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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용주 May 14. 2024

포항 해병탈피소(1)

1부. 알몸 올챙이포복


“호르르르르르륵” 까만 어두움 속에 날카로운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기다란 까만 도화지에 면도칼로 그어대면 밑에 있는 하얀 색깔의 도화지가 나타나듯이, 호루라기 소리는 면도칼이 되어 나의 머나먼 까만 의식의 도화지를 그어댄다.

까만 의식의 밑에 깔린 나의 하얀 의식이 나타나면서 나는 오늘 펼쳐질 사태가 무엇일까 하는 불안감이 뇌리에 스친다.

“신병 2중대, 알몸바람, 연병장 사열대 앞, 선착순 집합”

조사를 다 뺀 내용어 만으로 된 명령이 떨어진다.

“먼고? 알몸바람이 먼고?”

“어, 머여? 진해에서 빤쓰바람은 해봤지만 알몸바람은 또 뭐여?”

잠에서 깨어난 장정들의 각 지역 사투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알몸바람은 빤스 벗고 나오란 소리 아니랑가, 시방.”

불이 환하게 켜진 내무반에서는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린다. 훈병들은 잠에서 깨어나 자기들에게 떨어진 명령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엄메, 알몸바람 선착순이라네, 후딱 빤스 벗고 나가야 겄네.”

전라도 사투리의 장정은 입고 있던 내복과 팬티를 벗고 총알같이 연병장 쪽 문을 향해 뛰어나간다. 사태를 파악한 나를 포함한 장정들도 팬티를 벗어던지고 연병장 사열대를 향하여 우르르 뛰어나간다.

긴 복도를 중앙으로 두고 양옆에는 마루 침상이 있으며 그 위에 매트가 일정한 간격을 유지하며 줄지어 놓여 있다. 각 매트 위에는 훈병들이 덮었던 담요가 이리저리 구겨진 채로 놓여있으며, 그 위에는 내복과 팬티들이 널려있다. 복도 중앙에 위치한 커다란 무쇠의 석탄 난로 안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다.


사열대 앞에 장정들은 온 순서대로 한 줄로 늘어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서 있다.

1976년 12월, 이곳은 포항 오천에 위치한 해병대 훈병훈련소이다. 20세 갓 넘은 젊은이들을 무적 해병의 정신으로 무장한 해병으로 탈피시키는 곳이다.  

1976년 10월 초에 해병과 해군의 공동 훈련소였던 진해해군훈련소에 해병 319기‧220명이 입소하였다. 진해에서 전반기 교육 8주를 마친 동기 중 보병으로 명령받은 100명이 이곳 포항 오천 해병대훈련소에 후반기 교육을 받는 중이다.

포항의 12월 새벽 5시, 동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실제 온도보다 매우 춥게 느껴져 실제 온도가 영하 5도이면 체감온도는 영하 8~9도이다.

사열대 뒤에는 똑같은 모양의 기다란 내무반이 4채가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으며, 맨 오른편에는 그 내무반의 1/4 크기인 당직자 실이 있다.

사열대 뒤로 도착순서대로 일직선으로 긴 줄을 이루고 있는 훈병들은 덜덜 떨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사열대 위로 올라온 교관은 아담한 체격과 곱상한 외모의 하사이다. 하지만, 그가 쓰고 있는 각이 선 팔각모의 밑에서 뿜어 나오는 눈빛이 해병대답지 않은 외모를 상쇄한다.  

“앞에서부터 번호”

생긴 모습답지 않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명령한다.

“1”. “2”. “3”, “4”, “5” ………………… “97”, “98 번호 끝!” 훈병들의 번호가 끝났다. 나머지 2명은 동초다.

“21번 이후부터는 여기 사열대를 중심으로 오른편 축구 골대를 먼저 돌고 왼편 골대를 돌아서 여기까지 선착순 실시한다. 선착순 20명. 실시!”

교관의 지시는 어둠을 찌르는 송곳처럼 훈병들의 귀를 찌른다.  

훈병들은 오른쪽 골대를 향하여 뛰기 시작한다. (알몸으로 100여 명의 장정들이 뛰는 모습은 일반인이 보기에는 참 장관일 것이나 실제로 뛰는 장정들은 부끄러움을 느낄 여유가 없다. 입대 전에 가지고 있던 자존심·자존감은 사라지고 다만 살아야겠다는 절박한 생각만이 있을 뿐이다.)

“대기하는 훈병들은 제자리 뛰어! 제자리 뛰면서 군가를 시작한다. 군가는 ‘나가자 해병대’ 군가 시작 하나, 둘, 셋넷”

교관은 훈병들의 발 동상을 막기 위하여 제자리 뛰기를 시킨다.

“우리들은 대한의 바다의 용사, 충무공 순국 정신 가슴에 안고  

태극기 휘날리며 국토 통일에 힘차게 진군하는 단군의 자손.

나가자 서북으로 푸른 바다로 조국 건설 위하여 대한 해병대.

창파를 헤치며 무쌍의 청룡 험산을 달리는 무적의 맹호 ……”

가만히 서 있으라 해도 서 있지 못하고 발을 움직여야 하는 훈병들은 온몸에 닥쳐오는 찬 기운을 이겨내려 있는 힘을 다하여 악을 쓰며 발을 힘차게 구르며 군가를 부른다. 그중 일부는 양손으로 앞의 고추를 부여잡은 채 악을 고래고래 지른다.

집합 선착순 20등에 들지 못한 나는 맨 뒤에서 천천히 달린다.

많아야 3~4회에 끝나는 선착순을 다른 훈병들보다 빨라 1~2번째의 선착순에 20등에 들지 못할 바에 천천히 3~4바퀴 도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전반기 교육에서 터득하였기에 나는 여유롭게 맨 뒤에서 천천히 뛰고 있다.

선착순이 다 끝난 후 교관은 사열대 위에서 맨 왼쪽에 있는 훈병 하나를 지명한다. “너 기준!”

“기준”

지명받은 훈병은 큰소리로 외친다.

“4열 횡대 헤쳐 모여!”

교관의 지시에 의하여 훈병들은 기준을 중심으로 뒤에 3명이 서고 그 옆 오른쪽으로 줄줄이 자리를 잡으니 4열 횡대가 이루어진다.  즉 4열 25오의 대형이 이루어진다.

“체조 대형 벌려!”

훈병들은 교관의 지시에 따라 양팔을 벌려 체조하기에 충분한 공간을 확보한다.

“그대로 취침!”

훈병들은 등과 뒤통수를 땅에 대는 취침 자세를 취한다.

“어 흑흑, 어휴…….”

연병장의 차가운 기운이 등과 허벅지 다리를 통하여 느껴지는 훈병들은 비명을 지른다.

“너희들은 해병대인지 물병대인지 구분이 안 되는 놈들이다. 해병대의 깡이 전혀 없는 한심한 놈들이란 말이다.  이 훈련소는 너희들의 안이하고 어벙한 정신 상태를 개조시켜 진정한 해병으로 탈바꿈시키는 장소이다. 앞으로 4주의 교육을 마치면 너희들은 진정한 해병으로 탈피될 것이다. 알겠나?”

“예”

“목소리 봐라, 알겠나?”

교관의 폐를 찌르는 듯한 앙칼진 소리에 훈병들은 있는 힘을 다하여 “예!”라고 대답한다.

“자, 지금부터 정신 탈피 작업을 시작한다. 우로 소이동!”

“우로 소이동!”

훈병들은 복창하면서 취침 자세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굴리며 이동한다.

20바퀴 정도를 돈다.

“멈춰”

하는 교관의 지시가 온다.

“멈춰”

훈병의 복창이다.

“좌로 소이동!”

교관의 지시이다.

 “좌로 소이동!”

왼쪽으로 30바퀴 정도를 도니 땅의 차가운 기운이 온몸에 스며든다. 그러는 사이 훈병들은 왼쪽 골대에 이르렀다.

“멈춰!”

“멈춰!

교관의 지시에 훈병들은 큰 소리로 복창한다. 이제는 끝내려 하나 보다 하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올챙이 포복 준비!”

교관은 날카로운 칼로 훈병들의 가슴을 찌르듯이 명령한다.

“아이고, 이제는 죽었다.”

훈병들의 입에서는 절규가 나온다.

‘올챙이 포복’은 일명 ‘해병대 포복’이라 하는데 일반 포복 자세를 취하되 양팔을 등 뒤로 잡은 자세에서 포복하는 것이다.

즉 팔을 사용하지 못하고 양어깨와 다리를 이용하여 포복하는 것으로 많은 해병대 기압 중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기압 중의 하나이다.

더구나 훈병들은 팬티도 못 입은 알몸이며, 연병장의 바닥에는 손톱 크기의 모래알들이 깔려 있으며 땅은 모든 생명체를 얼릴 수 있는 찬 기운을 가득 머금고 있다.

‘이러한 곳에서 알몸으로 올챙이 포복이라니 이것은 아예 우리를 갈아 죽이려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쪽에서 저쪽 골대까지 포복 실시한다. 실시!”

교관의 지시에 포복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대로 올챙이 포복을 하면 나의 모든 몸이 결딴이 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직 컴컴하고 사열대 뒤의 가로등만 켜져 있다.

도저히 원칙대로 올챙이 포복을 할 수 없다.

교관은 1명이며 우리는 100명이다.

컴컴한 곳에서 교관이 우리들 전부를 감시할 수 없다.

나를 포함한 다른 훈병들은 교관이 다른 쪽을 감시하는 틈을 보아 등 뒤로 접었던 양팔을 앞으로 내밀고 이를 사용하여 포복한다.

교관이 자기들 쪽으로 오면 양손을 다시 등 뒤로 가져가 올챙이포복을 하는 흉내를 낸다.

교관은 요령을 피우는 훈병에게 다가가 지휘봉으로 어깨, 엉덩이, 등에 휘두른다.

이러는 사이 여기저기서 “엉엉…”우는  훈병이 생긴다.

나도 울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다 성장한 장정들이 감정적인 슬픔이 아닌 육체적인 고통으로 운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젊은 장정들 100명이 알몸으로 이러한 기합을 받는 것은 아주 웃기는 광경이겠지만 직접 고통을 당하는 우리는 그러한 수치스러움을 느낄 수 있는 정신적인 여유가 없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고통을 끝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우리의 고통 여탈권을 쥐고 있는 교관의 전능하신 처분만 바랄 뿐이다.

골대 사이를 올챙이 포복으로 3~4번 왕복했으니 3~400m를 올챙이 포복을 한 것이다. 다시 사열대 위에 올라선 교관은 큰소리로 외친다.

“모두 동작 그만!”

“동작 그만”

복창과 함께 훈병들의 움직임은 멈춘다.

“일어서. 너 기준”

맨 왼쪽 앞쪽에 있는 훈병을 지적한다.

“기준!”

지적된 훈병은 큰소리로 외친다.

“4열 횡대 좁은 간격 헤쳐 모여!

“헤쳐 모여!”

훈병들은 4줄을 가로로 기준으로 옆으로 길게 오와 열을 좁게 맞춰서 집합한다.

“오늘은 처음이라 가벼운 정신 탈피작업을 하였다. 정신 탈피작업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교관의 말은 독사가 혀로 우리의 심장을 핥는 것처럼 들린다.

“연병장을 3바퀴 구보한 후 맨 앞줄부터 내무반으로 입실한다. 입실 후 옆 전우와 한 조가 되어 서로의 몸을 마사지하여 준다. 요령은 처음에 등과 등을 맞대고 서로 마찰을 한 후 서로 번갈아 가며 손으로 등을 비벼준다. 앞부분은 자기의 손으로 충분히 비벼준 후 옷을 입도록 한다. 알겠나?”

“예”

“목소리 봐라, 알겠나?”

“예~~”

훈병들은 드디어 고통의 순간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교관의 비위를 건드리면 또다시 고통의 시간이 시작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앞서 큰 소리로 외친다.

“실시”

“실시”

혹한 속에서 구보하는 해병

훈병들은 교관의 ‘실시’ 지시를 복창함과 동시에 연병장을 3바퀴 구보한다.

구보를 끝낸 후 내무반으로 우르르 달려간 훈병 중 일찍 내무반에 들어온 훈병들은 복도 가운데에 있는 난로에 다가가 언 몸을 녹이려 한다.

이때 교관이 들어온다.

“난로 옆에 있는 놈들 그 자리에 꼬라박아!”

교관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자기 자리로 뛰어가는 훈병들의 모습이 아이들이 장난으로 던진 돌에 화들짝 놀라 연못으로 뛰어드는 개구리와 같다.

“차가운 너희들 몸이 갑자기 뜨거운 열을 받으면 동상 걸리니 절대 난로 가까이 가서는 안 된다.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지금 시간 6시다. 10분 안에 개인 세면 끝내고 20분 동안 주변 청소 및 화장실 청소를 마친 후 과업 출장 자세를 갖춘 후 6시 50분에 식당 앞 식사 준비 대기한다. 실시!”

“실시!”

우리의 첫 번째 알몸바람은 5시에 시작하여 약 1시간 하였다. 나는 나의 몸의 앞쪽을 살펴보니 어깨와 무릎이 약간 찰과상이 나고 나머지는 이상 없었다. 나의 알몸바람 요령이 나를 구하였다고 안도의 숨을 쉬면서 다른 전우들 몸을 보니 그들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 옆의 전우에게 “야 너 올챙이 포복 원칙대로 했니?” 하고 물었다. 그 친구는 대답하였다, “야 니그미 x펄, 그대로 하면 내 고추부터 앞부분이 다 결딴나는데 그대로 하겠냐?”  - 2부로 연결됨 -


※ 상기 사진 출처: 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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