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진용진 Jun 06. 2019

여행의 이유

김영하 산문

며칠 전 일본 여행을 갔습니다. 해외 나갈 기회가 많지 않은 저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있습니다. 마치 견문이 넓어지거나 내적 성장을 이루는 뭐 그런 것들입니다. 인천공항을 나가기 전에 서점을 들렸고, 진열대 가장 좋은 위치에 놓인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 책을 발견했습니다.


작가는 책에서 오뒷세우스 이야기를 여러 번 인용합니다. 이는 우연히 우리 아이가 최근에 좋아하는 오디오북(라인프렌즈 미스터리 동화)과 관련이 있는데요. 그 오디오북은 오뒷세우스 및 그리스 신화가 주요 모티브입니다. 아이와 좋은 대화 소재가 될 것 같고 스스로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여, 저는 ‘여행의 이유’를 읽고 나서 천병희 번역가의 오뒷세이아 책을 샀습니다. 예전에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을 읽고 나서 몇 권의 책을 산 것처럼 ‘여행의 이유’는 (독서를 하지 않는) 저에게 독서에 대한 자극을 주었습니다.


‘여행의 이유’는 소설가 그리고 여행자로 살아가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이야기입니다. 김영하 작가 책을 읽어보지 못했지만, 이 책 스타일은 문장도 짧고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아 저처럼 책 읽는 속도가 느리고 텍스트 의미를 잘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매우 친절한 책으로 느껴집니다. 그리고 제가 여행에서 느낀 점, 그리고 말과 글로 표현하기 힘들었지만 “아! 내가 이랬었지.” 이런 순간들을 작가도 글로 표현하여 많이 공감하면서 읽었습니다. 이런 부분은 작가에게 감사한 마음도 듭니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되는 구절이 있어 발췌하여 아래 옮겨봅니다.


우리는 모두 정해진 일정이 무사히 진행되기를 바라며, 안전하게 귀환하기를 원한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렇다. 그러나 우리의 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강력한 바람이 있다. 여행을 통해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고, 자신과 세계에 대한 놀라운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 그런 마법적 순간을 경험하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이런 바람은 그야말로 ‘뜻밖’이어야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그걸 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각성을 대체로 예상치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22쪽.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51쪽.


고통은 수시로 사람들이 사는 장소와 연관되고, 그래서 그들은 여행의 필요성을 느끼는데, 그것은 행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슬픔을 몽땅 흡수한 것처럼 보이는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 위해서다. 64쪽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김명남 옮김, 책세상 2014, 87쪽 재인용)


여행은 그런 우리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로부터 끌어내 현재로 데려다 놓는다. 여행이 끝나면, 우리는 그 경험들 중에서 의미 있는 것들을 생각으로 바꿔 저장한다. 영감을 좇아 여행을 떠난 적은 없지만, 길 위의 날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또다시 어딘가로 떠나라고, 다시 현재를, 오직 현재를 살아가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82쪽.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109쪽.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사회적으로 나에게 부여된 정체성이 때로 감옥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많아지면서, 여행은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를 잠시 잊어버리러 떠나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180쪽.


지금도 나는 비행기가 힘차게 활주로를 박차고 인천공항을 이륙하는 순간마다 삶에 대한 통제력을 회복하는 기분이 든다. 휴대전화 전원은 꺼졌다. 한동안은 누군가가 불쑥 전화를 걸어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모든 승객은 안전벨트를 맨 채 자기 자리에 착석해 있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다. 어지러운 일상으로부터 완벽하게 멀어지는 순간이다. 여행에 대한 강렬한 기대와 흥분이 마음속에서 일렁이기 시작하는 것도 그때쯤이다.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되는 것도 바로 그 순간이다. 203쪽.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 일상으로 돌아올 때가 아니라 여행을 시작할 때 마음이 더 편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나와 같은 부류의 인간일 것이다. 이번 생은 떠돌면서 살 운명이라는 것. 귀환의 원점 같은 것은 없다는 것. 이제는 그걸 받아들이기로 한다. 207쪽.



작가의 이전글 구글 AR 도보 내비게이션을 위한 기술은 무엇일까?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