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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의 최악 음식과 최고 음식
by
최용주
Oct 17. 2021
30여 년 전, 결혼 후 첫 번째 추석을 보내러 서대문 로터리에 있는 본가로 아내와 함께 갔다.
별로 길지 않은 골목길 끝에 자리 잡은 본가는 예전에 하숙집으로 사용되었던 방이 많은 집이다.
평수는 30평 남짓하지만, 기와집으로 된 본채의 방 3개와 본채 바로 앞에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 넉넉할 정도의 공간을 남긴 후 벽돌로 2층을 지어 한 층당 5개씩 방 10개, 총 13개의 방을
가진 집이었다.
부모님은 미혼이었던 두 여동생과 함께 본채에서 생활하시면서, 벽돌집 10개의 방에서 나오는
월세로 생활을 하셨다.
형님들과 안방과 사랑방 사이에 있는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간단한 술상을 앞에 놓고 회포를 풀고 있으며 형수님과 아내는 서로 연결되어있는 부엌과 안방에서 어머니의 지휘하에 열심히 음식을 만들고 있다.
이때 아버지는 부엌과 연결되어있는
다용도실에 들어가셔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작업하고 계신다.
한참 후에
다용도실에서 나오신 아버지는 오른손에는 칼을 왼손으론 커다란 쟁반에 고기인 듯이 보이는 것을 담고 나오신다.
우리들 앞에 오신 아버지는 “아가야 도마 좀 가져오너라.” 하신다.
아내가 가져온 도마 위에 고기를 올려놓은 후에 하얀 천으로 그 고기 위에 남아 있는 물기를 닦아낸 후 숙달된 솜씨로 일정한 크기로 자르신다.
그 옆에 있는 나와 형님들은 입맛을 다시며 아버지 하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고기를 다 자르신 후, 아버지는 고기 옆에 고춧가루를 섞은 소금과 초장을 가져다가 놓으면서, “야, 우리 한잔하자!” 하신다.
우리는 아버지 옆에 쪼르르 몰려가 아버지가 썰어놓으신 고기를 소금이나 초장에 찍어서 폭풍 흡입하면서 막걸리를 마신다.
아버지의 지시로 삶은 돼지고기와 신 김치를 가져온 아내에게 아버지는 “아가야 이거 하나 먹어 보아라.”하면서 고기 중에 붉은빛과
연한빛이 적절히 섞여서 맛있어 보이는 것을 소금에 살짝 찍어 아내에게 주신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서 건강한 아내는 호기심에 차 있던 차라 “아버님, 그게
뭐예요? 맛있게 드시니 저도 먹어보
고 싶네요.” 하면서 아버지가 주시는 것을 입안에
얼른 집어 넣는다.
술좌석의 사람들은 긴장된 눈초리로 아내를 바라본다.
입안에 음식을 집어넣고 두세
번 씹은 후 아내는 갑자기 우는 표정이 되면서 입으로 두 손이 간다.
“웩”하면서 부엌 쪽으로 달려 나간다.
우리는 깔깔 웃으면서 “아니 이렇게 만난 것을 왜 그래?”하면서 신김치에 삶은 돼지고기와 그것을 싸서 맛있게 먹는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오면서, “아니, 아무것도 모르는 애기한테 그런 것을 주면 돼요?” 하면서 아버지에게 비난의 눈초리를 주신다.
냉수로 입안을 헹군 후 술자리에 돌아온 아내는 “어휴, 아버님 그런 것을 어떻게 먹어요? 입안이 다 헐은 것 같아요.” 하면서 원망
의 목소리를 낸다.
“이 세상에서 제일 맛난 것을 가지고 그렇게 폄하하지 마세용.”농담하면서 웃는 나를
흘겨보는 아내가 귀엽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아내는 “아니 그렇게 야만적인 음식을 어떻게 그렇게 맛있게 먹
나? 정말 야만스럽네. 정말 이제껏 먹어본 음식 중에서 최악이야.” 하면서 분개한다.
이렇게 아내의 홍어사랑은 시작되었다.
3년 후 큰 여동생은 시집간 후 첫 번째 추석을 맞이하여 본가로 매제와 함께 왔다.
평소와 같이 여자들은 부엌과 안방에서 음식 장만을 하고 있으며 남자들은 TV 시청을 하면서 일부는 한쪽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
술을 좋아하는 나와 매제는 소주와 부침개를 사이에 두고 마시고 있다.
오늘도 아버지께서는 홍어를 술자리에 내오시면서 매제에게, “이 세상에서 제일 맛난 안주를 줄 테니 잠깐 기다려라.” 하면서 웃음을 지으신다.
매제는 약간은 냄새가 이상한지 코를 찡그리면서, “아버지 고맙습니다. 무슨 안주입니까?” 하면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잔뜩 기대에 찬 표정이다.
붉은 기가 적당히 섞인 것을 보니, 최상의 것을 사위에게 맛보여 주기 위하여 보름 전부터 준비하셨던 홍어 중 제일 좋은 부위를 가져오신 것이다.
먹기 좋게 적당한 크기의 직사각형 자르신 후 그중 가장 먹음직스러운 것을 매제에게 권하신다.
“이것 어떻게 먹어요? 초장에다 찍어 먹으면 됩니까?” 하니 아버지는 “제대로 먹으려면 이 소금에다 살짝 찍어서 먹어라.”하신다.
아버지 권유대로 고춧가루 섞인 소금을 살짝 찍어 입에 넣은 매제는 한두 번 씹은 후, “웩!” 하면서 한 손을 입에다 대고서 방금 입에 넣었던 것을 뱉어 버린다.
이를 아슬아슬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사람 중에서 이러한 일을 예상한 아내는 신속하게 냉수를 떠 와 매제에게 준다.
매제는 물을 벌컥벌컥 마시면서 “어휴, 아버님 이거 너무 하신 것 같아요.” 눈에 눈물까지 글썽거리면서 말하는 것을 보니 미각적인 면과 심적으로 매우 타격을 받은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은 “와” 웃는다.
“우리 집 식구가 되면 겪어야 할 신고식이니 너무 섭하게 생각하지 마러.”라는 둘째 형의 말에 매제는 “허허허, 신고식 제대로 했네.” 하면서 손등으로 입과 눈을 훔치면서 너털웃음을 짓는다.
“아니 천하의 주당 김 기자님이 홍어를 못 먹는다니, 진짜 엠비시 뉴스에 나올 일이네.”
여동생은 방송 기자들 사이에서 주당으로 소문난 자기의 서방님을 폄하하는 것인지 칭찬하는 것인지 모를 말을 하면서 웃는다.
고향이 목포인 아버님의 홍어사랑은 매우 유별났다.
매년 명절 보름 전경부터 아버지의 홍어 요리는 시작되었다.
노량진시장에서 양질의 흑산도홍어를 사서 배낭에 넣고 집으로 오신 후, 홍어 삭히기 작업을 하신다.
홍어를 삭히는 방법에서 홍어의 맛이 결정되는데 홍어를 삭히는 방법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시골에서는 두엄 속에 집어넣어 삭히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두엄이 없는 도시에서는 항아리에 짚을 깐 후, 내장을 제거하고 일정한 크기로 자른 홍어를 짚 위에 가지런히 놓고 그 위에 또 짚을 깔고 홍어를 놓고 하는 식으로 쌓은 후 뚜껑을 닫아놓은 후 4~5일 지나면 삭는 상태를 살펴본다.
원하는 만큼 숙성되었으면 홍어를 꺼내어 천으로 물기를 제거하여 냉장고에 보관하여 놓고 시식을 하면 된다.
항아리 대신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아버지는 시골 방식과 도시의 방식을 절충한 방법으로 홍어를 삭히셨다.
일단 내장을 제거한 후 일정한 크기로 절단하는 것까지는 비슷하다.
쌀가게에서 쌀가마니를 한 장 구해 온 후, 신문지를 대략 20장을 태워 그 재를 가마니 안에 넓게 펼쳐 놓으신다.
잘라 놓은 홍어를 가마니 속 재 위에 가지런히 놓아둔 후 가마니를 밀폐시킨 후 헛간에 두신다. 한 사나흘 지난 후부터 매일 숙성상태를 살펴보신 후 일부는 일찍 꺼내고 나머지는 오래 두어 숙성도가 다른 홍어를 만드신다.
이러한 숙성방법을 사용하는 방법이 생소해 아버지가 직접 개발하신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아버지는 웃으시기만 하시고 뚜렷한 말씀을
해 주지 않으셨다.
며느리와 사위가 홍어 신고식을 톡톡히 치른 이후에도, 명절에는 아버지의 홍어 요리는 계속되었다.
“아버지 이번에는 제일 팍 삭힌 것으로 좀 주세요.” 하는 매제의 요청에 아버지는 기분이 좋으셔서 “허허허” 웃으면서 홍어를 자르시던 아버지가 너무 그립다.
“아버님이 해 주셨던 홍어가 진짜 맛있었는데.” 하면서 그때의 홍어 맛을 그리워하는 아내를 보니 아버지가 해 주시던 홍어 맛은 아니더라
도 제대로 맛을 내는 홍어 음식점을 찾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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