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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용진 Jan 21. 2021

수원 화성 안 숨은 밥 집

2021년 올해로 수원 시민이 된 지 15년이 됩니다. 그동안 이웃도 많이 생겼고 지역 활동으로 이름도 좀 알렸습니다. 정든 공간도 많이 생겨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 동안 방문하고 싶은 생각이 퍼뜩 드는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닙니다. 사회 운동을 열심히 해온 탓에 여기저기 불만스러운 시 행정도 따져보길 즐겨합니다. 이 정도면 수원 시민이 다 된 거라 봐줄 만하다고 제 나름으로 평가를 내립니다. 


1월 20일 날이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어 마스크 단단히 묶은 채로 수원 화성 한 바퀴 돌기에 나섰습니다. 북수원에 있는 집에서 화성까지는 차로 10분 정도 걸립니다. 화성의 장안문(북문) 곁에 있는 공용 주차장에 주차를 한 뒤 산책을 시작합니다. 장안문 옆구리에서부터 시작하는 산책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장안문 바깥 즉 성 바깥으로 카페나 식당이 많았습니다. 장안문 근처 안 쪽엔 지금은 옮겨 없어진 <성곽 식당> 정도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장안문 근처의 풍경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른바 카페 천국이 되었습니다. 젊은 방문객의 걸음이 하나둘 늘더니 그들을 상대로 하는 서양풍의 카페들이 줄지어 섰습니다. 장안문 근처에 있는 대부분의 골목길에는 카페, 카페형 식당으로 넘칩니다. 성안인 행궁동을 행리단길이라고 부른다는 소문이 실감이 날 정도입니다. 과거 우중충한 동네 모습보다는 화사한 맛이 있어 그리 싫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카페 골목들의 생애를 살펴봐 왔던 입장에선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의 폐해를 곳곳에서 봐오지 않았습니까. 


장안문에서 팔달산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화서문을 만나게 됩니다. 저는 화서문을 만날 때마다 미안하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리는 유난히도 남북을 동서보다 더 챙기는 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남쪽을 가장 잘 챙긴다는 나만의 생각을 가져왔습니다. 수원 화성에도 동서에 대한 차별 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북문인 장안문, 남문인 팔달문에 비하여 서문인 화서문, 동문인 창룡문의 위세는 낮은 편입니다. 왜 그럴까 참 궁금하지요. 어째튼 화서문은 아담한 자태를 갖고 있습니다. 


화서문 근처에도 카페가 많이 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는 다양한 형태의 공방들이 많았습니다. 공방은 다른 곳으로 옮긴 듯한데 공방이 모인 곳을 보지 못했으니 궁금하기만 합니다. 화서문 근처의 카페는 한옥 카페와 서양식 건물 카페가 뒤 섞여 있습니다. 과거 화서문 근처에 있던 선술집들은 다 사라졌습니다. 이젠 수원 화성 안에서는 낡은 존재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한없이 새로워지는 공간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역사적 공간이라며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데 새로움 천지의 공간이 되고 있으니 얼떨떨할 따름입니다. 


화서문에서부터는 등산하는 듯한 가파른 계단을 걸어야 합니다. 팔달산 정상에 있는 서장대까지 한참을 걷습니다. 계단을 다 오르고 서장대를 맞이하면 참으로 기분이 좋습니다. 저는 수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을 서장대로 꼽고 싶습니다. 참 표현하기 어려운데요 정말 멋있습니다. 기품이 있다고 할까요. 산책 나선 이유를 증명하고 남습니다. 


서장대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남문인 팔달문을 만납니다. 성벽이 아직 복원되지 않은 유일한 공간입니다. 팔달문의 규모는 어마어마합니다. 서울의 남대문보다 더 웅장한 자태를 갖고 있습니다. 수원의 남문시장, 지동시장 근처에 있어 제 값을 못하고 있는 듯 보여 안쓰럽습니다만 정말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팔달문에 이르기 전에 있는 행궁동 안에도 카페가 많이 생겼습니다. 과거의 공방들이 카페로 전업을 많이 하였습니다 멀쩡하게 있던 가정집들도 리노베이션을 통해 카페로 전환하고 있습니다. 행궁동 거리는 이제 젠트리피케이션 된 인사동 거리 못지않게 되었습니다. 


팔달문을 지나 지동 시장 안으로 들어서면 끊겼던 성곽이 다시 이어집니다. 그곳은 아직 카페가 들어설 여력이 없는 곳입니다. 전통 시장이 영향력이 더 강한 곳이라 과거의 촌스런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이어지는 성곽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면 창용문을 만납니다. 저는 최근에 1941년작인 <수업료>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 영화가 대부분 수원 화성에서 촬영되었기에 약 80년 전 수원 모습을 볼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무료로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 속 창용문, 그리고 그 주변을 지금의 모습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누립니다. 창용문 근처에도 카페가 들어설 공간은 없습니다. 


다만 창룡문 앞을 막아선 큰 공중화장실에 대한 불만은 큽니다. 화장실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알지만 그것이 창룡문을 막고 서 있어야 하는지에 의문을 표합니다. 아래에 있는 주차장쯤으로 이전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합니다. 창용문 근처에서 바깥은 내다보면 영화동 쪽으로 카페가 많이 생겼다는 느낌을 갖긴 합니다. 성곽 바깥쪽으로 말입니다. 그곳에 전에 비해 동네가 말끔해지긴 했습니다만 서울의 이화동처럼 방문객으로 인해 주민의 불평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창용문을 쭉 따라 걷다 보면 화성 내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건축물인 방화수류정이 나옵니다. 저는 수원화성이 요새가 아니라 예술작품처럼 생각하곤 합니다만 그 첫 번째 이유가 바로 이 방화수류정 때문입니다. 방화수류정 아래에 있는 화홍문도 수문 정자로서는 꽤 이름 있는 건축물입니다. 방화수류정 탓에 묻히긴 합니다만. 방화수류정, 화홍문을 거쳐 조금만 더 걸으면 오늘 산책을 시작한 장안문을 만납니다.  걸음걸이로 만보, 시간으로는 약 1시간 정도 걸리는 산책입니다. 


제가 처음 이사를 왔을 땐 수원 화성 안은 처참할 정도로 스러져가는 구도심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수원시가 많은 노력을 폈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달라진 모습에 젊은 방문객들이 몰려들었고 그래서 걱정스러울 정도의 젠트리피케이션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행리단길이라 불릴 만큼 카페도 늘었고 상업적 공간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말끔해진 모습과 돈 냄새가 나는 모습을 같이 갖추고 있어 저는 그에 대해 늘 양가적 태도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수원 화성이야기를 길게 했습니다만 오늘  산보의 마지막은 수원 행궁동 시립미술관 건너편에 있는 음식점이었습니다. 숨겨진 보물 같은 곳입니다. 화성 칼국수란 상호를 달고 있습니다. 여러 메뉴가 있습니다만 두 개중 하나를 택하면 후회하지 않습니다. <팥 옹심이>나 <콩나물 비빔밥> 중 하나. 저는 방문할 때마다 번갈아 시키기를 즐깁니다. 허름하고 평범해서 얼른 들어가고 싶을 정도는 아닙니다만 맛만큼은 원주민으로서 보장합니다. 아주머니 솜씨가 대단하셔서 김치 맛도 보통이 아닙니다. 사진이나 다른 정보는 포함시키지 않겠습니다. 우연히 방문하신 분들이 저처럼 정보를 남겨 두셨을 터이니 구글링 하시길. 


수원 오시면 행리단길이라는 등이 이름 부르기를 저주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가능하면 카페 보담 공방을 찾아주시고 구경하시기 바랍니다. 군데군데 있는 원주민 가게를 더 챙겨주시기도 요청해봅니다. 화성 안에 있는 맛집 소개하라면 며칠 걸릴 정도로 많은 리스트를 갖고 있습니다만 이곳이 맛집 소개하는 곳이 아니니 차차 고민해서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른 곳에서 수원 오실 때는 가능하면 기차를 이용하세요. 서울역, 용산역, 영등포역에서 기차를 타시면 2-30분 안에 수원역에 도착합니다. 그곳에서 화성까지는 버스로 다섯 정거장 밖에 되지 않습니다. 화성에 도착하시면 위에 적은 네 개의 성문을 랜드마크로 하셔서 한 바퀴 휘휘 돌며 수원을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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