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원용진 Jul 24. 2020

시간 혁신과 방송 저널리즘

'시간'을 떼내면 '특종'도 변한다

NYT 혁신 보고서와 ‘관행’

2014년 5월, 세상에 알려진 뉴욕타임스 혁신 보고서. 저널리즘에 한 발이라도 걸치고 있는 이라면 관심을 가질 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국내에서도 낡은 저널리즘 관행에 대한 비판을 넘어 디지털 저널리즘으로의 변환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 그 여운이 가시지 않고 그를 기반으로 한 ‘혁신 저널리즘’, ‘디지털 퍼스트’ 등의 담론이 줄을 잇는다. 한데 한국에서는 조금은 수상한 기운이 인다. 그 여파가 언론사의 덩치에 반비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견딜 만하다고 여기며 관행을 유지하고, 키 작은 언론사들의 생존 전략쯤으로 치부하곤 한다. 아직은 버틸 만하다는 보고서 한 편 내지 않으면서 얼굴 꼿꼿이 보고서 내용에 맞서는 것을 보면 보통 뱃심은 아닌 듯하다.

보고서에는 시간과 관련된 몇몇 부분이 있다. 뉴스가 오래 지속되게 하라, 뉴스를 다양하게 구조화시키는 시간을 아끼지 말라, 서로 인연을 맺지 못했던 부서 간의 만남에 시간을 할애하라 등등이다. 어디에도 속보성을 강조하거나 다른 언론사와의 경쟁에 힘을 기울이라는 부탁은 없다. 


6개월에 걸쳐 내부 228명, 외부 126명을 인터뷰해 어떻게 혁신할지 물은 결과 더 많은 특종이나 경쟁에서 이길 단독 기사를 내라는 주문은 단 한 줄도 없었다. 오히려 그런 관행을 줄이고 새로운 버릇을 챙기라며 요청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관행이 뉴스 생산자 중심이었음을 반성하고, 수용자 중심의 관행을 만들자며 방향 전환을 청한다.


저널리스트들은 자신들이 만든 관행을 원칙이나 철칙으로 여기곤 한다. 전보 전송비를 아끼기 위해 만든 경비절감형 육하원칙에도 ‘원칙’이란 이름을 붙였다. 편집의 용이성을 위한 기사 적기도 철칙같이 받아들이며 잘 버리려 하지 않는다. 


작업의 편의를 도모키 위해 만들어진 관행을 도저히 버릴 수 없는 진리인 양 떠받들곤 한다. 지면의 제한도 받지 않고, 편집 방식이 한없이 다양해진 지금은 육하원칙도, 역피라미드형 기사 적기도 전설일 뿐이다. 특종이나 단독 또한 마찬가지다. 


뉴스 생산자들만이 뉴스 담론을 독점하던 때의 무용담에 지나지 않는다. 뉴스 앞에 붙는 ‘특종’이나 ‘단독’은 수용자들의 공격용 단어인 ‘기레기’에 버금가는 부끄러운 낱말일 뿐이다. 그런데도 집착은 여전하다.

‘시간’은 더 이상 방송 편이 아니다

저널리즘 관행은 저널리스트 개개인에 속하는 것이긴 하지만, 그 근원은 조직일 수밖에 없다. 관행은 조직이 만든 문화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조직의 혁신이 관행을 바꾸고 새로운 관행을 창출해낸다. 혁신 보고서가 조직을 혁신할 것을 요청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저널리스트의 단독이나 특종에 훈장을 주는 조직문화를 바꾸는 일이 곧 혁신이다. 단독이나 특종을 수행평가 기준으로 섬김은 곧 연고주의, 관언유착을 일상화한 결과라 반성하는 일이 곧 혁신이다. 수용자 누구도 전설 같은 무용담에 관심 없음을 빨리 눈치채는 일도 곧 혁신이다. 시간을 두고 곱씹어서 뉴스를 읽고 길게 생각할 ‘느린’ 뉴스를 만드는 일이 진짜 혁신이다.

방송은 저널리즘에서 시간의 빠름으로 그 존재를 과시해왔다. 8시, 9시, 정각 시보가 항상 방송 뉴스와 함께했다. 똑딱거리는 초침은 방송 저널리스트뿐만 아니라 수용자에게도 긴장감을 주며 관심을 끌어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시간은 방송의 편이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제한된 시간만큼만 보도하는 일은 시간을 거스르는 일이 되고 있다. 방송에 시간은 오히려 족쇄가 되고 있다. 방송 조직, 방송 문화, 방송 조직 문화를 혁신하는 가장 큰 과제가 ‘시간에서 벗어나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정해진 시간 외에도 방송 뉴스가 굴러다니고, 이런저런 시간 길이로 방송 뉴스가 제작되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방송사였다면 보고서의 말미에 ‘시간을 해체하자’ 쯤의 경구를 싣지 않았을까.

여러 플랫폼에 오래 남는 기사가 ‘특종’

시간을 해체하게 되면 ‘특종’과 ‘단독’의 의미는 자연스레 바뀐다. ‘특종’과 ‘단독’이 시간 사건이 아니라 고민과 창의의 깊이 사건으로 전환된다. 더 길게 시간을 들이며 이런저런 길이로 깊숙하게 정리해내는 일이 ‘특종’이 되고 ‘단독’이 된다. 


저널리즘 비즈니스로 보아서도 그런 ‘특종’과 ‘단독’이 오히려 더 가치를 가진다. 여러 플랫폼이 포진하고 있는 디지털 저널리즘 시대에선 더 긴 시간으로 여행하는 뉴스가 경제적으로도 더 효자 역할을 한다. 디지털 세상이 아니고서는 등장하지 않았을 ‘롱테일 법칙(Long Tail Theory)’이 그를 입증해 줄 것이다.

아직은 등장하진 않았지만, 미래에 나올 방송 저널리즘 혁신 보고서의 결론을 미리 적어둬 보자. ‘뉴스의 생명을 더 길게 하라, 그러기 위해선 더 시간을 들이고, 그리고 그 느림을 조직의 중요 가치로 섬겨라, 그게 곧 방송 저널리즘 경제에도 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텔레비전과 건설업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