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상실
다양한 동물들이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하여 외골격이나 피부를 교체하거나 허물을 벗는다. 이러한 현상을 탈피라 한다. 사람이 탈피한다는 것은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워짐을 말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낡은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생각으로 탈피해야만 하는 여러 경우가 있다. 가족의 일원으로서 적응하기 위한 사고를 개발하여야 하며, 학교 적응에 필요한 사고, 군대에 적응하기 위한 사고, 직장에 알맞은 사고, 자기의 사업에 적합한 사고, 원만한 부부생활을 위한 사고, 부모다운 사고, 할아버지/할머니의 사고, 임종 시에는 이 세상과 하직할 마음의 준비 등 원활한 사회생활을 영위하기 위하여 단계별 사고 탈피가 불가피하다.
탈피를 실패한 경우를 탈피부전(脫皮不戰)이라 말한다. 탈피동물의 경우 탈피를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목숨이 크게 위험하며, 죽지 않더라도 심대한 기형을 초래하여 정상적으로 살아가지 못하게 된다. 사람도 탈피부전을 겪을 경우 인생에 심대한 부작용을 초래하여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군대복무를 경험한 사람과 현역 군인이 공통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하나의 사실이 있다. 군 생활 중에 힘든 것은 군사훈련이지만 이보다 더 힘든 것은 군대가 요구하는 상명하복의 원칙에 장애가 되는 자존감을 버리거나 잠시 마음속 깊이 감추는 탈피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군 훈련소에 입소함과 동시에 20여 년 동안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와 친구들 사이에서 형성된 자존심, 자존감은 국가를 수호해야 하는 군인에게는 ‘하나의 사치스러운 개인적인 감정이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존감을 나에게서 박탈하고 상명하복의 충성스러운 군인으로 탄생시키기 위한 첫 관문은 해병훈련소이었다. 훈련소의 탈피 과정에서 실패하면 탈피부전을 겪은 동물과 같이 여러 형태로 사회에서 매장당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탈영병으로 평생 쫓기는 신세가 되거나, 부상으로 인한 의가사 제대, 극단적인 선택 등.
훈련소는 젊은이의 자존감을 상실시키는 대신에 국가를 수호하는 중차대((重且大)한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자긍심과 전우애 고취에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노력은 상당한 효과를 보아 훈련 수료 후에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전우는 고뇌의 세월에 대한 보상으로서 조국수호(祖國守護) 자긍심과 전우애를 품은 해병으로 탈바꿈하여 백령도, 연평도, 김포, 강화도에 소재한 최전방부대로 배치되었다.
요즈음 채해병의 사건으로 인하여 전국이 떠들썩하다. 작년 7월 경북예천에서 21살의 젊은 군인이 수해지역의 실종자 수색작업을 하다가 실종되어 사망한 가슴 아픈 사건이다. 사건은 한 줄로 간단히 설명되지만, 문제는 그 이후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이다.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위험을 감지하면서도 명령에 복종하여 거센 물결로 뛰어든 채해병!
탈피과정을 거쳐 자존감은 상실하였지만 국가를 구한다는 자긍심과 전우를 사랑하는 전우애로 무장된 채해병은 군대의 위계질서를 지키는 상명하복에 충실한 해병이었음이 틀림없다.
며칠 전에는 채해병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검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채해병 사망 후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태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많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주장을 내세우면서 채해병의 억울한 죽음의 원인을 규명하라는 요구를 하는 반면, 한쪽은 별거 아닌 사건을 정쟁에 이용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혼란의 구덩이에 나까지 돌을 던져 파장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
대신, 채해병을 진정한 해병으로 탈바꿈시킨 해병훈련소에서 48년 전에 겪었던 나의 탈피과정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면서 우리 군인들이 겪고 겪었던 고뇌를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본 글에 후속하여 글을 게재하고자 한다. (다음 글은 '포항 해병탈피소(1)'로 이어짐)
※이 글을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 중 하나만은 해야겠다.
“애벌레가 매미가 되는 고통스러운 탈피 과정을 거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평생 자존감에 충만한 생활을 영위하면서 사회의 단물을 빨아온 정치인 중 군대에 찾아가 빨간 명찰을 단 군복을 입고서 많은 고통을 이겨내며 탈피한 진정한 군인들 앞에서 자기들의 정치사욕을 위해 코스프레하는 사람들은 각성하세요! 당신들의 치졸한 행동은 고통스러운 탈피를 경험한 국민과 군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임을 자각하여 그러한 행동은 자제하기를 부탁합니다.”
☛상기 사진자료 출처: Na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