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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다리와 올빼미

by 최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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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종다리와 올빼미가 30여 년 넘게 같이 살고 있다.

종다리는 새벽에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 곤히 자는 올빼미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거실에서 조용히 TV를 보거나 서재에 들어가 책을 보거나 글을 쓰는 등 매우 바지런한 생활을 하는 듯하다.

퇴근 후에는 저녁 식사 후 9시 뉴스를 보면서 병든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다가 안방에 들어간다.

우리 집 올빼미는 새벽에 일어나기가 엄청 힘들다.

깨어나 제정신을 차릴 때까지 3~40분이 걸리며,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기가 매우 힘들다.

야밤에는 다음 날 1~2시까지 눈이 초롱초롱하여 책을 보고, 화분에 물을 주고, 주방 일을 하다가 2시 가까이에 안방에 들어온다.

결혼 초기에는 나와 아내의 상반된 생활습관 때문에 서로가 상대방에게 많은 상처를 입고 입히고 하였다.

나는 퇴근하여 저녁을 마치면 9시 가까이 된다.

TV의 뉴스를 보다가 눈이 스르르 감겨 침대에 들어갈 시간에 아내의 활동은 시작된다.

시장에서 사 온 채소를 다듬거나, 거실 청소, 설거지, 독서 등등.

자기의 일을 하다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은 부탁한다.

신혼 때는 이러한 부탁을 들어주기 위하여 노력하였으나, 나의 생활습관 때문에 부탁을 다 들어주기가 너무 힘들다.

아내의 간절한 부탁을 무시하고 안방에 들어가니 돌아오는 것은 나의 비협조에 대한 불평불만이 쏟아진다.

밤에는 나의 수면을 방해하지 말 것을 엄중히 경고하여 나의 권리를 확보하는 듯하였다.

하지만, 아이들이 생긴 후 나의 주장은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오면 육아에 지친 아내의 뒷바라지를 하여야 했다.

딸 양육을 위하여 직장을 그만둔 아내는 내가 퇴근 후 아이와 같이 보내는 시간이 육아의 짐에서 잠깐 해방되는 때이다.

이제는 내가 9시 뉴스 보다가 방에 들어갈 처지가 안 된다.

아~~ 나의 새벽형 생활을 유지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는 아무리 늦게 자도 눈이 떠지는 시간은 똑같으며, 잠이 깨면 침대에 누워있지 못한다.

나의 이러한 습관은 자연 낮의 졸음으로 이어진다.

근무시간에 졸음이 몰려오면 사람들 눈치채지 못하게 밖으로 나와 어성거리며 주변 공원 벤치에서 잠시 쉬다가 사무실에 들어가거나 화장실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잠시 눈을 감고 있으면서 휴식을 취하는 등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나의 어려움을 해결하였다.

결혼 초에는 새벽 2시까지 열심히 일하다 잠이 든 아내를 새벽에 깨워 아침을 차리라 하여 먹고 출근하였다.

그러나 첫 딸의 출생 후 육아에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이 애처로워, 내가 직접 아침을 간단히 챙겨 먹고 가거나, 회사 근처에서 패스트푸드로 아침을 때웠다.

결혼 후 5~6년까지는 아내와 나는 다른 생활양식이 너무 힘들어 서로가 상대방을 자기의 생활습관에 맞추려 많은 전쟁을 치렀다.

하지만 도저히 상대방의 생활습관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한 후에는 선택할 방법은 두 가지뿐이었다.

갈라지든지 아니면 서로를 이해하고 각자의 습관대로 사는 것이다.

아~~ 갈라지려니 그동안 서로 간에 쌓아온 정분을 깨기가 너무 슬프고, 앞에 있는 딸들이 눈에 밟힌다.

‘이 예쁜 나의 두 딸이 만약 성질 고약한 계부를 만나게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하니 이 세상이 흔들거린다.

‘그래, 같이 살자, 살어! 각자 생긴 대로 같이 살자. (솔직히 더 나은 다른 상대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도 없으니…)’

하루는 야근 후 퇴근하여 집에 오니 11시가 넘었다.

회사에서 내일 오전에 임원에게 올라갈 품의서에 첨부될 보고서를 작성하다 늦었다.

아내는 소파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다.

“아 피곤해. 자기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보고서에 들어갈 통계를 뽑아야 하는데, 어려운 작업은 아닌데 시간이 좀 걸려. 1~2시간. 도와줄 수 있어? 난 너무 피곤하네.”

아내에게 도움을 청하니 아내는 책을 덮고 식탁에 앉아있는 나에게 다가온다.

“여기 A 란에 있는 단가에다가 B 란에 있는 사람들 숫자를 세어서 그 숫자를 곱한 숫자를 산출해주면 돼. 해주면 낼 맛있는 것 사줄게.”

“까이 것 내 서방님을 위해 당근 해드려야지용.”

아내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면서 대답한다.

나는 바로 샤워를 하고서 안방으로 들어가 잠을 잔 후 새벽 5시에 일어나니 옆에서 아내는 새근새근하며 자고 있다.

식탁에 와보니 아내의 깔끔한 글씨로 작성된 자료가 있다.

나는 정말 고마워 출근하면서 자는 아내에게 가서 뽀뽀 후 “나 갈게”하니 아내는, “당신 아침은?”한다.

“걱정 마. 회사 식당에서 해결할게.” 하면서 집을 나섰다.

며칠 후, 그날도 야근 후 집에 늦게 도착하였다.

“여보, 나 당신에게 부탁할 게 있는데…….”

아내가 나에게 당당하게 말한다.

“아 나 시방 너무 피곤해. 나에게 이 시간에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것은 지옥에 가라는 것과 같아.”

“아니, 내일 새벽에 중심가에 있는 한복집에서 한복을 찾아 주는 것도 힘들어?”

성당에서 다른 동에서 하기로 되어있던 행사의 봉사가 갑자기 아내가 반장으로 있는 우리 동에 배당이 되어 행사복인 한복을 급하게 수선을 하려 하였으나 한복집이 바빠서 내일 새벽에 된다고 하니 새벽에 찾아다 달라는 것이었다.

다음날 나는 아침 5시 반에 한복집에 가서 아내의 한복을 포함한 다른 두 자매님의 한복 3벌을 찾아다 거실의 옷걸이에 얌전하게 걸어놓고 잠자고 있는 아내에게 다가가, “나 출근할게. 한복은 찾아서 거실 옷장에 걸어놨어.” 하고 소곤거린다.

아내는, “고마워요. 아침은 회사에서 할거지?”한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종다리와 올빼미의 조화를 이루면서 30여 년을 넘게 살아오고 있다.

이제는 전세가 역전되었다.

나는 정년퇴직하여 가정부(house-husband)가 되었고, 아내는 아이들이 성장하자 취직하여 당당한 직장 여성(career woman)이 된 것이다.

나는 야행성인 아내의 생활에 맞춰 일찍 침실에 들어가는 것을 자제하다가 12시경에 잠자리에 들어간다.

아내는 야행성 생활습관에 의거 1시 넘어 침실에 들어온다.

나는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에 일어나 조용히 서재에 들어온다. (TV를 틀면 아내의 수면에 방해되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

서재에서 책을 보고, 글을 쓰고 하다가 아내의 기상 시간(6시 40분경)에 침실에 간다.

아내의 발과 종아리를 부드럽게 주물러 주면서 깨운다.

일어나기 너무 힘들어하는 아내를 깨워서 화장실에 보내기까지는 15분 이상이 걸린다.

이때부터 아내가 출근할 때까지의 나의 시간은 오직 아내만을 위하여 봉사하는 시간이다. (아침을 챙겨 주고 그날 날씨를 알려주고, 다이어트식을 챙겨주고, 간혹 신발장에서 신발을 내어 주는 등.-낯 간지러운 이야기이지만 ㅎㅎㅎ)

어제도 비가 내렸다.

이번 여름에는 길어진 장마 때문에 시원하게 보내고 있다.

어제는 아내와 토닥거리면서 TV를 보다가 12시 돼서야 안방에 들어갔다.

역시 아내는 2시 넘어 침대에 들어왔다.

오늘은 토요일이며 장모님 뵈러 가야 한다.

장모님은 장인께서 돌아가신 후, 3년 넘게 혼자 시골집에 계신다.

얼마 전 길에서 어지럼증이 와서 길가에 누워있는 장모님을 지인이 발견하여 조카에게 연락하여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고 집에 와 계신다.

새벽 5시 전에 잠이 깬 나는 침대에서 6시까지 견디다 일어나 서재에서 글을 쓰고 있다.

곧 들어가서 아내를 깨워 아침을 먹고 장모님이 계시는 전주에 가야겠다.

이제는 서로에게 길든 종다리와 올빼미는 서로의 부족한 점들을 감싸주고 보완하여주며 사이좋게 잘 지내고 있다.

어느 한 사람이 세상을 하직할 때까지 우리 집의 종다리와 올빼미는 원앙새와 같이 사이좋게 잘 살 것이다.

“Oh, what a wonderful 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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