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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수 없던 날의 추억

by 최용주


1998년 3월의 어느 날이다.

아침에 출근하여 컴퓨터를 켜니 회사 사이트가 뜬다.

‘공문’을 클릭하니 어제 접수된 문서가 접수 순서대로 뜬다.

퇴근 후에 접수된 ‘승급 인사발령’을 클릭한다.

직급별로 승진 명단이 펼쳐진다.

‘차장 진급’을 클릭을 하니 차장 진급자들이 선임부서에서 하위부서 순서대로 펼쳐진다.

마우스를 이용하여 화면을 밑으로 내린다.

플랜트사업본부의 진급자 중에서 나의 이름이 없다.

제기랄, 이번에도 승진을 못 했다.


1995년 1월, 모사인 P 제철에서 자회사인 P 건설사로 올 때 나의 직급은 과장이었다.

모사에서 자회사로 이전 시에는 통상 한 직급씩 올려 주는 것이 통상 관례인 관계로 나는 모사에서 과장이었으니 당연히 자사로 왔으니 차장으로 올려줄 것을 기대하였으나 그대로 과장이란다.

포건 인사담당자에게 항의하니, “선배님께서는 모사에서의 과장 경력이 2개월 정도 부족하여 차장을 부여 못 하였지만, 3개월 후에 진급이 있으니 그때 진급하시면 됩니다.”라는 친절한 말에 안심하고 3개월을 기다리기로 하였다.

3개월 후, 진급 명단에서 나의 이름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인사담당자에게 따지니, “실무부서에서 부서장이 평가한 점수로 평가하다 보니 선배님의 점수는 진급점수에 미달하였습니다.”라는 싸늘한 답변을 들었다.

아, 이곳에 온 이상, 모사에서의 경력은 전혀 필요가 없구나.

옮길 당시 인사담당자에게 강력히 주장하여 차장을 받지 못했던 것이 나의 크나큰 실책이었음을 깨달았다.

당시 차장의 직급을 받고 왔던 동기들이 2명이나 있었기에 그 실책이 더욱더 뼈저리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에서의 룰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신설한 지 얼마 되지 않은 회사이다 보니 각 부서에서 직원들을 평가하는 기준이 모호하여, 평가 시에 본부장 집에 양주를 들고 가서 하소연하였던 후배들은 진급하고, 나처럼 그런 정치적 감각이 없는 직원들은 진급하기가 너무도 힘들다.

첫 번째 진급에 실패한 이래, 매년 2번씩 있는 진급 시절에는 머리칼이 곤두서는 스트레스에 휘말린다.


다시 1998년 3월의 어느 날로 돌아온다.

‘P 건설사’으로 옮긴 후 4차례의 차장 진급에 실패하여 나의 자존심은 완전히 넝마 상태로 되어있다.

이번에는 고참을 대우해서 진급을 시켜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인사팀의 담당자들은 승진발령의 사장 결재를 미리 받아 놓은 후, 일부러 직원들이 거의 퇴근한 시점에 사이트에 올려놓고 퇴근해버리는 바람에 궁금한 직원들은 늦게까지 남아서 승진 여부를 확인하고 승진한 직원들은 끼리끼리 모여서 축하주를 마시고 승진하지 못함을 확인한 직원들은 쓰디쓴 패주(敗酒)를 마신다.

나는 그러한 기다림이 지겨워 일찍 퇴근하였기에 아침에 출근하여 확인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승진하지 못하였으니 이제는 퇴직할 때까지 과장으로 직장생활을 하여야 하나’하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오는 상태로 자리에 꽉 박혀있다.

주변에서는 나의 불편한 심기에도 아랑곳없이 서로 승진을 축하하는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즐거워한다.

나의 1차 평가자인 팀장은 자기 자리에 앉아서 나의 심기를 살피느라고 그러는지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다.

나는 아무런 소리도 하지 않고 머리는 의자 머리받이에 대고 다리는 책상에 올려놓고 무표정으로 말없이 앉아있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 나의 전화벨이 여러 차례 울린다.

“여보세요.”

애써 짜증스러운 목소리를 감추고서 대답한다.

“최 과장, 나 팀장인데 잠깐 와 봐요.”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춘 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제기랄, 직접 부르지 전화를 하고 그래.’

확 불쾌한 생각이 머리를 스치지만, 조직에서는 계급이 깡패인지라 전화를 끊고 뒤로 돌아 서너 발 거리인 팀장 자리로 향한다.

머리숱이 많고 머리는 크고 사각 졌으며, 두꺼운 눈썹, 날렵한 코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팀장은 ‘관상으로는 용감한 장군감이다’는 생각이 든다.

“최 과장! 내가 최 과장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나도 어쩔 수 없이 본부장님의 조치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요. 비록 최 과장보다 한참 후배들이지만 중요한 프로젝트에 투입된 직원들 위주로 승진을 시켜야 한다는 본부장님의 의지가 하도 강해서.... 최 과장이 이해하여 주고 다음 기회에는 꼭 최 과장에게 좋은 기회가 가도록 노력할 테니 표정 관리 잘하고, 그렇게 눈에 거슬리는 태도는 멀리하세요.”

팀장은 생긴 모습과 달리 매우 소심한 표정으로 연민의 정을 나타내는 말을 하지만, 나의 귀에는 괜한 헛소리로밖에 안 들린다.

전에도 두세 번 들었던 말이기 때문이다.

자리에 돌아와 자리에 앉은 나는 머리만 의자의 머리받이에 대고 팔짱을 낀 자세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팀장의 말이 맘에 걸려 다리는 책상에 올려놓지는 못하였다.

3~40분 그러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데, “형님, 뭐 하고 계십니까?” 하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떠보니 나보다 2년 후배인 구매부서에서 전에 같이 근무하였던 이xx 과장의 웃음기 가득 머금은 조붓한 하얀 얼굴이 보인다.

‘아, 재수 없는 이 친구가 왜 와서 나의 심기를 긁어대나?’

평상시 얄미운 행동으로 나를 포함하여 주변의 사람들부터 외면을 받는 친구였다.

“형님, 먼저 진급해서 죄송합니다.”

이 말을 하면서 나에게 공손하게 손을 내민다. 진급을 축하해주라는 것처럼.

“아, 이 과장 승진했어? 아 미안, 난 몰랐네. 그래, 축하해.” 하면서 앉은 채로 마지못해 손을 잡는다.

손을 놓자 나는 다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으로 돌아갔고, 이 과장은 팀장 자리에 가서 팀장에게 허리를 90도 각도로 꺾는다.

팀장은 반가운 목소리로 “이 차장님, 축하해요. 자리에 앉으세요. 미스 김, 여기 이 차장님 오셨는데 차 한잔 가져오세요.”

동향인 팀장과 이 과장은 아주 즐거워 죽겠다는 식으로 큰 소리로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나는 ‘아, 저 두 xx 나를 아주 엿 먹이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어 어제 먹었던 소주와 안주가 올라올 것 같은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둘이서 한 30분 이상을 웃으면서 떠든다.

가슴에서부터 무엇인지 모를 것이 치밀어 올라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어디론가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나의 치밀어 오르는 것을 토해내기 위하여.

나는 무작정 사무실을 박차고 나오니 저편에 화장실이 보여 그리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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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다.

치밀어 올라오는 것을 토하니 그것은 눈물이었다.

변기에 옷을 입은 채 걸터앉아 펑펑 눈물을 쏟아낸다.

하지만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된다.

소리를 내지 말고 눈물을 흘려야 한다.

손으로 가슴을 꽉 부여잡는다.

그러다 보니 가슴과 머리가 덜덜 떨리면서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온다.

아 소리를 내지 않고 눈물을 흘리기가 쉽지는 않다는 것을 깨우쳤다.


아~~~, 그날은 분노에 찬 눈물로 파김치가 되었지만, 퇴근 후에 승진 축하 자리에 참석하여 웃으면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면서 후배들의 승진을 축하하여 주어야 했던 재수 없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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