추고 싶다고 얘기하니 은재형이 아이디어를 뽑기 위해 또 펜을 들었다.


"공간인데 남의 집인 거고 거기에 사람을 불러서...어? 남의 집? '남의 집 프로젝트' 어때?"


느낌이 왔다.


"좋아요! 남의 집으로 부르는 거니까. 게다가 여긴 남자들만 사는 집이니 정말로 남의 집이죠!"


은재형이 씨익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2017년 1월 1일에서 2일로 넘어가는 새벽, 이렇게 두 남자는 거실에서 창업을 결심했다.

남의 집 프로젝트 by 연희동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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