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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랙커피 Dec 19. 2022

3수 끝에 성공한 한라산 등정

어쩌다 보니 산행

“한라산 갈까?”

저녁을 먹다 무심결에 나온 이 한마디에 제주 여행을 급하게 추진했다. 비행기를 예약하고, 숙소를 잡고, 가장 중요한 한라산 탐방 예약까지 한 번에 완벽하게 마쳤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제주공항이었다.


한라산 등반은 이번이 3번째 도전이다.

첫 번째 도전은 지난해 2월이었다.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갑작스레 날씨가 악화돼 진달래대피소에서 더 이상 올라가지 못하고 강제로 하산해야만 했다.

그해 여름휴가를 맞아 다시 도전했지만 이번에는 폭염에 아예 시작 조차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도전하게 된 한라산 산행.


‘제주 폭설’, ‘한라산 입산제한’


시작도 전에 불안감이 커졌다.

겨울 산행이기에 어느 정도 눈은 예상했지만 폭설이라니...

다행히 전날 밤 내리던 눈이 그치고 입산 제한도 풀렸다.


성판악 코스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져 있어 큰 무리 없이 산행을 즐길 수 있다고 안내되어 있기도 하지만 관음사 코스는 힘든 코스로 알려져 있기에 나 같은 등산 초보에게는 선택권이 사실 없다.


8시 45분. 아이젠을 착용하고 성판악 매표소를 출발했다.  

첫걸음을 내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씩 숨이 트이면서 주변의 경치도 하나 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는 자연 그대로의 눈이 순백의 색을 띠고 있었다. 어느 동물의 발자국인지 모를 흔적이 이곳은 자신의 영역이니 침범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끝없이 펼쳐진 설경을 보며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사진으로만 보던 상고대가 나무마다 활짝 펴 있었다.


산을 오를수록 맑아지는 날씨에 백록담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도 커졌다. 그리고 정상에 반드시 오른다는 목표에 쉬지 않고 정상을 향해 쉬지 않고 계속 나아갔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달래밭 대피소에 11시 30분에 도착했지만 저질 체력인 몸을 이끌고 정상에 오르려면 시간이 부족했기에 서둘 수밖에 없었다.  동절기에는 한라산 정상에서 마지막 하산 시간이 1시 30분이기 때문이다.


해발 1800m, 1900m.

정상과 조금씩 가까워지자 구름이 발아래 놓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팔라지는 등산로에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다리 근육이 뭉쳐, 가다 서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드디어 해냈다.”

산행에 나선 지 4시간 40분 만인 1시 20분, 드디어 한라산 정상에 올랐다.

백록담이라고 쓰인 표지석을 보고서야 산행 내내 굳어 있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환한 미소로 산을 내려가던 등산객의 얼굴이 그제야 이해가 됐다.


변덕스러운 날씨에 안개가 자주 낀다고 하는데 다행히 강한 바람이 안개를 옮겨 눈 내린 백록담의 모습도 온전히 볼 수 있었다.

언제 다시 백록담을 볼 수 있을까. 아마 다시 이곳에 오지 않을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시간이 허락하는 동안 더 열심히 구경을 하고, 추억을 남겨야 하지만 살을 찢을 것 같은 강한 바람에 빨리 발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하산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설경을 눈에 담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한라산의 단점은 코스가 길다 보니 산을 내려가는 것도 힘들다는 것이다. 올라온 시간만큼 긴 시간을 내려가야 한다. 그러다 보니 몸이 지치기 마련인데 그때 숲 속에서 낯선 동물이 눈에 들어왔다. 산책을 나온 노루 커플이었다. 오다가며 노루가 놀라지 않게 해 달라는 안내표지판을 봤는데 정말 노루를 만나게 될 줄 몰랐다. 지친 하산길에 만난 작은 선물이었다.



지루한 시간을 모두 보내고 드디어 모습을 드러낸 성판악 매표소 입구. 9시간 10분의 긴 산행이 끝났다.


등산은 언제나 힘들다. 눈까지 내려 더 힘들었던 한라산 등정이었지만 덤으로 눈길을 따라 산책을 나온 노루 커플의 데이트를 엿보는 재미도 누렸기에 만족한다. 그래도 한동안 한라산은 안 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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