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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진 Jul 24. 2020

텔레비전과 건설업

안방극장의 변화

텔레비전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으로까지 칭송을 받던 그 기기가 천덕꾸러기 대접을 받고 있다. 500만여에 이르는 나 홀로 가구에선 텔레비전 없는 것이 상식처럼 돼 버렸다. 어린이들이 텔레비전을 따라 동요와 춤을 배우던 때는 아마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두 자릿수를 기록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전설이 될 정도로 그 힘이 초라해져 버렸다. 그나마 거실에 있던 텔레비전은 켜진 시간보다 꺼져 있는 때가 더 많아졌다. 


한국에서 아파트에 거실이 꾸려지고, 그 거실의 크기가 표준화된 데는 텔레비전의 역할이 컸다. 거실은 텔레비전을 보는 공간이기도 했다. 가족이 모여 다과를 나누며 텔레비전을 같이 보는 만큼의 공간 크기로 거실은 마련됐다. 

텔레비전이 없었더라면 거실이 지금의 모습으로 생기기나 했을까 모르겠다. 식탁의 위치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는 방편으로 꾸려졌다. 텔레비전 화면이 커진 것과 거실 규모가 늘어난 것도 상관관계가 있다. 그처럼 텔레비전은 우리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었고, 그에 맞춰 살림의 꼴도 갖춰 갔다.   



그런 텔레비전의 운명이 바뀌고 있으니 그에 따라 거실의 배치에 변화가 생길 것이고, 이어 식구들의 사용 공간에도 변화가 생길 것은 뻔하다. 텔레비전 역할은 각자의 손에 든 휴대폰이나 디지털 기기가 대신한다. 같이 보던 텔레비전에서 혼자 사용하는 기기로 넘어갔다. 


홀로 매체를 사용하는 이들은 자신의 방이 어떻게 구성되길 원할까. 침대에 배를 깔고 홀로 매체를 즐길까. 아니면 거실의 축소판을 방안에 만들고 편한 자세로 그 기기와의 만남을 만끽할까. 모르긴 해도 거실은 텔레비전의 힘이 수그러들면서 거실도 쪼그라들 운명이 아닐까 싶다.  


텔레비전의 위력 약화는 집 바깥으로도 이어진다. 길을 걸으면서 텔레비전을 대체한 기기들에 탐닉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고개를 숙이고 기기를 바라보는 이들이 많으니 이제 각종 위험 및 주의 신호를 도로 바닥에 깔아 두는 곳이 늘고 있다. 


눈앞의 각종 신호를 보는 대신 바닥의 신호로 주변 교통 사정을 감지하도록 하는 셈이다. 그런 보행이 위험하다며 계도도 필요하지만 위험을 조금이라도 더 줄이기 위해 길바닥 신호 만들어 두는 일이 불가피한 모양이다. 신호등을 밟고 다닐 시기가 곧 올지도 모를 일이다.



카페나 식당의 모습도 바뀌고 있다. 손님들이 함께 보던 텔레비전 모니터는 자취를 감추고 있다. 대신 각 테이블에 충전 장치를 제공하고, 각자 자신의 모니터를 즐길 수 있게 배려하고 있다. 공동 충전 장치를 한 공동 테이블에 같이 앉아 따로 시청행위를 하니 ‘같이 따로’ 하는 공간의 배치가 주를 이룬다. 


공동 모니터를 중심으로 배열되던 중앙집중식 배치는 기억 속으로 사라진다. 수시로 가구 배치를 손쉽게 할 수 있는 공간을 더 선호하는 시대가 됐다. 이 또한 텔레비전 위력의 약화 덕분이다.


큰 빌딩 옆구리에 붙은 대형 스크린이라고 변화에 무심할 순 없을 것이다. 그보다 훨씬 빠르고 다양한 내용을 선사하는 모니터가 손안에 있고, 모두들 그를 즐기느라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데 대형 스크린이라고 버텨 낼까. 


그 추측이 맞다면 앞으로 큰 건물의 파사이드나 옆구리를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는 절실하다. 광고를 내보내는 대신 시원한 예술적 감각으로 빌딩의 브랜드, 품격을 올려 줄 시설물을 해야 한다는 신선한 아이디어도 나올 법하다.  

그동안 건설업은 텔레비전 덕분에 거실을 갖춘 아파트와 가정집을 찍어냈고, 신호등 중심의 도로 건설을 했으며, 텔레비전 모니터 중심의 상업 공간을 만들어냈다. 대형 스크린 공간이 있는 건물도 건설했다. 텔레비전 시대가 저문다고 하니 이젠 다른 공간, 거리, 건물을 챙겨야 할 모양이다. 


홀로 사는 방 안에서 손 안의 작은 화면으로 정보를 찾고, 혼자 웃음을 즐기고, 주위를 외면하며 고개를 떨궈 ‘보며 걷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 건설이 요청되고 있다. 텔레비전 내용보다 더 재밌어진 스마트 기기를 가장 안온하고 재밌게 즐길 수 있는 공간 건설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텔레비전 위력의 증감 사건은 과거에도 지금도 발상을 전환해 내면 건설업으로선 호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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